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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숨 Oct 05. 2024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너와 함께 성장하는 나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던 어느 날!     

점심으로 카레를 먹고 꿀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른쪽 배가 꼬이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통증이 시작되었다.      

덜컥 겁이 나 신랑을 찾으며 외쳤다.      

"여보! 여보! 여보!!!!!!!  나 배가 너무 아파!"     

주저앉아 신랑이 내 눈에 보이길 기다리는 그 몇 초가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오른쪽 배가 너무 아파!  뱃속의 아가는 괜찮을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아기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분명 지난 검진 때는 괜찮았는데….'               

머릿속이 뒤죽박죽 뒤엉키고, 무서움이 나를 집어삼키려고 한다.     


결혼 후 9개월 만에 찾아온 천사. 지금 나는 임신 26주이다.          

 “ 여보 빨리! 배가 갑자기 너무 아파. 병원!! 병원!!”     

일을 하다 말고 헐레벌떡 뛰어나와 작업복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나를 싣고 병원으로 향한다.     

굽이굽이 산길을 넘어 좁은 시골길을 벗어나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두려움 탓일까? 병원으로 향하는 그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농장에서 병원까지 차로 1시간 거리)          

'이런 일이 혹시나 생길까 봐 산부인과 전문의가 10명이나 있는 전문병원을 선택한 거잖아.     

병원에만 도착하면 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제발.......'     

유별스런 입덧부터 태동을 느끼며 뱃속 아가와 나누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두려움과 통증이 나를 집어삼켜 한없이 눈물만 흐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렇게 비상깜빡이를 켜고 1시간 거리를 40분 만에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각종 검사를 하고 진료를 받았다.

그 사이 오른쪽 배는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통증은 점점 더 심해져 숨만 쉬어도 고통스러웠다.          

검사 결과

“ 맹장염입니다. 오늘 중으로 산모를 수술할 수 있는 대학병원을 찾아서 수술받으시면 괜찮습니다."

" 아..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문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A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은 시장통처럼 북적였고, 난 앉을 곳도 없어 아픈 배를 부여잡으며 빈 침상이 나오길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응급실 의사는 나를 시큰둥하게 쳐다보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임신부 맹장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없습니다. 다른 병원으로 가세요"     

"네?"          

 통증이 너무 심해서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는 나는 그렇게 길거리로 내쳐졌다.

A 병원과 비교적 가까운 B 병원에 갈 수 있었으나 B 병원에 안 좋은 기억이 있었던 가족은 C 병원으로 나를 이송하기로 했다.     

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오른쪽 배는 계속 부풀어 올라 피부에 손만 닿아도 너무 아파 눈물이 흘렀다.     

C 병원에 겨우 도착한 나는 또다시 각종 검사를 했고 우리는 맹장 수술을 이제 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 맹장염이 아니라 산과적 문제입니다. 정확히 원인을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선 산모도 태아도 위험합니다!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데 우리 병원에는 인큐베이터가 없어서 수술할 수 없습니다. 다른 병원으로 가세요"     

‘이게 무슨 말이지?’

더는 못 참겠는데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다른 병원을 가라는 말만 반복해서 귓가에 맴돈다.

병원에 끈질기게 수술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신랑 목소리와 의사의 목소리..      

"산모를 수술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태아가 잘못되어 태어나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면 산모는 이송이 어렵고 아이만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데 그러면 태아의 생존율은 많이 떨어집니다.

그래도 수술을 원한다면 할 수는 있으나 태아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가시길 권고합니다."     


낮 12시경 일어난 나의 복부 통증은 저녁 7시가 되어서까지도 지속되었고 알 수 없는 말들만 귓가를 맴돌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병원 뺑뺑이인가? 이러다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

두려움만이 나를 엄습해 온다.     

인큐베이터가 있는 곳을 수소문해달라고 요청하자 서울·경기지역 중 단 한 곳에 1개의 인큐베이터가 남아 있다고 했다. 바로...... 그냥 지나쳐왔던 B 병원...          

‘하.... 혼란스럽다.’           

" 서울 경기지역에 병원이 얼마나 많은데 다른 병원은 없습니까?"

" 이 병원 인큐베이터도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다른 조산아가 생길 경우 없어질 수 있습니다!

  빨리 결정하세요! 산모도 태아도 지금 상태로는 너무 위험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이대로 나도 아가도 죽으면 어떡하지?'

의식이 점점 희미해진다.

"여보! 정신 차려, 눈 감지 마! 제발 눈 뜨라고!! 여보!!!"     

시끄러운 앰블런스 사이렌 소리에 눈을 떠보니 신랑이 울부짖는다. 정신 차리라고, 정신 줄 잡으라고..

또 눈이 감긴다..      

'졸려…. 자고 싶다…. 너무 졸린데 왜 자꾸 일어나래….'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앰블런스에게 다른 차들이 양보를 하지 않아 속이 재가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지금은 모세의 기적처럼 의식변화로 양보가 당연하게 되었지만 그때는 아니었기에...)


시끄러운 대화 소리에 눈을 뜨니 낯선 곳이다.     

"산과적 문제인데 지금으로서는 무슨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일단 배를 열어서 확인 후 수술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 네? 수술을 한다고요?"     

의사와 신랑의 대화가 오간다.     


" 나 좀 어떻게 해줘, 더는 못 참겠어! 제발 나 좀 어떻게 해줘... "

(의사가 깜짝 놀라며)"마약성 주사를 놨는데 아픈 게 느껴져요? 똑같이 아파요?     

" 지금 당장 응급수술을 들어가야 합니다......!!!"

그게 내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

.

.

'여긴 어디지?'

온몸이 아프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새하얀 천장과 사방을 감싼 커튼이 보인다.     

이따금 들려오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

슬픔을 억누르는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 정신 들어? 괜찮아? 고생했어.. 고생했어.."

"아이는 괜찮고 수술은 잘되었으니 안심하세요! 오른쪽 난소 염전으로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난소가 터져서 더 힘든 수술이었을 거예요. 하늘이 도왔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어요."     

담당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이내 안도감이 들었다.


뱃속 아가도 잘 버텨주었단 사실에 미안함, 서러움이 복받쳐 한참을 엉엉 울었다.     

"그런데 여긴 어디야? 일반 병실은 아닌 거 같은데"

"분만실이야"     

지금 내가 누워있는 이곳은 누구는 출산을 위해 누구는 수술을 위해 입원해 있는 곳이었다.

커튼 사이로 들려오는 음성..     

" 아이는 또 가지면 돼…. 일단 자기부터 살자…. 수술해야 자기가 살 수 있다고 하잖아."

" 수술하기 싫어. 아이를 어떻게 보내…. (흑흑흑)"

아마도 산모 건강상의 문제로 아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가 보다.

난... 그래도 감사해야 하는 거였다. 어쨌든 아이도 나도 살았으니까...     

.

.

.

수술 후 3주가 흐르고 나서야 드디어 퇴원을 했다.

아주 커다란 상처가 배에 생겼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일부러 크게 수술 자국을 만들었다고..     

그래야 난소절제술 중 태아를 응급으로 꺼내야 할 때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하게 해서 아이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말이다.. 보기 흉한 흉터이지만 만약의 상황에서 내 아이를 살려 줄 영광의 상처이기도 했다.          

퇴원 후 한 달이나 지났을까?

정기검진 받는데 배가 또 아프다. 덜컥 겁이 났다..

의사 선생님이 이것저것을 살펴보시곤 입원하자고 하셨다. 조산 위험이 있다고...

그렇게 분만실에서의 생활은 또다시 3주간 이어졌다.

자궁수축 억제제를 맞으며 조금이라도 태아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젖은 수건으로 얼굴만 겨우 닦으며. 최소한의 움직임만 유지한다...       

그렇게 3주라는 시간 동안 이번 고비도 무사히 잘 견뎌준 아이 덕분에 두 번째 입원도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싶다.     


난소 수술 후 2달이 지나면 자연분만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분만일을 3일 앞둔 어느 날

점심을 먹는데 아랫배가 사르르 아프다 말다를 반복했다.

점심을 다 먹고 미리 챙겨둔 짐을 차에 싣고 병원으로 출발...     

병원으로 가는 동안에도 점점 배가 아픈 간격이 줄어들었지만, 만삭을 다 채우고 병원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드디어 막달을 다 채웠다. 장하다. 나 자신! 그리고 내 아가!'     


분만실 벨을 누르고, 오후 2시 45분경에 분만실로 들어갔다.     

" 저 산모 오현주인데 배가 아파서 왔어요."     

 분만실 문이 열린다.

그동안 분만실의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정든 간호사들에게 반갑게 웃으며 손 인사를 하고 분만실로 들어갔다.     

"오현주 씨 웃으면서 들어오는 걸 보니 다시 집에 가야겠네요 ㅎㅎ  이왕 온 거 내진이나 하고 가요"     

초산은 대부분 가진통을 느끼고 병원에 와서 웃고 오면 집에 갔다가 다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어머! 어떡해? 선생님 오현주 산모 경부가 7cm 열렸어요. 김O수교수님 call 하고, 남편분 빨리 입원 접수하고 오세요!"     

 내진하던 간호사가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자 다른 간호사들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오현주 씨 지금은 안 돼요!! 심호흡하면서 배에 힘주지 말아요! 자 따라 해 봐요.     

들이마시고 내쉬고.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고."     

“ 마지막으로 음식 몇 시에 먹었어요?”     

“ 병원으로 올 때 점심 한 그릇 다 먹고 왔어요!”     

“ 네~~!!!??? 하......”          

“대변 마려운데 화장실 가고 싶어요! 못 참겠어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도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난 가족 분만 신청했는데...'     

 아직 신랑도 의사도 오지 않고 있었다.               

“ 안돼~ 안돼.. 조금만 버텨요~~~ ”     

다급한 간호사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     

.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빛의 속도로 오셔서 무사히 자연분만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첫째가 태어난 시간은 15시 15분.     

 분만실에 들어간 지 30분 만에 가족분만실에서 신랑이 입원 수속을 하러 간 사이에 첫째를 분만했다.      


“축하해요! 초산인데 진통을 몰랐어요? 어떻게 7cm이 열리도록 모르고 웃으면서 왔어요?     

 (허허허) 혹시 둘째 나을 거면 그때는 차 안에서 아기 나을 수 있으니,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병원으로 와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2008년 8월에 태어난 귀하디 귀한 나의 첫째!!!

어느새 자라 외계인이 되었다!!!  ㅜ.ㅜ



*** 첫째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도록 해주신 B병원 김O수 교수님과 분만실에서 케어해 주신 간호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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