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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그리움을 닮아있다.

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

1년 중 생일 다음으로 기다리는 크리스마스를 혼자 침대에 누워 보냈다. 마음인지 몸인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아픔에 고스란히 하루를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몇 년 만에 혼자 맞는 크리스마스 낯설고 조금은 슬펐지만, 나와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고 스스로를 달랬. 그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이브를 지나 보내고 왠지 모를 허전함에 눈을 뜬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다 추모공원을 찾았다. 한동안 보지 못한 형을 만나러 간다기에 반가운 마음에 친구를 따라나섰다. 차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가는 동안 차창 밖 풍경을 물끄럼히 바라봤다. 누렇게 바랜 들판과 앙상해진 나뭇가지가 겨울이 왔다는 걸 알려주었다.  살을 애듯 추웠지만 쨍하게 맑은 하늘 덕에  차갑게 느껴지만은 않다.


추모관 바깥에서 잠시 친구를 기다리며 햇살이 내리쬐는 잔디밭을 한참 바라봤다. 추운 날씨에도 햇볕이 참 따뜻했다. 항상 겨울은 차갑고 서글프다고만 생각했는데 새삼 겨울볕이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추운 겨울도 따뜻한 햇살과 맑은 하늘이 있어 마냥 춥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적잖이 위로가 되어주었다.  




봉안당에 도착해 친구가 형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 로비에 걸려있는 방문객의 쪽지를 읽었다. 부모 조부모, 혹은 자녀에게 전하는 짧은 편지들이 게시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각자의 사연이 담긴 쪽지를 하나씩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다. 그 짧은 글에 꾹꾹 눌러 담긴 애틋한 마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장인어른 이곳은 많이 춥습니다. 계신 곳은 따뜻하신지요? 따님 곁엔 제가 있을요. 그러니 이제 걱정 말고 쉬세요.'

'엄마, 오랜만에 왔지? 손녀같이 왔어.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 보고 싶어.'

'아버지 뵙고 갑니다. 어릴 적 생각했던 아버지상을 저는 어떻게 하고 있나 되새깁니다. 그립습니다.'

'딸, 보고 싶지만 참고 있을게. 언젠가 너 만날 때까지 기다릴게. 엄마가 딸 있는 곳으로 갈게. 사랑해'


글을 읽는 내내 마치 누군가 곁에서 함께 그 마음을 읊조 듯했다. 그리고 문득 이 추모공원 단지 돌아가신 분들의 유골을 모신 곳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했던 이들의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차갑고 쓸쓸하게 느껴졌던 이 공간이 친숙하고 따뜻 곳으로 느껴졌다.

이 아이가 적은 편지에 모든 마음이 담겨있었다.

친구와 함께 형을 만나고 나오는 길 다른 친구의 부모님을 만났다. 아들을 보낸 지 5년이 지났건만 어머님은 아들의 사진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사랑하는 이를 보낸 아픔은 얼마의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결코 쉬이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구는 입을 틀어막고 우시는 친구의 어머님을 가만히 끌어안고 다독여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별의 아픔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다. 친구와의 절연이 되었든 연인과의 이별이 되었든, 한때 삶의 모든 것과도 같았던 이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멀어지는 것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기 힘든 고통가져다준다. 


더욱이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떠나보내는 사별의 아픔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단언컨데 겪어본 적 없는 이들이 감히 짐작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상이 부모인지 자식인지, 부부인지 연인, 사람 동인지 따위는 전혀 중요치 않다. 다만 차원을 초월한 영원한 이별 앞에서 느끼는 감정 단순히 '이러한 것이다'라고 쉬이 형언할 수 없는 류의 것.

 

그 어떠한 노력해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인간은 아주 깊이 좌절한다. 그리고 아무리 애끓듯이 그리워도 절 다시 만날 수 없는 존재 한 사람 인생을 두리째 뒤흔든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누군가가 그 무너진 마음을 딛고 다시 일어나는 것, 그 사무치는 그리움을 품은 채 남은 생을 홀로 살아가는 것. 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참으로 어렵고 버거운 일이다.

형님에게 선물하고 온 꽃송이

여름은 내게 환희와 열정을 담은 계절이다. 쏟아지듯 작열하는 햇살과 괜스레 잠 못 들게 설레이는 여름밤이 그렇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나는 생의 기운을 한껏 머금고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며 여름을 만끽한다. 그에 반해 겨울은 내게 외로움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잿빛하늘에 흩날리는 눈발과 황톳빛으로 메말라붙은 산과 들이 그렇다. 그렇게 생의 기운을 잃은 겨울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기고 괜스레 서글퍼진다.


문득 겨울이 그리움이라감정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움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에 대한 애틋함과 간절함을 담고 있기에 마냥 편하게 느낄 수만은 없는 감정이지만, 이 그리움는 누군가와 함께 나눈 추억들 고스란히 배어 따뜻하고 아름다운 감정 데리고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움은 마치 겨울처럼 춥지만 따뜻하고, 서글프지만 아름다운 존재 것 같다.


겨울 또한 추위를 뚫고 따뜻함을 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온기를 가져다 준다. 설레는 함박눈이 추위를 잊게 하고, 귀가 후 마시는 한잔의 핫초코와 따뜻한 샤워가 그 추위조차 사랑하게 만들어주듯 말이다. 그래서 겨울도 그리움도 내게 더이상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이제는 그 안에 머물며 그들이 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


지금부터 이 겨울 조금씩 사랑해보려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 산타 그리움조차 사랑하는 마음을 선물 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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