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입국 금지 대상인 나라'에서 '세계의 방역 롤모델이 되는 나라'가 되기까지 1달의 시간이 걸렸다. 중국이 질타를 받던 당시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배낭에 달았던 국기 모양 배지는, 어느새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되었다. 한국에서 날아드는 뉴스를 볼 때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와 '강제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따라주는 국민성'에 감탄했다.
우리나라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잘 갖춰진 배달시스템 덕에 사람들은 공격적 사재기를 하지 않았고, 강요하지 않아도 마스크를 끼고 다니면서 각자 알아서 조심했다. 가끔 개념 없는 사람들로 인해 주춤하던 감염이 다시 확산되고 거리두기 기간이 연장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노력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걱정보단 뿌듯함이 컸다.
바깥 활동을 자제하고 집에만 박혀있던 탓인지 연락을 주고받는 이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집안에서 머무는 동안 직장인, 주부, 학생 할 것 없이 모두가 지쳐있었고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그러나 어김없이 겨울이 가고 꽃이 피듯 봄은 찾아왔고, 사람들은 산과 들로 꽃놀이를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일상이, 그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모두가 실감하고 있는 듯했다.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
전세계 각국에서 우리나라의 진단키트를 사기 위해 전세기를 보낸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리고 물품을 실어 갈 비행기가 각국에 고립되었던 한국인들을 태우고 날아간다는 소식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많은 나라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흩어져 있다는 것에 한 번, 우리나라의 발전 수준에 다시 한번 놀랐던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론 내가 지금껏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살아왔는지 생각하게 됐다.
한국이라는 작은 세상 안에서 그 세상이 전부라 생각해 왔던 내게, 그 세상 밖에서 바라보는 더 큰 세상은 참으로 생경했다. 들은 거라곤 '어느 시 무슨 구에 김 아무개 씨가 어쨌다'는 뉴스뿐이던 내게, 매일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이야기가 친숙하게 다가왔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터키 뉴스보다 몇 마디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 뉴스가 반갑게 느껴지는 것이 마치 시트콤처럼 느껴졌다.
전 세계 국가들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 또한 살면서 처음 해보는 낯선 경험이었다.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나타난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로 인해 하루에 수 만 명이 감염되거나 목숨을 잃는 것도,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추어버린 이 지구 상에 지금 내가 살고 있다는 것도. 모든 것이 현실감 없게 다가왔다.
실시간으로 수치가 카운팅 되는 감염 지도는 실로 충격이었다
나의 세상 밖에서 바라본 '그들이 사는 세상'
인도에서는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도시 사람들이 200킬로 넘게 떨어진 고향집으로 걸어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 중 대다수가 살던 빈민촌에선 1000명 이상이 하나의 화장실을 함께 사용해야 했고, 그들 중 일부는 돌아갈 거처조차 없었다. 그들에게 코로나는 단순한 '전염병' 이상의 것이었고, 코로나로부터의 안전과 보호는 실현불가능한 사치였다.
아프리카에서는 식량이 없어서 사람들 간의 무력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그것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전염병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배고픔이 더 두려운 존재였다. 누군가가 '당장 마스크를 구할 수 있네 없네' 혹은 '화장지가 부족하네 마네'를 두고 싸우는 동안, 누군가는 화장지와 마스크는커녕 당장에 먹을 음식과 머물 집조차 구하지 못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바라본 코로나
사실 이것은 코로나가 있기 전부터 존재해왔던 현실이다. 전혀 놀라울 것이 없을 만큼 익숙한 현실. 누군가가 더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하고 좋은 집과 차를 갖지 못해 불평할 때도, 지구 상에 누군가는 여전히 당장에 먹을 식량이 없어 죽어갔다. 이것은 지금껏 세상에 당연하게 존재해왔던, 그러나 전혀 당연하지 않은 현실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두가 생명의 위협을 겪으며 일상을 잃어버린 지금, 생명을 잃게 될 순간에도 빈과 부는 공평하지 않다는 현실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모두가 죽음 앞에 놓인다'는 것에서 삶이 공평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죽음이 '얼마큼 가까이에 위협적으로 다가오느냐'가 그가 '얼마큼을 가졌느냐'에 달려있기에 '죽음과 삶'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코로나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고 외딴 나라에 갇혀 있는 지금, 내가 처해있는 지금의 상황은 그들 앞에서 감히 '코로나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할 만한 거리가 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누군가에게는 생명이 달려있는 상황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내가 처한 상황보다, 누군지도 모를 그들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은 내가 세상을 조금 더 큰 시야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세계 뉴스에 보도되었던 이탈리아 발코니 콘서트
발코니에서 희망을 보았다
어느 날 아침 이탈리아에서 발코니 콘서트를 하는 영상이 뉴스에 나왔다. 하루에 몇 천명씩 사망자가 발생하는 탓에 전 국가에 셧다운이 내려진 상황이었다. 집안에 갇혀 움직일 수 없었던 그들은 자신의 발코니에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있었다. 두려움과 절망에 갇혀 있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보여준 여유로움과 긍정적인 마음은 전 세계 사람들을 깊이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탈리아에서 발코니 콘서트를 여는 동안 터키에서는 발코니 박수 타임을 가졌다. 밤 9시에 모든 사람들이 발코니에 나와 코로나로 고생하고 있는 이들에게 격려의 함성과 박수를 보내는 시간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5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각자의 발코니에서 전등불을 깜빡이고 휘파람을 불면서 우리는 서로에게서 위로를 받고 또 격려를 보냈다.
온 가족이 함께 발코니에 나와 동네가 들썩이도록 박수와 함성을 보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온종일 사활을 걸고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애썼을 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상황 속에서도 삶이 지속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타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현장에서 분투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기 때문임을 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무수한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있기에 이 모든 상황이 언젠가는 끝나리라 믿고 또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