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두부 Dec 30. 2023

1일차, 바욘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시작부터 꼬였다.


파리에서 산티아고 순례길 시작점인 생장 피드포트까지 가려고 했다. 파리에서 TGV를 타고 바욘이라는 도시에 내려, 생장 피드포트행 기차로 갈아타면 되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욘에 내렸을 때, 탈 예정이었던 오후 두 시 몇 분의 생장행 기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 다음 기차는 오후 7시 반. 그걸 타고 가면 알베르게에 내 침대는 없을 것 같았다. 괜히 티켓 자판기 버튼을 몇 번 눌러봤다. 당연하지만 생장행 스케줄은 생기지 않았고 내 발 앞에 기차가 도착하지도 않았다. 나는 해리포터가 아니니까. 나는 티켓 사무소로 들어갔다.


“생장 피드포트 가려는데 기차 말고 다른 옵션이 있니?”


“나는 기차 밖에 모르지. 나는 기차표 파는 사람인 걸.”


오, 이런 대답은 매우 신선한걸. 나는 패잔병이 된 기분이었다. 함께 순례길을 걸으러 간 제이가 플랜 B를 제시했다. 오늘은 일단 바욘에서 자고, 내일 아침 7시 기차를 타고 생장으로 가자고. 더 나은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별 수 없이 부킹닷컴을 켜서 호텔을 예약했다. 숙박비는 93유로였다. 구십삼유로오오??? 생장에 있는 알베르게에 갔다면 한 사람당 12유로면 됐을 텐데. 두 사람이서 24유로면 되는데. 나는 며칠치 숙박비를 하루에 태운 거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이 몹시 언짢아지는 성격이다. 계획했던 것처럼 오늘 생장에 가지 못해서 1펀치. 생각보다 비싼 숙박비에 2펀치. 나이스 콤보! 정신력이 닳고 있었다.


호텔 체크인을 하려는데, 직원이 방글방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 너구나! 20분 전에 부킹닷컴으로 예약을 넣은 사람이.”


그건 이렇게 들렸다.


“오 너구나! 멍청하게 생장 가는 기차를 놓치고 13만 원짜리 예약을 넣은 호구가.”


몹시 침울했지만, 침대에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침 8시에 파리에서 출발하느라 그날 먹은 거라곤 크로와상 하나에 커피 한잔이 다였다.


오후 3시, 우리는 점심 원정에 나섰다. 제이는 간판만 봐도 맛집인지 아닌지 감별할 수 있다며 몹시 으스대었다. 프랑스어라고는 쥬빨러르빵세(Je parle le français, 나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아요) 밖에 못하면서. 나는 낄낄 웃었다.


하지만 웃을 때가 아니었다. 가게 세 군데를 가봤는데 모두 점심 식사 시간이 끝나서 이제 문을 닫는다고 했다. 하필 그날은 일요일이어서 다들 일찍 영업을 마감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 맛집이 문제가 아니었다. 음식을 주는 곳을 찾아야 했다. 아, 24시간 국밥집이 있는 내 조국 코리아여.


우리를 살린 것은 태국 음식점이었다. 컵쿤카.



이전 01화 인생의 답은 찾지 못했고 그냥 다녀왔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