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특성상 해외 거래사가 90퍼센트이기 때문에 영어에 능통하지 않다면 사실상 면접의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면접을 마치고 전 회사 동료들을 만났다.
괜한 기분 탓이었을까.
나와 함께 근무했을 때 보다 얼굴들이 피어있는 것 같았다.
둘이 더 친밀해 보였고, 내가 퇴사한 이후 들어온 사람에 대한 호감과 신뢰도 나를 생각하여 줄여 표현했겠지만 실제는 더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좋은 사람이 들어왔고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아서 다행인 마음 반, 조금 섭섭한 마음 반이었다.
나는 이제 정말 완벽하게 그들과 분리된 다른 직장, 다른 세계 사람이 되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학창 시절에 친구를 많이 만들어 두라고 했나 보다.
학교 친구들은 회사를 여러 번 옮겨 다녀도 다른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에 대화할 이유와 친밀도가 있지만 회사 사람들은 같은 회사라는 소속으로 묶여 있어야 할 이야기가 많고,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다고 느낀다.
전 직당 동료 두 명은 착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들이라서 오랜만에 만난 오늘의 내 근황과 그동안의 변화들을 함께 듣고 말해주었지만 앞으로 자주 연락하자라는 인사는 금세 사라지고 말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만의 일방적인 희망고문으로 기대하게 되거나.
한 명이 그랬다. 더 좋은 자리로 당당하게 돌아오길 기대했다고.
일자리를 소개해주기 위해 안부를 물어봐준 전 직장 상사분과 그 말을 전달해준 전 직장 동료, 그리고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뭔가 미안하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의 기대대로 사는 게 삶의 목표는 아니지만 원활한 영어 가능자라고 적혀 있음에도 ‘ 그렇게 많이 쓰이지는 않을 거야’라는 불확실한 말을 믿고 뻔뻔하게 도전했던 건 그들이 있는 공간으로 다시 가고 싶었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나와 보면 보인다.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다정함, 친절, 퇴근길의 수다와 같은 따뜻한 그리움들이 진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