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우울증에 걸린 상담자
08화
실행
신고
라이킷
24
댓글
3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방랑전문 상담사 덕규언니
Mar 03. 2024
우울증 환자의 가족으로 사는 것
혼자이기 싫은데 혼자 있고 싶어요
먼 곳으로 일하러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내 삶도 자연스레 혼자 지내는 삶에서
둘이 함께하는 삶으로 바뀌었다.
남편이 오던 날까지도 계속 잠들어있던 나는
당일이 돼서야 집을 치우고
음식을 준비했다.
거울 앞에 서서
여러 번
웃는 표정
을 연습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남편을 맞이했다.
전화로
전해 듣던 내
모습을
직접
본
남편은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내심 놀란 듯했다.
퀭해진 얼굴, 바짝 마른 몸, 생기를 잃은 눈.
왜 이렇게
되었느
냐 물었지만 답 할 수 없었다.
남편은 피가 나도록 몸을 긁어대는 내 모습과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나를 보며
그간
혼자서 이토록 힘들어했
었
냐고 물었다.
그의 질문에 그간의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는 나를 돕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아침 일찍 나를 깨워 집 밖으로 끌어내었고
동네 산책을 다녀온 뒤 깨끗이 씻게 했다.
남편의
배꼽시계는
정확한
시간에
울렸
다.
허기도 식욕도 느끼지 못했지만
하루 3번
음식을 꼬박꼬박
넣어주다 보니
조금씩
사라졌던 식욕이
돌아
왔
다.
약에 적응하면서 조금씩 호전되는 상태와
남편이 돌아오면서 생긴 생활환경의 변화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시너지를 일으켰다.
잠시나마
그렇게
좋아지
고 있
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단약을 시작하면서
나의 상태는 다시
조금씩
이전으로 돌아갔다.
남편 없이 혼자인
삶이
힘든
줄로만
알았는데
남편과 함께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힘들어했다.
바뀐 삶의 환경은 분명 내게 좋은 것이었지만
아픈 상태의 내가 소화하기에
는
버거
웠
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벅찬
몸뚱아리를
매일
루틴 속에 몰아넣는 것이
부담스러웠
다.
나를 도우려는 남편의 노력에 부응하기 위해
나름
의
애를
기울여
봤
지
만
어
느 것도
쉽지 않
았
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나가고, 밥을
욱여넣어봐도
도무지
무언가를 할
엄
두가
나지 않는다.
남편은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못마땅하
다.
이런 내 모습을 보다
못
해
남편
마저
나
에
게
지
쳐
버
릴
까 불안하고 두
려운 마음이
든
다.
이유 없이 쏟아지는 울음과 통제되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괴롭힌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과
부정과 우울로 점철되어 있는 나의 바닥을
그에게 고스란히 보여줄 때마다 좌절스럽
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혼자만의 삶은
외롭고
적막하
지만 한편으론
안락
했다.
혼자
가
싫지만 혼자 있고 싶은 모순적인 마음은
가뜩이나 혼란스런
나를 더 괴롭게 만든
다.
아픈 나를 지켜보
는 그는
많이 힘들
것이다
남편에게 짐스러운 존재가 된 것 같아 슬프다
계속
부정을 토해내는
나 자신이
부담스럽다
누구를 만나든 기운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하
다
나
만 아니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은 상황,
나만 없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기분.
내 존재의 부적절함과 불편감을 감당하는 건
매번
매 순간
느낄 때마다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병과 끝없이 싸우는 것은
환자 자신도 그의 가족도 힘들게 한다.
왜 이러는 것인지, 뭐가 문제인 건지.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지금의 내가
답답하고 안쓰러우면서도 많이 싫다.
징글징글하게 반복되는 상황들이
지치고 질리고
포기하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포기할 수 조차 없는 지금이
더
지치고 질리고 징글징글하다.
keyword
남편
환자
우울증
Brunch Book
우울증에 걸린 상담자
06
가을잠을 자는 중입니다
07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08
우울증 환자의 가족으로 사는 것
09
어쩌다 우울증에 걸린 거냐는 물음
10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질 때
우울증에 걸린 상담자
방랑전문 상담사 덕규언니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11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