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상처를 바라보는 새로운 마음

3년 전 터키에서 겪은 사고의 충격으로 오른쪽 촛대뼈 위에 엄지손가락 크기의 깊은 상처가 생겼다. 앞좌석에 부딪히며 생긴 파열상이었는데 걸으려고 땅에 발을 내딛기만 해도 압력이 가해져서 상처가 터졌다. 한 달 가까이 아물고 터지고를 반복하던 상처에 겨우 딱지가 내려앉을 무렵, 상처에 바를 연고를 사기 위해 약국을 찾았다.


나는 터키 말을, 상대는 영어를 할 줄 몰랐기에 상처의 상태를 면밀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저 다리에 흉지는 것이 겁나 '흉터가 안 생기게 하는 연고를 달라'고 했던 것 같다. 검붉게 내려앉은 피딱지 위에 이 연고를 바르는 게 맞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당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무작정 하루 2번씩 열심히 연고를 발랐다.



2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상처가 속에서부터 썩어가고 있단 걸 알게 됐다. 그간 열심히 발라왔던 연고를 보여주자 의사는 피부조직의 활동을 저지해 흉이 안 지게 만드는 연고라며, 그 연고가 되려 그 상처가 회복되지 못하고 덧나게 만들었다고 했다.


한참 이리저리 상처를 살펴보던 의사는 상처부위를 낫게 하기 위해서는 괴사 되어 썩은 피부조직을 덜어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내가 혹여나 떨어질까 금이야 옥이야 조심히 돌보아왔던 두꺼운 피딱지를 뜯어낸 것으로도 모자라 매일 아침마다 상처 속을 긁어냈다. (치료받던 당시의 사진이 있지만 너무 적나라해서 차마 올릴 수가 없다. 아쉬운 대로 치료 전과 후의 다리라도 내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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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제도 없이 뼈가 훤히 보이는 생살을 긁어내어 피가 나게 만드는 그의 치료법은 선뜻 이해하기도, 견뎌내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피가 많이 흐를수록 새로운 살이 잘 돋아날 수 있다며, 상처가 나아지려면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뎌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치료법은 매일 침대시트를 뜯어내며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릴만큼 고통스러웠지만 내 상처는 신기하리만큼 빠르게 회복되어 피부이식 없이 온전히 내 살로 채워질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저 상처에 도움이 되겠다 싶은 것을 마구잡이로 덧발라대니까. 그건 술이나 담배, 음식과 같은 물질 일수도 있고, 때때로는 파괴적인 행동이나 건강하지 못한 누군가와의 관계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상처가 나아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덮고 있는 딱지를 뜯어내야 한다. 근본적인 상처의 원인을 찾아내어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 상처의 딱지를 뜯어내고 속에서 곪아 썩어가고 있던 죽은 조직들을 긁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비록 그 과정에서 가슴에 피가 철철 나고 때로는 죽을 만큼 아프겠지만 그를 통해 마음에도 깨끗한 새살이 돋아나고 비로소 상처가 아물 수 있다.


상처는 흉을 남긴다

내 몸에는 다리뿐만 아니라 팔에도 큰 흉이 남아있다. 그것은 사고 당시 팔목이 산산조각 나면서 받았던 수술 자국이다. 본디 털털한 성격에 외양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나였기에 처음에는 수술 자국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에 큰 흉이 지고 나니 나도 모르게 옷자락을 끌어내리거나 짧은 옷을 입는 걸 망설이게 됐다.


사실 눈에는 흉터가 크게 징그럽거나 많이 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남들이 그것에 담긴 이야기를 궁금해하거나 나를 딱하게 바라보는 것이 조금 불편할 뿐이다. 얼마 전에는 흉터 복원을 전문으로 하는 성형외과 병원에도 찾아 보았다. 그러나 의사는 뼈와 가까이에 있는 얇은 피부라 시술을 받는다고 해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나의 속상함을 달래기 위해 의사가 건네었던 말들 ㅡ '이제 젊지 않으니 짧은 바지나 민소매를 입을 일이 없다' 혹은 '그래도 결혼을 했으니 괜찮다(?)'ㅡ 따위의 말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미니스커트를 걸치는 멋쟁이가 되고 싶었고, 내 몸의 상처는 전혀 결혼에 하자가 될 만한 항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이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속상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이 흉터들까지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부터 흉터를 마냥 속상해하는 대신 흉터 위에 문신을 새겨 넣을까라 생각이다. 아주 멋지고 기가 막힌 걸로, 남들이 보기만 해도 우와 소리가 나는 근사한 문신으로 내 흉터를 꾸며줘볼까 싶다.


왜 인지 팔의 흉터는 비포가 에프터 보다 더 나은 것 같다


마음의 상처도 흉을 남긴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혹은 무언가로 인해 생긴 마음의 상처는 한 사람의 가슴에 흉으로 남아 평생토록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준다. 그 흉은 조금 모나고 삐딱한 마음 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 대한 불신 일 수도 있으며, 특정 부분에 대한 민감한 반응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스스로를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순간부터 흉터는 더 이상 흉이 아니게 된다.


언젠가 박막례 할머니가 그랬다. '흉터는 고통을 이겨낸 사람들이 가지는 훈장 같은 거라고. 그러니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글을 읽은 날 내가 할머니에게 받은 위로는 이루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마치 나에게 너의 흉터는 자랑스러운 것이니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나의 흉터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 몸과 마음에 남은 흉을 숨기려 애를 쓰기보단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조만간 흉터가 내게 가르쳐준 것을 그 흉터 위에 새겨보려 한다.


Hayat Devam Ediyor(Life goes on)


언젠가 아빠가 내게 해줬던 '그럼에도 삶은 계속 된다'던 그 말처럼 그럼에도 나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소중한 것을 가르쳐준 흉터는 내게 더 이상 숨기고 싶은 흉이 아닌 하나의 멋진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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