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모르는 남자의 갤러리 투어
여러분은 미술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그럼 잘 아시나요? 저도 같습니다. 미술에 관심은 있으나, 잘 알지는 못합니다. 왠지 어렵거든요. 미술관이나, 갤러리 하면 우선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갓 성인이 된 스무 살 초반에 친구와 얘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떻게 지냈어?", "어떻게 지내긴 힘들었지."와 같은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가 "나 압구정역에 갔었거든."하며 서문을 열었습니다. 그때 친구는 전라북도 전주 사람, 저는 경기도 안산 사람이었기 때문에 강남, 가로수길, 압구정 하면 "오오!"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습니다. "어땠어?!" 친구는 잠깐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5분 정도 걷다가 다시 돌아왔어." '아니, 그게 뭔 소리야?'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친구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길거리가 나를 거부하는 느낌이었어."
제게 미술관과 갤러리가 딱 그렇습니다. "이름 자체가 나를 거부하는 느낌이야."
그랬던 제가 갤러리를 방문했습니다. '스리체어스'에서 진행한 '체어메이트 2기' 활동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체어메이트 활동에는 스리체어스에서 출판된 책을 받아 서평을 작성하는 일도 있었지만, 체어메이트 분들과의 오프라인 모임도 있었습니다.
발대식과 수료식을 포함해 총 3번의 모임이 있었고, 저는 수료식을 제외한 두 번의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수정 님이 [오늘 같은 날, 미술관]이라는 독립서적을 출판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은 '텀블벅'을 통해 판매되었으며, '미술관 산책 프로그램'이란 걸 기획하여 당시 펀딩을 통해 구매하신 분들과 함께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그 말에 체어메이트 2기를 대상으로 그것을 추진해달라는 몇몇 분들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고, 김수정 님께서는 미술관 산책 프로그램을 선뜻 추진해 주셨습니다.
마침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라는 책을 읽고 '미술관에 한번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저는 미술관 산책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분들의 신청을 받는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갤러리는 'ARARIOGALLERY'아라리오갤러리였습니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오른쪽 벽을 보면 작가와 작품의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이는 모든 미술관과 갤러리가 동일하다고 합니다. 안내 데스크에 전시 작품에 대한 팸플릿이 배치되어 있으니 가져가시어 작품을 보실 때 참고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총 1층과 지하 1층으로 나누어 전시된 이번 전시회는 '가장 보통의 이야기'가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위 사진에서 보실 수 있듯이 결코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1층의 작품을 모두 감상한 후 지하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지하 1층에는 두 벽면을 가득 차지할 정도로 넓은 그림과 작가가 방문미술교사 일을 하며 전해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우선 그림을 살펴봤는데, 유난히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이 끌렸습니다.
위 그림의 사람들을 보며 '저들은 잠시 멈춰 서서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유난히 저런 사람들이 그려진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물며 감상했는데, 최근 일을 더 확장해야 할까, 줄이고 몇 가지에만 집중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저의 모습이 투영돼서 그런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을 감상한 후에는 소설을 보았습니다. 컴퓨터가 아니라, 모두 직접 손과 펜으로 작성한 소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위기의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삶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거든요. 마치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좌혜선 작가의 전시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어두움 또한 우리 삶의 일부다. 불편하다고 외면해선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하 1층에 전시된 작품과 이별하며 1층으로 올라가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작품들과 달리 너무나 밝고 환한 햇빛이 계단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 또한 작가의 의도 중 하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갤러리는 '학고재'였습니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조금 나았는데, 이곳은 입구부터 저를 부정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갤러리가 익숙하지 않은 탓이겠죠. 아마 혼자 왔다면 들어가지 못했을 겁니다.
학고재도 아라리오갤러리와 마찬가지로 입구 오른쪽 벽에 전시에 관한 설명이 적혀있었습니다. 문제는 설명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프로그램을 주최하신 김수정 님께 물으니, "원래 갤러리가 고객으로 삼는 대상이 일반인이 아니라, 미술 전공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많아요. 그래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죠. 그래도 요즘은 바뀌어 가고 있는 추세예요."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잘 써진 글은 아니었고, '글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제게는 약간의 교만함이 느껴졌습니다.
당혹감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더욱 커졌습니다. 섬진강을 촬영한 사진이라고 하는데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흘러가는 물에 반사되는 빛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몇몇 사진과 작품 설명으로 해석하자면 '물은 우주 만물을 담고 있다.'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물을 촬영한 사진들임에도 하늘이나, 우주 같아 보이는 사진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진은 물이라는 설명을 듣지 못했으면, 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와 닿는 전시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감탄할 만한 작품일 수 있습니다. 제 마음에 와 닿지 않은 이유는 작가의 의도를 몰라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설명 없이도 와 닿는 작품을 좋아하고, 그런 측면에서 학고재의 전시 작품은 별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갤러리는 'PKM 갤러리'였습니다. PKM 갤러리는 외관만으로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PKM 갤러리는 본관과 별관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본관에는 갤러리에서 구매한 작품들이 전시가 되어있으며, 별관에는 개인전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별관은 본관 안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2층으로 올라가야 이동할 수 있으며, 저희는 구현모 작가의 개인전을 보기 위해 왔으므로 바로 별관으로 이동했습니다.
별관으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저희는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갤러리 곳곳이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별관에는 '후천적 자연'을 주제로 한 구현모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허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놀랐습니다.
특히 놀라웠던 작품은 위 사진에서 보이는 '느티나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나무와 황동을 연결한 것 같지 않나요? 그러나 놀랍게도 나무처럼 보이는 것 또한 황동입니다. 어떻게 나무와 황동을 저렇게 잘 연결했지 했는데, 황동을 태워 나무처럼 만들었다고 합니다.
미학적으로 눈이 즐거운 전시였으나, 설명이 없으면 그 의도를 명확히 알기 어려웠던 점은 아쉬웠습니다. 이에 대해 주최자 분께 여쭈었더니, "그게 미술관과 갤러리의 차이점이에요. 미술관은 시민들과 미술이 가까워지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 도슨트(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 전시물에 대해 설명해주는 안내인)도 있고 설명도 작품마다 자세히 적혀있지만, 갤러리는 작품의 판매가 목적이기에 따로 설명이 없어요."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미술관 산책 프로그램을 통해 갤러리들을 방문하면서 저는 새로운 사실 세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미술관과 갤러리의 차이점
입장료가 없는 갤러리가 많다.
미술, 어렵지 않다.
저는 사실 미술관과 갤러리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둘 다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만 알고 있었죠. 그런데 미술관과 갤러리는 전시의 목적이 다르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술관이 전시를 하는 목적은 시민과 미술의 거리를 좁히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갤러리는 작품의 판매가 전시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전시의 방식에도 약간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저처럼 미술을 모르는 분이라면 미술관부터 가보시는 게 더 좋을 듯합니다.
의외였던 점은 입장료가 없는 갤러리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지나가다 갤러리가 보여도 들어가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비용 때문이었습니다. 갤러리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미술에 대해 잘 모르니 돈을 내고 관람할 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번에 갔던 갤러리들은 모두 입장료가 없었습니다. 함께 갔던 분께 여쭈었더니 본인은 작품들 보는 걸 좋아해서 갤러리가 보이면 일단 들어간다고 합니다. 대부분이 무료며, 입장료가 있는 갤러리는 입장할 때 직원 분께서 말씀을 해주신다고 합니다. 앞으로 조금은 편하게 갤러리에 들어갈 수 있을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느꼈던 것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데 전문적인 지식은 필요 없다는 겁니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미술 작품 하면 왠지 고상한 느낌에 거리감을 갖습니다. '본다고 내가 뭐 알겠어?'하는 마음도 작동하죠. 마치 미리 공부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미술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에 굉장히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작품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 또한 작품을 감상할 때 중요한 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래야만 할까요?
우리가 미술을 잘 알아서 고흐의 작품에 감동을 받나요? 미술을 잘 알아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을 보며 감탄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면, 미술을 몰라도 작품을 감상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저는 이번 미술관 산책 프로그램을 통해 갤러리들을 방문하면서 미술과 저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짐을 느꼈습니다.
저처럼 미술에 관심은 있는데 거리감을 느끼고 계셨던 분들께, 제 글이 미술과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술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