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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Dec 12. 2018

3. 집으로 가는 길



요전 날 엄마를 만나러 오랫동안 살던 시골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신도시를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온통 논밭이고 산에는 흑염소를 풀어놓고 키우고 저녁이면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한가득인 그런 시골 동네인데 아스팔트를 제법 깔아둔 왕복 2차선 구불구불한 길을 한동안 계속 엎고 덮으며 누더기처럼 공사를 했다. 이제는 길의 양쪽을 가벽으로 막고 키 큰 기계들도 들어와 진짜 공사가 시작됐다. 이곳은 오래 버텨왔지만 이미 이 길로 들어서기 전의 마을들은 아파트와 잘 닦인 길과 상가가 들어온 것이 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이제 여기도 완전히 바뀌겠구나, 아쉬워서 혼잣말하며 커브를 도는데 내가 이사 오기 훨씬 더 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길에서 좀 떨어진 산 밑에 이층집이 몇 채 모여있다.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집은 조립식으로 지어진 하얀 집이다. 그 집은 멀리서 봐도 아주 튼튼해 보이는 집은 아니지만 하얀 몸체에 붉고 흰 벽돌을 번갈아 지은 굴뚝이 바닥부터 지붕 위까지 높게 자리한  예쁜 집이다. 나는 그 집을 가리키며 옆에 있던 상현이에게 말했다. "우리 처음으로 시골집으로 이사 가던 날, 나는 이 길을 지나가면서 우리 집도 저런 집일까, 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둘 다 웃었다. 왜냐면 우리 집은 그런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 시골집으로 이사 간 건 15년 전이다. 나는 중학생이었고 동생은 초등학생이었다.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지며 아빠와 엄마는 오랫동안 살던 아파트를 팔고 새롭게 살 곳을 찾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다니기도 하고 엄마 홀로 여러 곳을 다니며 집을 보곤 했다. 저녁에 가족들이 모이면 엄마는 식탁에서 이면지에 그날 보고 온 집의 구조를 그려주며 우리에게 설명해줬다. 아빠가 함께 다녀온 날이면 둘은 같이 그리며 설명했다. 이 시골집을 찾기 직전에 엄마가 보고 와서 그려준 집은 모든 방이 이어진 구조였다. 방이 이어져있다고? 만약에 내 방이 중간에 끼어 있다면 나는 꼭 어떤 방을 지나야먄 내 방에 갈 수 있고, 누군가는 내 방을 지나야만 자신의 방에 갈 수 있다니. 동화 속에 나왔다면 분명 그 집을 좋아했겠지만 우리 집으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괜찮다고 말했다. 엄마, 어디든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정말로 우리 집이 결정됐다. 우리 집이 결정된 뒤 아빠와 엄마는 다시 한 번 식탁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집을 설명해줬다. 엄마는 '그냥 살려고 지은 집이라 예쁜 집은 아니야. 그래도 마당도 넓고 집도..'라고 여러 가지를 말했는데 더 기억나진 않는다. 내가 듣기에는 지금까지 들어왔던 어떤 집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익숙한 동네를 지나 산 사이에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마을이 보일 때마다 나와 동생은 '여기야?'하고 물었다. 그때마다 아빠와 엄마는 '아직이야'라고 답했다. 처음 가는 길은 더 멀게 느껴지니 우리는 끝도 없이 들어갔다. 넓은 논밭과 과수원도 지나고 하천도 지나고 마지막 보건소가 있는 마을을 지나 우리는 더 이상 어디가 우리 마을인지 묻지 않게 됐다. 사실 이 기억은 기억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날 엄마와 동생은 먼저 집에 도착해있고 나는 학교를 마치고 아빠와 함께 들어갔던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의 내 마음이 그랬다는 말이다.



그렇게 도착한 마을은 충격 그 자체였다. 파출소도, 구멍가게도, 심지어 우체통도 없었다. 이 문장을 읽고 도대체 어느 정도의 시골인지 가늠이 될는지. 그런 마을에서도 갈라지는 길을 모두 지나 산길 같은 길을 올라 막다른 곳에 다다르면 그곳이 우리 집이었다. 그 낯선 골목들을 지나며 집을 만난 뒤 실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를 위해서였고, 아빠와 엄마를 위해서였다.



호빗이 살 듯 낮고 작은 집들을 지나 가장 높은 곳에 붉은 벽돌에 파란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우리 집이 나왔다. 차에서 내려 마당에 섰다. 마당은 넓었다. 이사 간 때는 아직 추운 3월 초여서 마당은 온통 죽은 것처럼 보이는 풀들이었다. 집도 넓었다. 휑하고 커다란 거실과 안방이 있었다. 엄마는 언제 했는지 모르게 이미 도배도 새로 해 뒀고 내 방과 동생 방까지 정리가 거의 다 돼있었다. 나는 집을 구석구석 둘러봤다. 아빠는 "엄마가 영지 방 도배도 다 해뒀어"라며 틈틈이 어필했다. 내 오래된 책상이 들어선 방은 연한 노란빛의 벽지가 곱게 발라져 있었다. 한쪽 벽에는 하얀 샤시의 창이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빠는 내 뒤에서 기대할 때마다 짓는 그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반응을 기다렸다. 나는 일부러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집 좋은데." 아빠는 활짝 웃었고 엄마는 의외의 반응에 놀란 것 같았다.



우리는 그곳에 살며 비가 새는 지붕을 걱정하기도 했고 눈 쌓인 길에  미끄러지는 차를 세우고 언덕을 걸어 넘으며 학교와 회사에 지각하기도 했다. 얇은 지붕과  벽 안에서 추위를 이기려 아빠는 지게에 땔감을 얹어왔고 우리는 난로에 불을 지폈다. 너무 추운 날에는 수도가 얼고 보일러가 터져 겨울 바다처럼 차가운 물이 바닥에 넘쳤다. 아빠는 맨발로 그 물에 들어가 물을 퍼내고 바닥을 닦았다. 여름에는 벌레를 겨울에는 쥐를 쫓으며 살았다. 많은 개를 키우고 떠나보내고 해마다 제비는 새끼를 낳으려 우리 집 지붕을 찾아왔다. 엄마는  계절마다 꽃과 나무와 채소를 심고 거두고 마당을 가꿨다. 마당이 예뻐지면 집도 예뻐보였다. 날아드는 물까치와 멀리 산속의 뻐꾸기와 딱따구리 소리를 들었다. 그 고생을 하며 십 년을 넘게 살았고 나는 그 집을 마음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어느 곳도 그 집을 대신해 '우리 집'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집은 내가 사랑하고, 아빠가 사랑하고, 엄마와 동생이 살아가며 사랑하는 집이다. 그리고 상현이는 지저분하고 낡은 우리 집을 함께 사랑해줬다. 우리의 시골집은 우리의 사랑으로 점점 고운 집이 되었다.



작년 여름에 아빠와 정지용 문학관에 갔다. 교과서로 배우며 누가 이렇게 쓸데없이 긴 시를 썼나, 했던 '향수'가 벽 한쪽에 가득 적혀있었다. 나와 아빠는 말을 잃고 서있었다. 아름다웠다. 이제 나는 그가 고향을 떠나 멀리서 공부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그는 '흙에서 자란 내 마음'이라 적었다. 내 마음도 흙에서 자랐다. 맨발로 흙을 밟고 마당에서 춤을 추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저 산에서 우리 마당으로 비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피할 수 없어 그 비를 맞으며, 나는 그렇게 자랐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동네에 딱 한 명 살던 친구와 걸으며 시시덕대던 날들, 두 시간 반이 넘는 버스의 배차 간격을 계산하며 약속 시간보다 이르게 나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습관, 버스를 타고 종착지인 마을 입구에 내릴 때면 미리 나와 기다리던 아빠와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계절마다 들리던 개구리와 귀뚜라미 소리. 나는 그렇게 자랐다.



내 마음은 흙에서 자라 물을 찾아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려 가지를 뻗고 있다. 나는 지금도 움을 틔우는 중이다. 여전히. 같은 시를 보며 감동하던 아빠에게 언젠가 내 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게을러서, 무서워서 피하다 보니 이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빠는 내가 꽃을 피울 거라, 보지 않고 믿어준 사람이다. 정성스레 꽃을 피우고 언젠가 다시 만나면 아빠에게 내 꽃잎들을 잘 말려 보여줘야지. 꽃이 아무리 작아도 아빠는 손뼉을 치며 좋아해 줄 거다. 늘 그랬듯 영지! 아빠의 기쁨!이라고 불러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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