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시절도 놓치지 않고 추억을 함께해온 아주 소중한 친구가 있다. 남자들이 늘 그렇듯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행동은 상당히 과격했다. 욕은 기본이고 무언가를 챙겨줄 때에도 항상 잔소리가 뒤따라오는 그런 아주 가까운 관계였다. 서로의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세상 그 어떤 말로도 나와 그 친구의 관계를 상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 친구의 생일날, 그는 그 누구도 아닌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며 소중한 생일날의 시간을 나에게 주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고맙다고 와줘서 정말 좋다고 걸걸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나의 대한 마음이 느껴졌다.
술 잔과 함께 붉어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매번 강한 모습만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맨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웃는 얼굴로 나에게 말을 했다. 처음엔 웃으며 청승 떨지 말라고 장난으로 넘겼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말이 가슴에 남아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그의 진지하고 심각한 고민들도 많이 듣긴 했지만 이번만큼 충격적이었던 말은 없었다.
“내가 요즘 자기 전에 소주 한 병을 원 샷을 하고 자.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친구는 힘들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살만하다, 다 잘되고 있다. 너만 잘하면 된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소주 한 병을 먹고 잔다니. 얼마나 힘이 들면 그러한 생각을 할까. 저 말을 듣는 순간을 말로 표현하자면 무언가 나의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슴이 정말 아팠다. 평소에 서로에게 연민의 감정을 많이 느끼지 않는 사이였기에 당당한 그의 모습 뒤에 감싸주고 싶은 감정은 나에게 익숙하지가 않았다. 익숙하지 않았기에 더욱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바라봐 주는 이 하나 없이
홀로 독방에 앉아
잊기 위한 마취제를 마셨다는 것이.
그 순간 그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세상 어떤 위로도 그에겐 치료제가 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았다. 내가 하는 말들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는 그 친구의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상황에서의 아픈 감정은 알지 못했기에 함부로 말을 하기 힘들었다.
그저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술잔을 부딪치고 잊기 위한 마취제를 같이 마셔주는 일 뿐이었다.
혼자가 아닌 둘이라는 위로를 주는 것뿐이었다.
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다른 이가 있기에 기억될 수 있다. 사람은 혼자로써는 죽지도 못한다. 혼자라는 아픔은 항상 이렇게 아프다. 웃는 네 얼굴에서 아픔이 온전히 다가왔다.
‘왜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는 것일까. 내 눈앞에 너는 분명 아픈데 왜 웃고 있는 것일까. 혼자임에 아프면 둘이 되어 아프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라는 나의 짧은 생각은 너를 이해하지 못함에 나오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그 후 나의 앞에 모두의 앞에 떳떳하게 서기 위한 너의 선택은 지금 당장 눈물로 섞인 둘이 아닌 웃으며 씹어 삼키는 혼자를 선택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커버린 너는 지금 내 앞에 거대하게 떳떳하다.
나는 너의 선택 끝에 어떠한 결과가 온다 하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너의 용기는 이미 너를 보여 주었고,
너의 끈기는 이미 나를 감동시켰다.
이미 너는 더 큰 사람이고
앞으로 계속 좋은 친구이다.
기도를 한다.
각자 지금보다도 더 큰 힘듦이 오겠지만
마주쳤을 때
웃을 정도로만 힘들게 해 달라고.
딱 그만큼만 힘들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