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less Old Classic, 바다만큼 넓고 깊은 여운
15개의 메인 디쉬를 맛보며 즐거웠으리라 믿는다. 이제 'wrap-up'의 맛을 보여줄 '디저트'가 남았다. 디저트는 자고로 맛이 깊고 풍부해야 하기에 그에 걸맞은 요리를 가져왔다. 《세상에서 가장 담백한 영화 요리》에서 오늘의 디저트로 선보이는 《타이타닉》. 시대가 변해도 우리는 이 요리를 음미하며 20년 전 관객들과 같은 감동을 맛본다. 우리의 영화 요리도 맛보신 분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길 바라며 《타이타닉》을 여러분의 테이블 앞에 놓는다. 이번 디저트를 맛보며 감사하며 사는 삶을 넓고 깊은 풍미로 느끼길 바란다.
시간이 지나도 영화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작품들이 있다. 그런 영화를 흔히 'Timeless Classic'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흐르고 촬영 기술이 발달해도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남는다는 의미이다. 그런 명작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바로 《타이타닉》이다. 1998년에 개봉해 20년도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타이타닉》은 최고의 명작이다. 삶에서 'Good Old Classic'을 한 편 만나는 것은 축복이에 이 책의 마무리는 역시 《타이타닉》이 맺어야 한다.
1912년 타이타닉호는 승객들이 승선한 지 5일 만에 침몰하게 된다. 《타이타닉》은 이러한 실화에 로맨스를 더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는 액자식 구성을 띄기 때문에 스토리 상 바로 잭과 로즈의 로맨스로 들어가지 않는다. '로즈 드윗 부카터' 여사가 사고 후 84년이 지나 과거를 회상하는 역순행적 구조로 플롯이 흘러간다.
1990년대 후반 대서양에서 침몰한 타이타닉 호를 찾으려는 해양 탐사팀이 꾸려졌다. '브룩 로벳'이 이끄는 팀이었는데 그들은 '대양의 심장'이라 불리는 56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고 있었다. 탐사팀은 다이아몬드가 오래전 타이타닉 호와 함께 침몰했다는 것을 단서로 보물을 찾으려 한 것이다.
그때 우연히 배 안에 있던 금고에서 그림 한 장이 발견된다. '잭 도슨'이 그려준 로즈의 그림이었다. 탐사팀이 잠수함을 통해 보는 타이타닉 호의 벽난로와 객실 등은 이후 로즈와 잭의 이야기에서 실제 배경으로 묘사된다. 여기서 현대에 가라앉은 줄로만 알았던 타이타닉 호의 이야기가 과거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보이며 관객들에게 먹먹한 감동을 준다.
뉴스를 통해 자신의 그림을 본 할머니 로즈는 손녀와 함께 탐사팀을 찾아가고 타이타닉 호에서 있었던 4~5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안에는 잭과의 사랑도 담겨 있었고 그녀를 구속하려 했던 약혼자 '칼 헉클리'의 이야기도 있었다. 잭과 로즈의 일화로 들어가고 나서도 중간에 할머니 로즈의 해설이 나오고 영화의 말미에서도 'wrap-up' 형식으로 그녀가 다이아몬드를 배 밖으로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3시간을 넘는 러닝타임에서 30여 분 정도가 지나면 '영원히 기억될 세기의 사랑, ' 잭과 로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쾌하고 밝은 청년 잭 도슨은 동료들로부터 타이타닉 호의 티켓을 따 3등실에 승선한다. 그리고 그는 기쁜 마음에 뱃머리에서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고 소리친다. 이것은 뒤에 잭과 로즈가 갑판 앞쪽에서 팔을 벌리는 명장면으로도 연결된다. 잭에게는 당대 최고의 배이자 침몰하지 않는 배, 즉 불침선으로 여겨졌던 타이타닉 호에 승선한 것이 복권과 같은 행운이었다. 배에 오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잭의 외침에 보는 사람들은 후련함을 느낀다.
내가 왕이라는 시원한 외침처럼 잭은 관객들에게 통쾌한 웃음을 주는 인물이다. 《타이타닉》이 큰 성공을 거두고 나서 디카프리오 배우가 인터뷰에서 잭 도슨을 묘사한 말이 있다. 'Open-hearted and free-spirited.' 잭을 더없이 정확하게 묘사한 표현이 아닐까. 잭 도슨은 극 중에서 어린 나이의 청년이지만 깊은 내면을 갖추었다. 그 인품이 잭을 로즈에게 이끈다.
잭과 달리 로즈는 유서 깊은 귀족 집안의 자제였다. 당시 신분 차이로 인해 서로 대비가 되는 두 남녀는 배에서 눈이 마주친 순간 서로에게 반하지만 둘의 관계에서는 불안함이 느껴진다. 관객들의 예상대로 로즈는 처음에 어머니와 약혼자의 강압으로 인해 잭을 멀리하고자 한다. 하지만 잭은 로즈를 귀족이 아닌 한 사람으로 본다. 그래서 로즈에게 계속 손을 내밀고 결국 로즈도 잭의 진심을 받아들이게 된다.
잭은 사랑하는 사람을 품을 용기를 지녔을 뿐 아니라 인생에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삶에서 소중한 것을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로즈의 어머니는 가문의 부를 위해 로즈를 칼과 결혼시키려 애쓰고 칼은 질투심에 로즈가 잭에게 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이러한 굴레가 로즈에게 멍에처럼 작용하여 그녀는 신분 차이 앞에서 희망을 잃고 잭을 밀어낸다. 하지만 잭은 늘 로즈에게 진심을 고백한다.
잭의 됨됨이는 1등실 승객들의 디너파티에서도 드러난다. 로즈, 루스, 그리고 칼이 연 저녁 파티에서 루스 부인과 칼은 잭을 일부러 불러내 모욕을 준다. 하지만 잭은 상처 받지 않고 《타이타닉》의 명대사로 길이 남은 말을 하며 그의 인생철학을 전달한다.
"제겐 숨 쉴 공기와 그림을 그릴 종이도 있죠.
지난밤에는 다리 밑에서 자고 있었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제일 큰 배에서 여러분들과 샴페인을 하고 있잖아요. 인생은 축복이고 전 그것을 낭비할 생각이 없어요. 순간을 소중히."
잭에게 모욕을 주고자 했던 사람들도 그의 말에 숙연해지고 파티의 승객들은 다 같이 'Make it count(순간을 소중히)'라며 건배사를 한다. 외적 가치가 전부일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 앞에서 잭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매 순간을 축복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을 전한다.
로즈에게 잭은 자신을 족쇄처럼 묶어 왔던 주변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통로였다. 로즈는 가문을 부활시킬 책임과 순종적인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괴로워하지만 잭의 도움으로 작은 일탈을 한다.
3등실에서 잭과 로즈는 함께 탭댄스를 추며 파티에 참여한다. 1등실 승객들이 점잖게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두 연인은 술과 노래에 몸을 맡기며 맨발로 춤을 춘다. 잭과 로즈는 함께 배를 이곳저곳 누비며 엔진실과 오래된 자동차에도 숨고 복도를 뛰어다니며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타이타닉》에서 두 연인이 보여준 사랑은 단 4일간의 이야기였다. 4일 만에 끝난 사랑은 두 사람에게 평생 기억될 사랑이 된다. 로즈는 잭과 함께 짧은 시간을 보내며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녀가 처음으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순간이었다. 사랑에 용기를 낸 로즈는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 밤에도 약혼자나 가족이 아니라 잭의 곁에 남는다.
타이타닉 호는 새벽에 침몰했다. 불침선이라 알려졌던 배는 전속력으로 항해하던 도중 빙산을 피하지 못해 부딪혔다. 배에 구멍이 나자 선실에 물이 들어찼고 여기서 타이타닉 호의 모순이 드러난다. 배가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구명정이 승객 수의 절반만 태울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다.
결국 배의 침몰은 자연재해인 동시에 인재였다. 그 재난의 상황에서 이기적 군상과 희생적인 사람들의 대비가 이루어진다. 먼저 로즈의 약혼자는 남자인 자신에게 구명정 자리가 주어지지 않자 모르는 아이 한 명을 업고 구조선에 탄다. 배의 위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속력으로 항해 속도를 올리라 했던 '이스메이'도 선원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구명정에 탄다.
많은 사람들이 구명정에 탄 이후 배가 두 부분으로 갈라지자 구조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빠졌다. 몇몇 사람이 표류한 사람들을 구하자고 주장했지만 두려움에 가득 찬 다른 구조자들은 바다 위의 사람들을 외면했다. 할머니 로즈가 회상하길 구명정은 1대만 돌아왔고 1500명 중에 6명이 구조되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역사 속에 남은 타이타닉 호의 승객들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끝까지 음악을 연주한 악단. 조정석에 머무른 선장과 배를 지킨 선원들. 1등실의 몇몇 부호들도 신사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이브닝 가운을 입고 배에 남았다. 그리고 타이타닉 호의 설계자는 '배를 더 튼튼하게 만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실화와 달리 잭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가상의 이야기에서 표현될 수 있는 가장 큰 희생정신을 보여준다. 타이타닉 호가 부서져 바다에 떠 있게 될 때에도 잭은 물속에서 로즈의 손을 놓지 않는다. 로즈도 잭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를 구한다. 그가 약혼자에게 절도 누명을 쓰고 묶여 있을 때 그녀는 물이 찬 선실에 들어가 잭을 풀어주었다.
《타이타닉》은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전달한다. 그런 사랑이 세 가지 테마로 보인다. 희생, 구원, 그리고 감사이다. 잭은 로즈가 물에 빠져 정신없는 틈을 타 하나뿐인 뗏목을 그녀에게 양보한다. 그는 로즈가 추위로 인해 잠들지 않도록 말을 걸고, 차가운 바닷물 때문에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로즈가 구조되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한다. 이렇게 잭은 자신의 목숨보다 로즈를 귀히 여기며 그녀에게 인생을 살아갈 의지를 부여해준다.
이렇게 잭은 바닷속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로즈의 목숨을 구했고 그녀의 인생을 구원했다. 미래에 할머니가 된 로즈는 손녀까지 낳으며 해로했는데, 이것은 80여 년 전 차가운 바닷속에서 그녀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준 잭 덕분이었다.
"당신은 탈출할 거예요. 여기서 살아남아 아이도 많이 낳을 거예요. 아이들이 자라는 것도 보고 할머니가 된 다음에 편히 죽을 겁니다. 여긴 아니에요. 오늘 밤은 아니에요. 이렇겐 안 죽어요."
그리고 잭은 자신의 생존이 아닌, 로즈의 구조를 위해 자신과의 약속으로 그녀의 몸에 의지를 불어넣었다.
"꼭 하나 부탁을 들어줘요. 살아남겠다고 약속해요. 포기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든 간에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도 약속해 줘요, 로즈. 약속을 포기하지 마요."
끝으로 잭은 로즈를 만난 것에 감사했다.
"타이타닉의 표를 구한 건 제 생애 최대 행운이었어요. 당신을 만났으니까. 난 거기에 감사해요, 로즈. 진심으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 로즈는 간절한 상상을 한다. 젊었을 적 타이타닉 호에서 잭을 재회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안타깝지만 잠든 로즈의 얼굴은 편안하다. 그녀의 기억 속에만 있던 잭 도슨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서였을까. 그녀는 인생껏 가장 감사한 존재인 잭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타이타닉》은 희생, 구원, 감사의 사랑을 보여주며 오늘날까지도 넓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디카프리오 배우가 말한 대로 《타이타닉》은 진정한 'Good Old Classic'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았을 때 20년 전의 관객들과 같은 감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 요리를 통해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 완성될 수 있었고 감사는 인생을 살아갈 의미가 되어줌을 느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