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불면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덤윤 Nov 30. 2018

일어나, 눈 와

간지러운 단어


늦잠의 이유로 내세우는 지난한 밤은, 어쩌면 충분한 변명이다. 어제를 이고 온 아침의 발걸음은 언제나 바닥에 끌린다. 충분히 채우지 못한 눈은 자꾸만 옆으로 찢어져서, 갈망하는 목구멍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갈린 이빨이 시리다. 감는 법을 배우지 못한 귀는 밤새 불침번을 선다. 미처 뜨지 못한 눈을 알람 소리 앞으로 이끄는 청각, 내 하루는 듣기에 시작한다. 그러니까 밀린 아침은 이토록 버겁다고 말하는 거다. 

    

다만,

     

오늘은 밤새 나를 지키던 이불을 낙엽처럼 걷어찬다. 요란한 알람보다 먼저 들린 것은 잠들기 전 읽었던 일기예보 기사 속 문장. 첫눈이 내릴 예정입니다. 굳건하게 잠긴 창틀 너머 쌓이는 첫눈 소리에 깨어나, 지각한 학생처럼 놀란 몸을 일으킨다. 앞선 마음에 머리부터 창문에 붙여놓은 채 뒤따라온 손으로 조심스럽게 창문을 연다. 아침이라는 무서운 시간 속, 이토록 부지런한 자신에 새삼 놀란다. 아마 언젠가도 이런 낯선 기상이 있었는데.      




정제되지 않은 밤에서 추출한 첫 설렘으로 눈 뜬, 아니 깨어나서 1교시의 강의실로 향하던 날. 꿈으로 초대했던 너를, 다시 만나러 가던 반가운 등굣길이었나.     





방충망 친 창은 익숙한 단독주택의 옥상을 보인다. 녹색의 우레탄 지붕과 외로이 선 빨래건조대. 아니, 오늘은 그 위에 쌓인 설레는 첫눈도. 베란다 난간에 줄 맞춰 선 때 묻지 않은 알갱이들. 낡은 비유지만 그래서 좋아. 그림 같은 창문. 알람을 뱉어내기 전의 스마트폰을 들어 먼지 쌓인 번호를 누른다. 지문으로 밀어낸 먼지들이 마치 첫눈처럼 하얗게 퍼진다.     




"첫눈 와. 봤어? 눈 좋아하잖아. 응. 그래서 전화했어. 고맙긴. 졸려 다시 잘 거야, 응"


처음이라는 단어가 늘 코끝에서 간지럽다. 평일을 보내고 겨우내 찾아온 늦잠의 소중함을 안다. 그럼에도 굳이 고된 당신을 깨우는 전화는, 역시 사랑인가봐.    



매거진의 이전글 불면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