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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Feb 07. 2024

가족끼리 논리 좋아하시네

옳은 소리, 허튼소리, 그리고 잔소리



흔히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 중에 '궤변론자론'이 있다. (젠장, 그 속을 도무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호르몬이 들끓으니 늘 몸과 맘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럼 우기지라도 말던가. 저도 모르게 빽, 내지른 말을 주워 담기 위해 펴내는 그들의 변명이라는 건 얼마나 논리도 일관성도 없는지. 그런데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 게 또 이 아들놈들의 심리다. 그러니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자식 말이 옳아서 라기보다 서로 말꼬리를 잡다 보면 나중엔 '어이가 털려서' 그나마 제정신에 가까운 부모가 제풀에 질려 버린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논리적인 대화는 먹힐까? 서로 논리로 호소해도 안 먹힌다. 가령 이런 것.


공사다망하신 둘째 아들의 귀가 시간이 어느 순간부터 밤 12시를 넘기는가 싶더니, 몇 주 전부터 대놓고 새벽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2 때까지는 어쩌다 12시가 좀 넘어도 동네가 워낙 좁고 뻔하니 별일 있겠나 싶어 크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까지 학원 순례를 마치고 들어오는 아들에게 친구들과 동네 한 바퀴 돌다 들어오는 정도의 자유쯤은 허락해도 되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중3이 되자 활동반경이 동네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시작은 도장 깨기. 먼저 동네 농구장에서 옆동네에서 놀러 왔다 잠깐 들른 슬램덩커 하나를 만난다. 당연히 홈그라운드다 보니 아들 팀은 쉽게 녀석을 꺾어 이긴다. 쫄린 그 친구가 다음엔 자기 동네 농구장으로 아들을 초청한다. 우리 동네 최고의 슬램덩커들이 우르르 옆동네 구장으로 출정한다. 그렇게 이번 주는 ㄷ중학교, 다음 주는 O중학교로 반경이 점점 넓어진다. 몇 달 후에는 종목이 배드민턴으로 바뀐다. 배드민턴 장에서 만난 친구가 자기네 동네 구장으로 아들을 초대한다. 그렇게 아들은 10km가 넘는 동네까지 원정 경기를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경기만 하더니 나중엔 그 동네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친구의 사촌동생의 인생 상담까지 해주다 새벽에 할증 붙은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번쯤은 잔소리가 필요 한 시점이라 생각되었다. 그날도 학원 마치고 돌아와 밥 먹고 잠깐 쉬는가 싶던 아들이 9시쯤 주섬주섬 배드민턴 채를 챙기기 시작했다.


"아들~ 요즘 너무 자주 새벽 귀가하는데, 그래도 12시 전에는 좀 귀가해 주셔야 되지 않겠어? 아직 중딩인데, 누가 보면 대딩인 줄 알겠다."


바로 돌아오는 아들의 항변.


아들 : 아니, 예전에도 안 하던 잔소리를 이제 와서 왜 하는 건데? 나 중2 때 맨날 새벽에 들어왔는데도 암말 안 하더니.

- 나 : 그때야 주로 동네에서 놀았고, 그래도 12시쯤에는 들어왔고, 이렇게 자주는 아니었으니까 그랬지.

아들 : 나 공부 빡세게 할 거 다 하고 다니는 거 알잖아. 이렇게라도 기분 전환 안 하면 답답해서 죽을 거 같단 말이야.

- 나 : 그야 엄마도 알지. 운동으로 기분전환 하는 거 너무 좋고. 근데, 너무 지나치니까 걱정돼서 그렇지. 네가 어디 가서 사고 칠 애 아니라는 것도 알고, 스트레스를 방구석 게임으로 안 풀고 운동으로 푸는 것도 너무 고마워. 근데 세상이 워낙 무서우니까. 아무래도 밤늦게 다니다 보면 본의 아니게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될 수 있고, 또 너 체력적으로도 맨날 달리니까. 안 그래도 맨날 피곤해하면서...


부모라면 아들에게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잔소리가 하나도 논리적이지 않다는 건 말하는 내가 더 잘 알겠다. 철커덕, 듣는 둥 마는 둥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아들을 향해 나는 기어이 한마디를 더 얹는다.


 "우린 당연히 널 믿어. 밤늦게 다닌다고 다 사고가 나는 것도 아니고, 네 말처럼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도 알아.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야. 하지만 우리는 부모라, 만의 하나라도 울 아들에게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에 대해 걱정하게 돼. 이런 말 다 잔소리인 거 알지만, 하게 된다고. 아들아. 부모 맘은 그렇다고. 알았지?


세상엔 정말 이상한 말이 많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지만, 부모라며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래와 같은 말들. 


학교 갔다 오면 숙제부터 하고 나가 놀아라! (아침에 나가서 여태 학교에서 공부하다 왔는데 오자마자 바로 또 숙제부터 해야 해?)

12시까지는 꼭 들어와라! (FIFA 월드컵 경기는 새벽 2시에 중계되고, 친구와 같이 응원하고 싶고, 그럼 TV 있는 24시 무인카페에서 좀 놀다 들어오는 게 어때서?)  

결혼 안 할 거면 지금까지 너 키우느라 쓴 양육비 3억씩 토해내! (이번주 우리 교회 집사님이 딸들이게 이렇게 선언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누가 낳아달라고 했나? 자기들끼리 좋아서 낳아놓고 어찌 이런 말을?)


우리 집은 언제부턴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잘하지 않는 집이 되어 버렸는데, 그러다 보니 나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지 못했고, 아들에게도 하지 못다. 세상에서 옳은 소리가 가장 먹히지 않는다는 '인간관계', 그중에서도 가장 비논리적이라는 '가정', 그중에서도 궤변이 정점을 찍는다는 '사춘기.' 논리적인 언어 밖에 없었던 우리는 그렇게 끝내 아들을 설득할 언어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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