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10. 2020

8. <캐빈 인 더 우즈>

원제: Cabin in the Woods
감독: 드류 고다드
출연: 크리스텐 코놀리, 크리스 헴스워스, 안나 허치슨, 프랜 크란츠, 제시 윌리암스
제작연도: 2011

 드류 고다드의 <캐빈 인 더 우즈>는 80년대 할리우드가 착실히 쌓아온 호러-슬래셔 장르의 클리셰를 착실하게 반복하고, 동시에 가지고 논다. 이 영화는 장르의 클리셰를 사용한 거대한 농담과도 같다. 이상하게 해박한 지식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너드, 섹시한 금발 미녀, 백치미를 지닌 파이널 걸, 무식하고 용맹한 근육질 남성, 별 존재감 없는 첫번째 희생자 등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청년들이 주인공인 슬래셔 영화의 클리셰는 영화의 시작부터 존재감을 확실히 한다. 이들이 찾은 '캐빈 인 더 우즈'(숲 속의 오두막)은 그 클리셰의 집합체이다.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1981) 등의 영화들이 선보여 온 밀실이라 불러도 무방한 숲 속의 오두막은 대부분 어떤 비밀을 품고 있다. 이들이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 주유소에서 만난 노인의 경고마저 그 클리셰를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오두막 지하실에는 영사기 필름, 구형 퍼즐, 오르골, 목걸이, 소라 껍질 등의 골동품들이 즐비하다. 오두막을 찾은 청년들 중 한명은 낡은 일기장을 읽고, 읽기장의 문구들은 어느 좀비 가족을 불러온다. 클리셰를 착실히 따르는 영화 답게 섹스를 나누던 금발 미녀, 존재감 없는 희생양 캐릭터가 차례로 살해당하고, 무식한 근육질 남성은 자신의 용감함을 뽐내다 사망하며, 너드는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모색하다 좀비 가족을 맞이한다. 결국 남은 것은 파이널 걸 클리셰에 걸맞은 여성 캐릭터이다. 재밌는 것은 이것이 러닝타임의 절반 정도 지났을 즈음에 모두 벌어진다는 점이다. 영화는 오두막을 찾는 청년들과 어딘가에 위치한 콘트롤 타워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콘트롤 타워의 직원들은 청년들이 지하실의 골동품을 건들이도록, 그리고 이들이 선택한 좀비 가족에 의해 하나씩 죽음을 맞이하도록 유도한다. 사망한 청년들의 피는 어느 고대 유적에 채워진다. 이들은 고대신을 달래기 위한 제물로 사용하기 위해 청년들을 유인한 뒤 온갖 호러영화의 클리셰를 동원해 죽이고 있다.

 영화 후반부, 너드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지하의 콘트롤 타워로 향하는 비밀 엘리베이터를 발견한다. 청년들을 죽이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온 좀비 가족이 탑승했던 엘리베이터이다. 너드와 파이널 걸, 두 생존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분노한 이들은 투명한 이동장에 갇힌 수많은 호러영화/드라마/게임/도시전설/괴담/신화/소설 속 괴물들을 풀어 놓는다. <헬레이저>(1987)의 수도사, 게임 [레프트 4 데드](2008)의 다양한 좀비들, 크라켄, H.P. 러브프래프트 소설의 크툴루, 미라, 유니콘 등 다양한 괴물들은 콘트롤타워의 모든 이들을 학살한다. 괴물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너드와 파이널 걸은 콘트롤 타워를 관장하는 인물을 만난다. 시고니 위버가 연기하는 이 인물은 세계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 이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강조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멸망을 선택한다. 

 <캐빈 인 더 우즈>의 결말은 다양하게 해석된다. 호러 영화 클리셰에 대한 반동인 것은 물론, 젊은 세대를 착취하는 기성세대의 반격,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에 대한 은유 등이 이 영화를 두고 논의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두 청년이 선택한 결말이 인류의 절멸이라는 점이다. 이를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청년들을 제물로 삼던 이들은 거대서사의 충실한 심복이며, 이들이 만들어온 클리셰는 언제나 아래에 위치한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케빈 인 더 우즈>는 그 클리셰를 뒤집는다. 오두막 밑에서 솟아오른 고대신의 거대한 손바닥이 지표면을 덮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필연적인 종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종말은 세계대전부터 냉전까지에 시기를 거치며 규격화된 영화들에 대한 작은 저항의 표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전 08화 7. <레이드: 첫번째 습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