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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Oct 22. 2023

흑임자 커피가 얼마나 맛있길래?

강릉 <카페 툇마루>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강릉을 떠났다가, 취직하면서 다시 강릉으로 돌아갔던 그때쯤. 새로운 카페를 찾아 탐방하기를 좋아하는 내게 누군가 강릉 초당동에 〈카페 툇마루〉라는 곳이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곳에는 ‘흑임자 커피’라는 독특한 메뉴가 있는데, 그게 그렇게나 맛있다고 했다. 심지어 주문을 하고도 한참을 기다려야만 맛볼 수 있을 만큼 진귀한 커피란다. 처음에는 대기시간만 1시간 정도라는 소문을 들었던 것 같은데, 해가 지날수록 대기시간이 점차 늘어났다. 누군가는 2시간을 기다렸다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황금연휴에 찾아갔다가 4시간 가까이 기다린 후에야 커피를 받을 수 있었다고도 했다.


도대체 흑임자 커피가 얼마나 맛있길래, 그렇게나 오래 기다릴 수 있는 걸까? 유명한 식당에 줄을 서서 먹는 것까진 알았지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줄을 서야한다는 건 생전 처음 들은 이야기여서 생소했다.




정체가 너무나도 궁금했지만, 강릉에서 일했던 4년 동안 흑임자 커피를 마셔볼 기회는 오지 않았다. 한 번은 큰마음 먹고 〈카페 툇마루〉를 찾아갔다가 줄이 상상 이상으로 너무 길어서 포기했고, 또 한번은 대기줄이 없기에 신나서 뛰어갔는데 이미 영업시간이 끝났다는 비보를 들었다. 그렇다고 2시간 넘게 대기줄을 서는 건 상상만으로도 아득했으므로 나는 그 이후 〈카페 툇마루〉를 방문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대신 나는 주변의 다른 카페를 찾아다니며 흑임자 커피를 마셔보기로 했다. 〈카페 툇마루〉의 흑임자 커피 붐이 일어난 이후로 강릉지역 카페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흑임자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마실 때마다 그 맛이 달랐다. 어떤 카페는 크림 맛이 강해서 그저 달기만 했고, 또 어떤 카페는 고소한 맛이 나긴 하는데 뭔가 2% 부족했다. 커피가 아니라 그냥 녹차라떼 같은 음료를 마시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점차 원조가 궁금해졌으나, 그때쯤에는 방문객이 너무 많아서 좀 더 큰 매장으로 이전까지 한 상황이었으므로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가끔 점심 먹으러 초당동을 지나가는 날이면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선 대기줄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삼켰을 뿐. 그렇게 나는 강릉에 돌아온지 5년이 다 되도록 흑임자 커피의 맛은 모른 채 직장을 그만두었고, 강릉을 떠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드디어 흑임자 커피를 마주할 기회가 찾아왔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 뒤 한참을 지내다가, 글쓰기 모임 친구들과 함께 출간한 에세이집 《십삼월》의 북토크에 참석하려고 여행 겸 오랜만에 강릉으로 떠났을 때였다. 오랜만에 친척동생 제이와 점심을 먹으러 초당동에 갔는데 그날따라 동네가 이상하게 조용했다. 주말이면 항상 사람이 많아서 차가 막히고 혼잡했는데, 그날은 점심식사도 대기줄 없이 바로 들어가서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밥을 먹고 갈만한 조용한 카페를 찾던 나는, 문득 잊고 있던 흑임자 커피가 생각났다. 왠지 오늘이라면 눈치게임에 성공해서 〈카페 툇마루〉의 원조 흑임자 커피를 마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침 강릉 토박이인 제이도 그곳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카페 툇마루〉로 달려갔고, 평소보다 확연히 적은 대기인원을 보며 드디어 해냈음을 깨달았다. 가게 밖에서 30분, 주문을 하고도 30분을 더 기다려야만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지만 기다리는 것마저 즐거웠다. 한낮의 뜨거움을 달랠 수 있도록 직원이 직접 나와서 자외선 차단 우산을 무료로 빌려주는 모습을 보며, ‘역시 잘 되는 집은 다르다’며 제이와 감탄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총 1시간을 기다려서 먹은 흑임자 커피와 단팥 디저트는 확실히 다른 가게와는 차원이 달랐다. 적당히 고소하면서도 씁쓸했고, 생크림이 분명 달콤했지만 눈을 찌푸릴만큼 너무 달다고 느껴지지도 않는 적당한 맛이었다. 그러면서도 커피의 향기가 진하게 남아있었다. 유가 강릉에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포장해서 맛을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동안 나와 함께 흑임자 커피 투어를 해왔던 유도 원조를 마셔보면 감탄하리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 맛을 잊지 못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는 거였구나! 다음번에는 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대도, 어쩐지 다시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흑임자 커피라는 신세계에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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