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리스본

리스본에서 인내를 배우다

by 천사의 시

한국 사람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중국어로 된 노래를 듣고 있다.


이 무슨 이상한 조합인가 싶지만 나의 MP3 플레이리스트에 오래전 대만드라마 '아가능불회애니'의 OST가 포함되어 있다. 언제 적 플레이리스트인거지??




리스본의 일요일.

그래서인지 리스본 시내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 벨렘지구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고 했던 나는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지하철로 간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또 기차로 갈아타고서 약 40분 정도 소요가 된 것 같다.


여전히 날이 좋지만 가끔씩 먹구름이 뒤덮이면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러나 1분 만에 멈추는 비가 대부분이다.


벨렘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에그타르트를 사러 간다. 굳이 먼저 유명 에그타르트 가게에 들를 계획은 아니었지만 마침 내가 그곳을 지나가는 그 시간대에 가게가 혼잡하지 않다고 하여 빠르게 구입을 하기로 했다.



파스테이스 드 벨렝.

원조 에그타르트 식당으로 유명한 곳인데 평소보다 덜 붐빈다는 구글지도의 정보를 믿고 갔더니 줄이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에그타르트를 사기 위한 그 줄은 금방 빠진다. 나는 에그타르트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무려 10개의 에그타르트를 구입한다. 1일 1개의 에그타르트를 해보련다.



이어서 벨렝탑으로 가려했으나 바로 근처에 제로니무스수도원이 있어 그곳에 먼저 들른다. 리스보아카드가 있으면 무료입장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별도의 티켓을 받아야 하는 줄 알고 티켓 박스에서 한참을 줄을 서 기다리다 뒤늦게 별도의 티켓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고 입장을 하러 가보니 입장을 하려는 사람들로 늘어선 줄이 족히 몇백 미터는 된다. 늘어선 줄의 끝에 선다.


꽃무늬 봄 스커트를 입고 나왔는데 부는 봄바람에 치마가 들썩거려서 신경이 쓰이는 중이고, 숙소에 물이 세는 건 아닐까 또 신경이 쓰이는 와중임에도 리스본은 너무 예쁘고 하늘은 너무 깨끗하며 바람은 조금 차가웠다.


1시간이 넘도록 수도원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서 있었다. 그럼에도 한참은 더 기다려야 했다.

여기가 한국의 유명 관광지였다면, 기다림을 힘들어하는 나는 분명 방문하지 않았으리라. 인내심이 강한 관광객들 사이에서 나는 오기를 불태운다.


'이만큼이나 기다렸는데 볼거리가 없기만 해 봐라!!'



1시간 30분 만에 입장을 한 수도원은 뭐랄까, 너무 인내해서 그런지 밍숭맹숭이다. 겨우 회랑을 보고 입구로 나왔더니 이번에는 산타마리아 성당을 가기 위한 긴 줄을 또 서야 한단다. 그래서 줄 서기를 과감하게 포기한다.



다음 목적지는 벨렝탑.

그곳을 가기 위해 15분을 걷는다.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다. 하루 평균 2만 보 이상을 걷고 있으니 그럴 만도. 그런데 또 기다림의 줄이 보인다.


벨렝탑 역시 리스보아카드가 있으면 무료입장이었지만 수도원과 달리 별도의 입장티켓을 받아서 입장해야 했다. 혼자서 줄을 서 있다가 별도의 입장티켓을 받아와야 한다는 직원의 말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바로 뒤에 줄을 서 있던 한국 여행객이 자리를 맡아줄 테니 표를 받아 오라고 한다. 덕분에 순조롭게 입장을 할 수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탑의 꼭대기까지 뱅글뱅글 계단을 돌아 올라간다. 어둡고 좁은 대리석 돌계단 길이 좀 미끄럽긴 하지만 벨렝탑에서의 풍경 한 번 보겠다고 꿋꿋하게 올라간다. 결과적으로 볼 거라곤 없었지만-



오늘 제로니무스수도원과 벨렝탑은 완벽하게 기대이하였지만 날씨 좋고 공기 맑아서 눈앞에 보이는 벨렘지구의 풍경이 예뻤으므로 더 이상의 불만은 없다.


벨렘지구에서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혹여나 숙소가 물바다가 되어 있을까 싶어서 마음 졸이며 돌아왔는데 다행히도 숙소는 괜찮았다.


눈물의 여왕 마지막 회를 보며 파스테이스 드 벨렘에서 산 에그타르트를 저녁 삼아 먹는다.


어째 후반부로 갈수록 드라마가 산으로 간다 싶더니 결말을 블록버스터로 만들어 놨네.




일요일이면 리스본은 영업을 하지 않는 상점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리스본 인근 지역으로 많이 몰린다고. 그 영향 때문인지 일요일인 오늘 벨렘지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상황들을 인내하고 버텨내야 하는 건 바쁘게 일을 할 때나 여유롭게 여행을 할 때나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되는 듯싶다. 그럼에도 나 혼자만 인내하고 나 혼자만 버텨내는 것은 아니니 해볼 만하다고 또 생각하게 된다. 함께 버티는 동료가 있다는 것,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그렇게 참으로 위안이 된다.


긴 기다림의 줄 위에 서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내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내가 인내의 고통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기다림의 인내를 중간에서 포기했지만, 인내를 이겨낸 사람들은 더 많은 것들을 보았으리라.

그들이 정녕 승자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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