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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Mar 02. 2020

또, 퇴사

사진일기 첫 번째

퇴사 후 약 1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좋은 마음으론 '퇴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회사에서의 마지막은 얇은 종이 한 장 찢어낸 듯 가볍게 날아가버린 쓰라린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왜 조금 더 버텨낼 수 없었는지, 이 선택 밖에는 답이 없었는지 스스로를 책망하고 한심해했지만 애초에 이 회사를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지면서 앞선 퇴사들과는 다르게 자책의 시간마저도 부질없게 느껴졌다.


회사도 한번 고용한 직원이 회사와 맞지 않다는 걸 느꼈을 때 노동자보다는 수월 할 테지만 쉬이 해고하지 못하는 것처럼 노동자도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관과 회사가 맞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어도 빠른 퇴사의 속단을 내리지는 못한다.


그냥저냥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일력을 찢듯 버티기식 나날이 계속되다가 차곡차곡 쌓인 고름은 곧 시한폭탄이 되어 있었다.


사직서를 던지기 전까지 아등바등 버텨내던 자기 암시, 인내심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가 퇴사 의사를 전달한 순간부터는 툭 끊긴 자제력, 책임감이 쏜살같이 도망가 버린다.


회사가 나를 보는 시선도 비슷했을 것이다.


일련의 사건이 발단이 되긴 했지만 나의 역량과 업무 방식을 탐탁지 않게 보기 시작했고 유관부서의 업무와 담당자가 다 연결되어 있음에도 책임을 내쪽으로 떠넘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업무는 계속 추가되었고 회사 내 전문가라고 부를만한 적임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일을 배우는 것도, 배우기 위해 알아내야 하는 것도, 시행착오도 모두 다 내 탓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결국 '퇴사'를 먼저 말한 쪽은 나였기 때문에 '도망자'란 단어로 다른 사원에게 내 흉을 보는 것까지 내 귀에 들려왔다.


후임자를 채용할 때까지 인수인계를 할 때까지 기간도 감당하고자 했지만 마땅한 적임자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당장은 채용할 의사가 없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정한 일자를 마지막으로 퇴사일이 정해졌다.


퇴사를 말한 일자부터 마지막 근무일인 약 17여 일 동안 매일 울고 싶고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지하철을 탔다.


실장이 쏟아낸 나의 험담을 들은 직원이 그 자신 또한 퇴사하고 싶다고 말했고 실장은 나와는 한 번도 논한 적이 없었던 얘기로 (나와 이야기를 더 해볼 것이고, 다른 포지션의 업무를 맡아볼 수 있도록 조정할 것이다 등등) 그 직원을 잘 구슬려 일단은 더 다니게 했다.


그 와중에 눈물, 콧물을 짜내며 '대화'란걸 했으니 한편으론 부러웠다가 내겐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대비되어 나락까지 떨어진 심정이었다.


아무리 다른 이유들과 나를 지키고 싶은 정신 승리의 방어책을 펼쳐 들어도 '내가 그렇게 일을 못했나, 한 번이라도 잡고 싶은 시늉조차 하고 싶지 않은 직원이었나'라는 절망적인 무례는 아무튼 사실이었다.


회사 직원들의 일상처럼 불평불만을 말하는 대화들에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난감했고 자신도 그만두고 싶다고 매일 같이 말하는 옆자리 직원에게도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태도로 마지막 근무일을 버텨야 할지 당위성을 찾기 힘들었다.


마음속에선 회사 험담을 하는 직원들에게 제일 힘든 건 나니까 그만 좀 닥치라고 으르렁 거리다가 내 앞에서 편을 들어주고 싶었던 건가, 그만한 동정과 자비를 보여줘야 할 것 같은가 싶어 서글퍼졌다.


회사도 날 원하지 않았고 나 또한 마찬가지니까 잘됐네 뭐!! 나가면 내 빈자리가 아쉬울 만큼 일해 보이겠다고 이를 갈다가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주어진 업무만 겨우 겨우 손을 데는 식으로 반복되었다.


내 주변의 지인들은 내 편을 들어주고 위로해주었고 회사 대표 내외도 그들의 편을 들어줄 사람에게 이야기를 털어놨을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편에선 입장과 조언으로 반편의 시선을 가린 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꽤 많이 허무했다.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도 사람이지만 애초에 회사와 노동자의 관계라는 게 인간적인 이해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면 역시 아니었다.


일주일을 내내 먹고, 자고, 생각이란 걸 할 필요가 없는 게으름으로 가득 채웠다.



마음의 고난한 일은 점점 털어놓기 어렵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상처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 까진 어렵지 않고 숨기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부러 말하고 싶진 않다)


조용히 들어만 주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일처럼 함께 고민해주는 것에 위안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어떤 반응이 나를 숨통 트이게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즐겁지 않은 얘기는 잘 꺼내놓지 않게 된다.


일주일을 자고 또 자며 잠을 쥐어 짜내어도 계속 잠을 잘 수 있었던 건 사실 어딘가로 널어놓지 못한 마음이 계속 젖어가고 무거워진 탓이었다.


눈을 뜬 시간보다 감은 시간에 안정을 느꼈던 건 그저 도피였다.


정당하게 하루를 열심히 살고 흘러온 꿈결이 아니라 마주 볼 현실을 외면하느라 뒷걸음질 치며 도망 온 꿈결이었다.


서른 중반의, 전문직이 아닌, 최저 기본 연봉을 벗어나지 못하는 , 이직이 잦은 직장인이 내 현실이자 명함이었다.



교훈과 희망적인 내일을 욕심내며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진정 원하는 업무가 무엇일지 충분히 고민하고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마음먹고 싶으나 섣부른 다짐으로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건 이젠 그만하고 싶다.



몇 주가 될지 몇 달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왠지 슬슬 취직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떠밀려 급하게 안착하려는 구직활동은 피하고 싶다.


그렇다고 구직활동, 재취업에 전념하는 일상을 보내고 싶지도 않다.


8개월의 짧은 마지막 회사의 근속기간이었지만 물리적인 거리도, 마음도 참 고단했었기 때문에 우선은 회사를 다니지 않는 일상을 알차게 꾸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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