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고 싶을 때 고양이 가면을 쓴다] 감상문
누구에게나 해결할 수 있음에도 모든 걸 내던진 채로 훌쩍 떠나고 싶고, 마주하기 두려워 피하기도 하고, 책임의 무게에 짓눌려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우리는 도피를 생각하고, 꿈꾸곤 한다.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인 '미요'가 그렇다.
부모님은 이혼, 아빠는 새엄마와 재혼을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까지 거부 당하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 여긴다.
주변 사람들을 허수아비처럼 생각해버릴 만큼, 미요는 자신의 삶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어느 날, 가면 장수 고양이에게서 고양이 가면을 받게 된다. 그 후, 히노데가 키우던 고양이 '타로'의 모습으로 지내게 된다.
가면 장수는, 그동안 미요의 인간 가면을 다른 고양이에게 넘겼다. 그렇게 그녀의 삶은 고양이에게 빼앗긴 상태가 되었다.
이런 내용에 의해 나는 두려움이 일어, 이 다음을 볼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내가 아닌 무언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꿈처럼 바라던 내용이지만, 내 삶을 누군가가 대신 살아간다는 게 섬뜩하기도 했다.
나는 여기에 있는데, 내가 있을 자리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가면 장수 고양이가 무서운 존재처럼 묘사됐기 때문이다.
2시간 남짓되는 시간 중,
남은 39분을 다 보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 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봐야만 끝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이 애니메이션이 바란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미요가 자신이 생각한 게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나서, 안정적으로 지내게 된다. 지나가는 친구들에게 인사하자 모두가 어색해 하지만, 기분 좋게 받아주는 모습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 누구도 미요를 진심으로 싫어한 적 없었다는 게 드러난다.
그저 미요의 과거 상황이 미요를 홀로 남게 만들었던 것이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이 사람한테 이렇게 대하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나는 이 사람이 좋은데, 내 모든 면을 다 보여주게 되면 실망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그건 그 사람을 좋아해서, 사랑 받고,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싫어할 보장은 없다. 싫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그저 내 불안과 말할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이 만든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다.
그 사람의 얼굴을 봐야만 표정을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은 내가 직접 마주해야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분명 나의 뒤에도, 다른 누군가의 뒤에도 돌아보면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미요의 뒤에 있는 가족, 친구들처럼 말이다.
"무엇도 '나'를 대신할 수 없기에, 세상을 '나'로 살아가야만 의미가 있다"는 깨달음을 안겨준 작품이었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 '나'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감상시]
나의 이유
내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나는 내가 아닌
누구든 되고 싶었다.
나는 나를 미워해
다른 삶을 꿈꾸었다.
너로 살아보니
나는 네가 될 수 없었다.
네가 되어 보아야
나의 이유를 마주친다.
너를 지나서야
나를 다시 마주 본다.
내가 나여야만
내 마음도 전할 수 있다.
난 누군가가 아닌,
나로 빛날 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