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인데 청춘을 마셨습니다

어쩐지 마음이 늙는 것 같아요

by 아메리 키노

메마른 마음의 가뭄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서 오도 가도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서도,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그곳을 얼른 벗어나고 싶다. 그렇지 않아 보여도 사실 속은 탈출만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확신 가득, 패기 가득하게 지내왔던 과거도 있었다. 눈에도 힘이 가득 들어가 있고, 언제나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사람들과 마음껏 대화도 하고, 시간을 쪼개어서 무엇을 해도 그 힘듦이 보람으로 상쇄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이리도 오르락내리락 굴곡을 타대는 지 요즘 들어 무기력의 극을 달리고 있다. 나름 찬란했던 그때처럼 달려보려 해도 마음의 심박동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일말의 게으름을 넘어서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마저 컨트롤이 되지 않아 작은 것에도 실패를 맛보고 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되었던 걸까.


고질적인 인간관계도 한몫할 것이라 짐작해본다. 불편한 사람들과 말 한마디 섞지 않고 같은 공간에 있노랑션 가보지도 못한 시베리아 벌판을 홀로 걷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듯한 상황에서도 나를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경우가 누적되면서 그야말로 스스로 작아져버린다. 굳이 이야기할 필요성마저 느껴버리지 못할 정도가 되면 투명인간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결국 자신감을 잃어버리면서 삶의 무기력마저 찾아온다.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니 행동에 확신조차 없어진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단되어 있는 것 같다.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보니 경직되어 있다. 항상 해왔던 일도 긴장하기 시작한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매일매일 부담의 연속이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더라도 행동과 결과에서 티가 나기 마련이다. 확신을 가지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 일인가. 과거에서 경험했던 상황을 또다시 반복하고 마찬가지로 무기력의 늪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어느 주말, 편의점에서 '청춘'이라는 푸른 병이 눈에 띄었다. 늘 마시던 소주병을 뒤로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이 냉장고 문을 열고 병목을 잡아 꺼내었다. 홀린 것치곤 무난한 맛이었지만 그 '청춘'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은 잊을 수 없는 신선한 맛이었다. 30대여도 '이제 시작이네', '아직도 청춘이구만' 등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을 주는 말들을 주변에서 듣곤 한다. 정말 밑바닥까지 추락한 것 같은데 이제 시작이라는 말은 총알을 튕겨내는 방탄유리처럼 보기 좋게 고막 근처에서 튕겨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찾아낸 '청춘'은 유일하게 마음을 이끌었다. 의사와 상관없이 듣는 것과 내 의지로 찾은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since 1929'

이때의 청춘들은 왜 이 '청춘'을 들이켰을까. 깊다고 하기엔 머쓱하지만 애국심을 조금 곁들이 지면 일제강점기 시절의 '청춘'들은 오로지 내 나라 '독립'에 한 번뿐인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다고 듣고 배웠다. 지옥 같은 상황은 시대와 사회적 분위기를 초월해 사회에서의 '독립'을 열망하고 있기에 무좀에 삭아버린 새끼발톱만큼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때의 청춘도 지금의 청춘도 숨 쉬고 싶은 것이다. 자유롭고 아주 크게 말이다. 얼마나 많은 청춘을 마셨는지 알 수 없지만 청춘을 나눴던 수많은 청춘들은 결국 '독립'을 맞이했다.


아주 술만 마시겠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청춘을 찾아가는 것이 청춘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가 좋지 않아도, 자신감과 확신이 오랫동안 없을 것 같아도 늘 청춘을 기억하고 젊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참혹한 일제강점기도 끝을 맞이했는데 인생에서 미치도록, 죽을 것만큼 힘든 날이 반복되어도 결국엔 극복할 것 같다.


아프지도 않은데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귀에 들리지 않지만 아플 때 듣는 그 말은 일말의 공감이 간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불어넣어 주는 '청춘'이 있기에 다시 마음을 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