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장~에스삐날(Espinal)
이 날의 고생은 계획된 일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첫날 루트가 가장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피레네 산맥은 외부 침입자로부터 스페인을 보호해 주는 장벽이었다. 그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걸어서.
오전 9시 반. 생장 피드포트를 출발했다.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여행의 설렘 때문이 아니다. 내 가슴을 뛰게 했던 건 미친 경사도의 오르막길이었다. 심장이 쿵쿵쿵 고함을 질렀다.
야, 너 미친 거 아니냐???? 서울에서는 하루에 고작 천 걸음 걸어놓고 지금 뭐 하는 거야??
오르막길을 30초 올라가고 1분 쉬기를 반복하는 동안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는 빨간색으로 최고 맥박수를 찍어내고 있었다.
오후 12시. 오르손 산장에 도착했다.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보다도, 앉아서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좋았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앞으로 30여 일간 앓게 될 코카콜라병이 발병하였다.
코카콜라병이란, 길을 걸으면서 틈만 나면 “오 내게 차가운 콜라를 다오.”라고 노래를 부르게 되는 병을 말한다. 코카콜라 코카콜라, 나의 검은 생명수. 뜨거운 태양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걷고 있자면 내가 원하는 단 한 가지는 바로 얼음같이 차가운 코카콜라일 수밖에.
산장을 나서니 오르막길. 또 오르막길. 다시 오르막길. 힘이 들어 죽겠는 와중에서도 풍경이 예쁘단 생각을 했다. 그건 정말 예쁘다는 뜻이다. 미세먼지 한 톨도 없는 듯 새파란 하늘과 푸릇한 초원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오후 4시. ‘육체의 한계에 다다르다’라는 문장을 온몸으로 이해했다. 눈물이 났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엉엉. 비행기값과 휴가를 (처)들여놓고 이게 무슨 개고생이지 엉엉. 나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게 바로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건가?”
제이는 대답 대신 노래를 불렀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허~”
오후 6시.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수도원 건물에 있는 대형 알베르게가 있다. 먼저 도착한 순례객들이 알베르게 앞마당에서 여유롭게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곧 저 대열에 합류하리라. 카운터로 다가가 당당하게 말했다. 헬로!
직원은 예약을 했느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미안하지만 침대가 없단다. 나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없다고?”
“응, 오늘은 예약이 꽉 찼어. 미안해.”
사전 조사에 의하면 여기는 예약이 필요 없다고 그랬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핸드폰을 켜서 주변 호텔을 찾았다. 지금 숙박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0유로라도 달라면 줘야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론세스바예스에 있는 모든 숙소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순례길 첫날부터 노숙의 위기가 닥쳐왔다. 나는 진짜 위기에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직원은 택시를 불러줄 테니 다른 마을에 가서 잠자리를 찾으라고 했다. 간신히 여기서 7km 떨어진 마을에 있는 트리플룸을 잡았다. 60유로였다. 오후 7시 반, 우리는 드디어 짐을 풀 수 있었다.
숙소 주인에게 저녁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오, 미안해, 저녁 식사 예약은 6시 30분까지 받아서 지금은 예약이 끝났어. 네가 원한다면 치즈와 살라미 세트는 제공해 줄 수 있어.”
주변에 식당이라곤 하나도 없었으므로 선택지는 뻔했다.
친절한 주인은 접시 가득 담은 치즈와 살라미, 와인 두 잔, 빵 한 바구니, 그리고 서비스로 디저트 푸딩까지 내어주었다. 제이와 나는 동시에 손을 뻗어 살라미를 집어 들고 씹었다. 곧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걸신들린 듯 먹고 싶었으나 마른 살라미와 꼬릿한 치즈, 퍽퍽한 빵은 입안에 있는 모든 수분을 물먹는하마처럼 빨아들였다. 나는 그냥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