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닐까

by 울림

경력을 쌓아야 했다.

그래서 공공기관의 기간제 근로자 자리를 선택했다.

디자인 전공자인 나에게, 이 일은 조금 생뚱맞았고,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어디선가 써먹을 수 있는 경험이겠지' 생각하며 들어왔다.


그런데, 내가 상상한 '경력'은 없었다. 나의 디자인 능력을 보여줄 기회도, 그걸 기다리는 사람도, 여기엔 없었다.

나는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싶은데 정작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사소한 것 하나 물어보는 것도 망설여졌고, 괜히 민폐가 될까 조심하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만 이렇게 눈치 보면서 일하는 걸까? 다들 처음엔 이랬을까? 혼자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만 더 무거워졌다. 점심시간엔 직원들이랑 밥을 먹었다. 옆자리 사람들과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조용히 고개만 숙였다. 말을 꺼낼 타이밍을 놓치고, 결국 오늘도 '말없이 먹은 점심'하나가 하루를 채웠다.


그 짧은 30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을까. 왜 밥 한 끼조차 눈치 보게 되는 걸까.


월급날이 오면,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

나는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 돈을 받아도 되는 걸까? 혹시 다른 사람들이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쟨 왜 일도 못하고 잘하지도 못하는데 월급은 받냐고."

물론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무섭다. 조용한 거리감, 말 없는 단절.

그 안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말 한마디 없는 분위기 속에서, 나 스스로를 지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디자인을 하러 왔지만, 디자인 말고 버티는 법을 배우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에도 스스로를 붙들어야 했고, 업무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날에도 내가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믿어야 버틸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버티는 중이다. 비록 내가 바랐던 그림은 아니지만, 이 시간조차 언젠가는 나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 믿고 싶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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