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 머무르기로 확정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터키의 코로나 확진자는 1명에 불과했다. 뉴스에서는 외국 여행을 다녀온 터키 남자라는 사실이 보도되고 있었지만 그가 현재 이스탄불의 한 병원에 있다는 것 말고는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었다.
뉴스를 보던 내가 '그래도 아직 확진자가 많이 없어서 다행이다'라고 했더니 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입을 모아 뉴스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정부는 모든 것을 숨기고 진실을 알려주지 않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 하기 때문에, 현재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염되었고 죽었을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터키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가진 불신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국제적인 위기상황에서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 당시 나는 가족들의 반응에 의아해했다. 그러나 '설마 그럴까'라는 나의 믿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졌다.
터키 군인의 사망과 정부의 대응
2020년 2월의 어느 날, 내전 중인 시리아와 터키 접경지역에서 정부군의 공습에 의해 터키 군인 34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터키 뉴스에서는 연일 그곳에서 일어난 사고를 보도했고 모든 채널에서 폭발에 의해 터키 군인이 죽는 위성영상이 흘러나왔다. 같은 뉴스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굳어졌다.
시리아 내전에 의해 터키 군인이 30명 넘게 사망한 만큼 터키와 시리아는 물론 러시아를 끼고 전쟁이 일어날 수 도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젊은 군인들의 죽음으로 나라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졌고 군인들에 대한 애도와 정부에 대한 분노로 인해 SNS가 떠들썩해졌다.
다음날 아침 갑자기 집에서 사용하는 인터넷과 핸드폰 인터넷이 일시에 중단되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인스타그램과 왓츠앱 같은 SNS도 함께 먹통이 되었다. 어젯밤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던 터키 친구들과도 연락이 끊어졌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인터넷은 다시 복구되었지만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일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다시 인터넷이 복구된 후 친구와 가족들에게 '왜 갑자기 인터넷이 안 되었던 거냐'라고 묻자 다들 아무렇지 않게 '정부가 인터넷 상에서의 반정부 여론 형성을 제재하기 위해 중단한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 같은 초연결 시대에 한국에서 어떤 사건으로 여론이 떠들썩해 지려 할 때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이 중지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로선 납득도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보였다.
시리아와 접경지역인 동부 터키지역은 여행자제 지역으로 지정되어있다
터키에서 시작된 코로나
그날 이후 뉴스에서 나오는 소식들이 전부 사실은 아닐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날부터 터키의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5-6명씩 소소하게 증가하는 확진자 수와는 달리 정부는 전국의 학교에 2주 간 휴교령을 내리고 인접 국가들로부터의 출입국을 전면적으로 막았다. 초기 대응이 지나치게 강력하다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실제 상황이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코로나 예방수칙과 다른 나라의 상황에 대해 보도했다. 유럽 국가들의 기하급수적 증가 소식과 더불어 간간히 중국과 한국의 소식도 들려왔다. 매일 밤 10시에 정부는 공식적인 브리핑을 통해 그날의 감염자와 사망자 수를 공지하고 변경된 정책에 대해 알려주었다. 매일 가족들은 거실에 모여앉아 숨을 죽여 뉴스를 시청했다.
하루하루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국민들에 대한 제재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나이 든 사람과 어린아이들의 바깥출입 자체를 제한했고 이를 어기는 이들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뉴스에서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모여 앉아 있지 못하게 공원과 길거리의 벤치를 철거하는 모습이 보도되었다. 며칠 뒤 모든 카페와 레스토랑이 영업을 중단했고 모스크에 모여 기도하는 것 조차 금지되었다. 온 도시가 죽은 듯 멈췄다.
매주 금요일에는 더욱 강력한 조치들이 발표되었다. 갑작스럽게 도시 간 이동을 무기한 통제한다거나, 주말 동안 거주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통행금지를 한다는 등의 발표들은 가뜩이나 불안한 사람들을 패닉에 빠뜨렸다. 당장 몇 시간 뒤부터 집안에 꼼짝없이 갇히게 된 사람들은 크게 동요했고, 주민들은 식량이 떨어지기 전 음식을 사들이기 위해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마스크는커녕 양말 조차 신지 못한 채로 무작정 마트와 빵집에 몰려든 사람들은 앞다투어 물건들을 사재기했다. 그 과정에서 싸움과 감염이 일어나는 것을 걱정한 정부는 이후에 이동을 통제하는 대신 아침마다 빵차를 보내어 식량을 배급해 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안감이 증폭된 사람들은 불만을 토로하며 들썩였고 종종 여러 지역에서 규율을 지키지 않는 이들과 이를 제재하기 위한 경찰들 간의 싸움이 일어났다. 몸싸움을 하고 공포탄까지 쏘아대며 대치하는 그곳의 모습은 전시상황을 방불케했다.
미리 예견된 재앙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병원 전체가 비상근무체제로 바뀌어 코로나를 제외한 치료는 불가능하게 되었고 병원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환자를 맞을 병상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상부로부터 '10일 뒤에 어떤 사태가 터질지 모르니 예의 주시하며 상황을 준비하라'는 지침을 받았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마음이 덜컥하고 내려앉았다.
그 어느 것도 예측할 수 없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10일 뒤'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나올 수 있는 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입국이 금지되기 전 메카를 다녀온 2만 1000명의 사람들이 얼마 전 대거로 입국하였고, 그들이 어떠한 검사나 조치 없이 터키 전국 각지로 흩어져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하루 종일 문자로 '감염자의 거주지, 나이, 성별과 그가 몇 시 몇 분에 어디를 돌아다녔는지'까지 자세하다 못해 투머치 하다 싶을 만큼 다 알려주는 한국과는 달리, 터키에서는 감염자의 정보에 대해 어떤 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역학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인지, 정부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국민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각자가 알아서 이동을 삼가고 스스로 조심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 뉴스에서 터키 내 지역별 감염자 숫자를 알리는 지도를 본 순간 친구의 말이 떠오르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우리나라 8배 크기의 터키 전역에 확진자가 고루고루 퍼져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 모두가 필수적인 일을 제외하고 외출을 삼가였다. 그렇게 10 식구가 함께하는 집에서의 자체 격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