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전형 합격 통보를 받은 후, 덤덤하게 받아들일 만도 한데, 의외로 정신줄은 맑고 명료하지 못했다. 예를 든다면, 한 손에 호미를 들고 호미를 찾는다든가, 먼 산 바라보다 곁에서 불러대는 동료들의 잔소리도 들리지 않는, 제어하지 못하는 마음의 이탈을 경험하곤 한다. 어찌 되었든, 마지막 발표까지는 십 수일이 남았고, 반장을 비롯한 그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장한 마음만 간직한 채, 하루를 겨우 보낸다.
한편, 일터에선 장마철을 대비한 임도 풀베기 작업의 대략적인 작업 일정과 계획표가 나왔다. 그에 따라 준비해야 하는 장비의 손질과 소모품, 연료, 오일 등의 구입으로, 제법 활기를 띠고 바쁘게 돌아간다. 드디어 유월의 첫날이 온다. 오랜 경험으로 다져진 작업 반장의 작업 지시와 함께 예초기의 칼날이 돌기 시작한다. 일단, 워밍업 수준으로 작업장 인근 체육공원 임도의 풀을 남김없이 해치운다. 다음으로, W시 인근 500 고지 정도의 비교적 낮은, 공공림 임도의 풀베기를 시작한다. 아직 햇살이 그런대로 견딜만하니, 대략 일일 4~5km의 작업량을 유지하면, 작업 일수 10여 일에 풀베기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독려한다. 마지막으로 장마가 오기 전, 치악산 자락의 700 고지 정도의 시원하고 호쾌한 임도를 끝낸다는 계획이, 2024년 임도 풀베기 작업의 로드맵이다.
또한편, 이 몸 또한 단단히 자꾸 겉도는 마음을 다잡아, 노가다 졸업하는 그날까지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장비를 다룬다. 안면보호 장구와 안전복을 걸치고, 허리춤에는 작업용 혁대 위에, 차갑게 얼린 1리터 수통, 비상용 렌치 몇 가지, 기타 소모품을 줄줄이 매단 채, 마지막으로 예초기를 둘러멘 다음, 대략 200m 정도로 할당된 구간별로, 두 명씩 조를 이뤄 차량에서 하차한다. 이곳에서부터 저곳까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임도 산길의 풀을 베어내며, 머릿속은 벌써 이 현장을 벗어난 잡스런 망상으로, 저 멀리 안달루시아 바닷가에 낚시를 드리우는 발칙한 모습이 떠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임도의 풀은 부드러워, 칼날이 근처에 얼씬하기만 해도, 자지러지듯 사라진다.
또또 한편, 늙은 잡부는 햇살 따가운 청명한 초여름 밭에, 기약없는 고수 씨를 한 움큼 흩뿌린다. 고락을 같이 하던 동료 꾼들에게 안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