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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울증에 걸린 거냐는 물음

우울의 이유와 벗어날 방법에 관한 고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내고 있었다.

크게 힘들 것도 즐거울 것도 없이 그냥저냥.

전에 없이 건조하고 무미한 내 모습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어느 날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어왔다.


'어쩌다 우울증에 걸린 거냐'는 그의 질문에

한참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게...

무엇이 나를 이렇게 우울하게 만든 걸까.

생각할 겨를 없이 그저 아픔 속에 머물던 나는

그제서야 스스로에게 왜 아픈지 물었다.



처음 이 우울이 시작된 때를 돌이켜 봤다.

1달간의 마지막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로

마치 생의 과업을 다 끝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3번의 도전 끝에 5년 만에 마무리한 신혼여행은

후련함과 성취감 보단 허무함을 가져다줬다.

나는 고작 이 여행을 마치기 위해 그 긴 시간

그토록 매달려왔던 건가 현타가 찾아왔다.


10대 입시를 할 때도, 20대 직업을 가졌을 때도.

오래도록 염원한 것을 손에 쥐었을 때 느꼈

감정들은 대게 기대했던 모습과는 다를 때가 많았다.


30대가 되며 처음으로 품은 꿈이었건

오랜 시간 완성하려 애써온 세계일주의 꿈은

성공도 실패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끝났다.

 여행이 끝남과 동시에 내 삶의 목적도 사라졌다.



여행하며 마주한 나의 민낯은 딱하고 슬펐다.

가족대신 나를 사랑해 줄 대상을 찾기 위해

나의 존재 가치를 세상에 증명해 내기 위해  

홀린 듯 세상을 떠도는 한 여자아이를 만났다.


몇 천 km를 날아가 혼자가 아닌 생일을 보내고

생판 남인 가족들에게 사랑을 구걸해 보았지만

내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질 없는 

것들은 바다 건너 새로운 땅에서도 여전히 나의 것이 아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애써 외면하며 회피해 온 그 잔인한 사실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다는 걸.

프고 슬 진실은 결국 나를 무너뜨렸다.



깊고 어두운 우울의 늪에 빠져 한참 허우적 대다 

속에서 끌어당기는 것들이 뭔지 궁금해졌다.

나는 거실 바닥에 큰 종이를 펼쳐놓고 내가 우울한 

이유에 대해 닥치는대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건강하지 않은 몸과 마음의 상태와

그로 인해 미뤄지고 있는 직장복귀,

여전히 엄두가 나지 않는 임신준비와

구석구석 산재해 있는 현실적 어려움들.


오래도록 반복되어 온 고질적인 문제들과

그로 인해 마음속 깊이 새겨진 무력감까지

마치 자신들을 알아봐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삶 전반에 걸친 근심과 걱정들이 쏟아졌다.


이렇게 부정으로 가득한데 머릿속이 맑을 리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던 마음

조금이나마 이해 것 같았다.


우울로 점철된 내가 싫어 계속 밀어내왔는데

마음이 이해되자 도와주고 싶은 라왔다.

답도 해설도 없이 문제만 빼곡한 종이를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이 늪에서  수 있을까 고심했다. 


늪에서 나올 방법을 알지는 못하지만, 단 한 가지

이제 더 이상은 이 문제를 피하거나 미룰 수 없으며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풀어야 한다는 것은 알겠다.



24시간 통증을 호소하는 몸을 돌보기 위해 그리고

틈만 나면 어둠으로 빠져드는 마음을 건지기 위해

뭐가 되었든 일단 닥치는 대로 해보기로 했다.


손에 짚이는 대로 건강과 심리학 관련 책을 읽고

운동이든 음식이든 도움 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상담을 받아보려 한.


내 몸이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과연 내 마음에 빛이 들고 힘이 생길지

아니면 다시 무너져 깊이 가라앉아버릴지

아직은 어느 것도 알 수 없지만 이대로

늪에 파묻혀 잠식당할 수만은 없다.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나를 건져내기 위해서

잠자코 늪 한 가운데서 버티고만 있을게 아니라

우울을 집어던지고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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