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가 있는 밤 Dec 30. 2020

우연이 만든 기적,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운명적 사랑을 믿는 여자와 사랑을 포기한 남자의 만남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오래전 개봉했지만 아직도 팬층이 두텁다. 이 영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주연 '멕 라이언' 분과 명배우 '톰 행크스' 분이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요즘 로맨스 영화는 극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로맨틱 코미디 신드롬은 아직도 회자된다. 그 로코 감성이 듬뿍 담겨 있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소개한다. 넷플릭스에 숨겨진 명작이다.


'잠'은 개인적

영화는 제목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번역된 타이틀을 보면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왜 시애틀에서 잠을 이루지 못할까? 로맨스 장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설렘 때문일까? 그런데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바로 그 의문이 해결된다.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진 '샘'을 위해 그의 아들 '조나'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 것이다. 시애틀에 사는 조나는 아버지가 밤마다 슬픔에 잘 주무시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이것이 전국적으로 송출되며 샘의 별명은 'Mr. Sleepless In Seattle'이 된다. 이 부분이 재미있는데, 샘의 별명이 영화의 원제인 'Sleepless In Seattle'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라디오 사연을 보낸 조나(왼쪽) ㅣ 네이버 영화


샘이 잠들지 못한 것은 슬픔 때문이었지만, '잠'에서 더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잠을 자는 것은 개인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그 잠을 못 이룬다는 것은 개인적 바운더리가 깨진다는 뜻이다. 샘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사연이 전국적으로 알려지자, 그의 삶에도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들어온다. 바로 '애니'이다.


그녀는 차에서 라디오로 조나 부자의 사연을 듣는다. 평소 감수성이 풍부했던 애니는 사연을 듣자마자 샘이 자신의 운명의 상대라고 여긴다. 여기서 과거 로코 영화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당시에는 논리보다 감정, 특히 운명적 사랑이 소재로 많이 활용되었는데, 여기에 코믹스러움과 공감 가는 감수성을 더한 것이 이번 영화이다. 애니는 로맨스 영화 덕후로서 가상의 러브스토리에 빠져 사는데, 누군가를 볼 때 전기가 통하듯 찌릿하는 순간이 온다고 믿는다. 필연적 사랑과 샘에 대한 그녀의 상상력은 영화 내내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면서도, 그녀가 가진 사랑에 대한 믿음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사랑의 방식은 아날로그

영화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사랑은 모두 아날로그 방식으로 전개된다. 먼저 조나가 보낸 '라디오 사연'이 대표적이다. 요즘처럼 SNS나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던 시대에 라디오로 상대를 알게 되는 것은 요즘 세대에게 흥미로운 포인트다. 이 아날로그의 특성상 샘과 애니의 관계는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이다. 애니는 샘의 얼굴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사연뿐 아니라 샘과 애니가 주고받는 편지, 그리고 전화도 모두 아날로그형 러브의 방식이다. 편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영화에서 더 볼 수 있다. 이처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샘과 조나 부자, 그리고 사연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접한 애니의 독특한 관계는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옛 방식으로 맺어진 둘의 인연은 점차 발전한다. 샘의 주소를 알게 된 애니가 그의 집으로 편지를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아날로그로 맺어진 그들의 관계는 영화 개봉 당시에 당연한 것이었지만, 지금 작품을 보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신기함을, 또 이전 세대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라디오나 전화, 편지 몇 통처럼 가장 심플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뭉클하다.


애니 ㅣ 네이버 영화


로맨스에는 늘 사랑의 오작교가 있다

멜로, 로맨스 장르에서는 늘 '오작교' 캐릭터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조나'가 사랑의 오작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영화에서 조나는 '신스틸러'이다. 그는 샘의 아들 역할뿐 아니라 소심한 샘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록 이끄는 역할도 한다. 처음에 아버지의 사연을 라디오에 보낸 것도, 애니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애니와 샘의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것도 모두 조나이다.


조나가 아니었다면 애니는 샘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운명적 사랑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 관계도 누군가 힘을 쏟고 노력하기 때문에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조나는 사랑을 경험해보지 않은 어린이지만 어른보다 빨리 사랑을 알아본다. 조나는 애니가 아빠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샘과 애니가 운명적 상대라는 것을 알아보지만, 샘은 아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사연에 대한 답글로 그 사람이 새로운 사랑임을 알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조나에게는 때 묻지 않은 직관이 있었고, 때로 아이들의 직감은 정확한 판단보다 잘 맞기도 한다. 특히 그 주제가 사랑일 때는 더욱 그렇다.


편지를 읽는 조나 ㅣ 네이버 영화


영화에서 말하는 '운명적 사랑'

영화에서는 주인공 두 사람뿐 아니라 많은 커플들이 등장한다. 먼저 애니의 부모님, 샘과 전 부인 매기가 그렇다. 이들은 서로와의 만남이 운명적이라고 말한다. 이들뿐 아니라 애니에게도 '월터'라는 약혼자가 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시계추처럼 딱딱 맞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얼핏 보면 완벽해 보이지만, 감정보다 상황의 인과관계로 맺어진 두 사람의 사랑은 영화에서 보여주고픈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말도 안 되는 듯 보이지만 라디오 사연 하나를 듣고 모르는 사람인 샘에게 편지를 보내는 애니의 용기가 더 사랑에 가까운 것처럼 그려진다.


이처럼 관계의 첫 시작이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면, 관계의 끝과 새로운 시작도 예측할 수 없다. 영화에서도 사랑과 그것의 끝, 그리고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 다양한 이유로 펼쳐진다고 말한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샌드위치가 잘못 주문되어 연인이 되기도 하고, 나무 때문에 헤어지거나, 다쳐서 치료 기구를 사다가 새 사랑을 만나기도 한다.


결국 영화에서 말하는 운명적 사랑은 수많은 우연의 순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관계에는 변수가 많은 만큼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를 달리 보면 그 변수 때문에 우연히 부딪힌 누군가와 새로운 인연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약혼자와 저녁을 먹고 차를 타다가 라디오에서 샘의 사연을 들은 애니처럼 말이다.


애니의 캐릭터 포스터 ㅣ 네이버 영화


작품의 다양한 미장센

영화에는 많은 미장센들이 등장한다. 먼저 샘이 누누이 말하는 '한 잔 하실래요, '이다. 그에게 '술 한 잔'은 관계의 시작, 그리고 첫 데이트를 의미한다.


샘에게 한 잔이 특별한 의미라면, 애니에게도 로맨스 영화는 매우 소중하다. 그녀에게 멜로 장르는 삶의 필수 요소이고, 특히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애니는 똑같은 영화를 본다. '러브 어페어'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애니는 이 작품을 몇 번이고 본다. 로맨스 영화 안에 로맨스 영화인 셈이다. 애니가 '러브 어페어'에서 인용하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Now or Never.' 지금이 아니면 없다는 뜻으로, 이 대사는 마치 샘과 애니의 관계를 말하는 듯하다. 사랑에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운명적 사랑에도 예외는 없다. 사랑이 우연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상대에게 달려가야 할 순간에 상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작중에서 '러브 어페어'를 여러 번 보는 애니 ㅣ 네이버 영화


코미디를 더하는 장면

그리고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인 만큼 절절한 멜로보다는 유쾌한 순간들이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애니가 약혼자 월터 몰래 통화를 하기 위해 벽장에 라디오와 전화기를 들고 들어가는 장면이다. 이때 통화상대는 샘네 집이었는데, 과연 샘이 전화를 받을지, 조나가 전화를 받을지, 아니면 제삼자가 받을지 매우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애니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멕 라이언 분이 연기한 '샐리' 캐릭터와 유사하다는 점도 작품의 코믹함을 배가한다.


이렇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개봉한 지 20여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에서 샘과 애니의 관계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그것을 짐작하며 작품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기말 로맨스 영화의 덕후 분들이라면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콘텐츠

타이타닉

<타이타닉>은 세계적인 명작이다. 개봉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회자된다. 그래서 예전 영화이지만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러닝타임이 길기 때문에 연말처럼 쉬는 시기에 보면 좋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도 운명적 사랑을 다루었듯이, <타이타닉>도 단 4일간 운명적으로 펼쳐진 평생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잭'과 '로즈'가 우연히 만나 필연적인 관계가 되는 과정이 아름답다. 이 작품으로 유명해진 '제임스 카메룬'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그리고 '케이트 윈슬렛' 분이 합심해 만든 영화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

<미드나잇 인 파리> 또한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주인공 '길'이 1920년대 파리로 타임슬립하면서 벌어지는 매일 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운명적인 로맨스에 판타지가 결합되어 스토리가 참신하고, 헤밍웨이나 피카소 같은 과거 위인들이 등장하여 극에 재미를 더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도 운명이 이끄는 대로 사랑을 만나는 캐릭터이다. 극중 길의 약혼녀는 '레이첼 맥아담스' 분이 맡은 인물인 '이네즈'지만, 잘 맞지 않았던 두 커플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주인공 '길'은 결과적으로 어떤 연인을 만날지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이다. 타임슬립을 하면서 길이 사랑, 자아, 예술에 대해 깨닫는 과정과 그 시간을 그린 파리의 전경이 일품이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이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숨겨진 명작 중 하나이다. 평행세계에 사는 두 인물이 서로를 만나 사랑하는 절절한 로맨스를 다루었다. 등장인물들이 어렸을 때부터 서로 인연이었다는 것, 인생에서 5년에 한 번씩 서로를 마주쳤다는 설정이 운명적 사랑을 심도 있게 보여준다. 특히 주인공 '타카토시'와 '에미'가 20살에 단 30일 동안만 서로와 함께할 수 있는 플롯이 로맨스의 아련함을 배가한다.


위 콘텐츠들을 넷플릭스에서 보고, 아래 아티클도 감상하면 깊은 여운과 풍성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아티클

https://brunch.co.kr/@dumplingculture/42

https://brunch.co.kr/@dumplingculture/35

https://brunch.co.kr/@dumplingculture/89

https://brunch.co.kr/@dumplingculture/4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