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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은 May 03. 2016

당신은 힘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복잡한 생각 중 엉켜버린 나의 머리카락 같이 엉켜있는 로프들이 가득한 항구 조용한 밤바다에 붉은 듯 울렁거리는 가로등불이 가득하다. 차가운 평상 위 다리를 펴고 편하게 앉아본다. 나를 포함해 모든 것이 어떠한 움직임도 없는 정적 속, 이를 깨는 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본다. 검은색 긴 생머리, 편한 운동복 차림에도 우아한 여자가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복잡하게 엉킨 나의 생각들이 궁금하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뭐가 그렇게 복잡하신가요?”


그 물음에 대답조차 할 수 없는 나의 입은 아무 말이나 그냥 뱉어버렸다.


“방금 온 당신이 복잡합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는 갑자기 온 설렘에 아무 말이나 뱉어버린 나를 속으로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제가요? 제가 뭐가 복잡해요. 그냥 단순히 아무도 없고 이렇게 무서운 곳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인데요.”


나도 알 수 없는 나의 생각과 마음들을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하지만 처음 보는 그녀에 매력에 빠져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두루뭉술하게 나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나의 입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저기 저 가로등 불빛 보여요? 어둠뿐인 바다 위에서 힘없이 울렁이고 있어요. 그냥 저렇게 조용하게 울렁일 뿐 누구에게도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지 않는 가로등이 그냥 저 같아서 바라보고 있었어요.”


나의 너무나 추상적인 대답에 그녀는 잠시 당황하는 듯했으나 곧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 좋아하고 있는데 그것을 말하지 못하고 있군요. 그 사람 앞에서 빛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슬퍼 그러고 있었던 거 맞죠?”


순간 눈이 커졌다. 나의 이런 추상적인 말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노력한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처음 보는 사람이 나도 잘 모르는 나의 마음을 읽어 낸다니 뭔가 그녀에게 더 끌림을 받았다. 


“네 누군가에 앞에 빛나고 싶은데, 그 누군가가 지금 내 앞에 있네요.”


밑도 끝도 없는 나의 대시에 그녀는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즐거워하며 곧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더 알고 싶어 졌다. 서로의 마음을 부끄럼 없이 털어 내는 것에는 술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술을 마시러 갔다. 서로의 호기심에 한잔 두 잔씩 들어가는 술. 분위기는 그렇게 무르익고 있었다.     


존재하는 것이라곤 술 그녀 그리고 나뿐인 공간에서 그녀는 나를 조금씩 더 빠르게 흡수해갔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떤 노래보다도 감미로웠고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는 어떤 춤보다 섹시했다. 농밀하게 짖어지는 우리의 눈빛 속에 분위기는 점점 위험해지고 있었다. 점점 달아올라 내가 나를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가기 직전 그녀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왜 바다에 비치는 가로등 불빛이 힘이 없다고 생각해요?”


술이 확 깼다. 아까의 감정은 모두 지워버린 채로 그녀에게 푹 빠져 있었다니. 갑자기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술기운을 누르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잖아요. 나를 봐달라고 소리치지 못하잖아요. 그저 수줍은 불빛만 내뱉으며 그렇게 조용히 아름답게 빛날 뿐이잖아요. 못 보고 지나친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잖아요. 그냥 힘이 없어 보였어요.”


무엇이 그렇게 웃긴지 계속해서 웃던 그녀가 나에게 대답했다.


“지금 내 앞에 당신이라는 가로등은 정말 나에게 힘차게 빛나고 있는데요? 목소리도 아주 크고요.”


나를 아주 들었다 놨다 하는구나.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까의 나의 장난을 복수라도 해주는 듯 그녀의 장난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너무 오랜만에 설렘 가득한 감정에 나는 황홀했다.


 그렇게 설렘 속에서 해가 뜨기 전까지 가로등 불빛은 아주 힘차게 빛나고 있었다.     



해가 뜨고 그녀와 나는 자리를 마무리하고 서로의 갈 길을 가기 전에 마지막 인사였다.


"오늘 고마웠어요."


“저도 감사했어요. 힘차게 빛나는 가로등 씨 당신을 괴롭히는 모든 것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요. 그나저나 우리가 여기서 더 이어진다면 언젠가 제가 당신을 바라보는 눈길은 사라지겠죠? 저는 당신이 다시 힘이 없는 가로등 불빛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냥 이렇게 평생 누군가의 힘차게 빛나는 가로등 불빛이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내가 당신에게 주었던 눈길 끝까지 기억하길 바랄게요.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그리고 행복했어요. 너무 설레었어요.”


그녀와의 인연을 끝까지 가져가고 싶었지만, 끝까지 힘차게 빛나는 가로등 불빛이 되라던 그녀의 말에 나는 이어가기를 그만두었다.      



나의 한 여름밤에 짧은 사랑이 이렇게 지나갔다.


누군가에게 항상 빛나는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에 입가엔 미소가 번져온다.

아쉬움에 대가라기엔 너무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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