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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Mar 04. 2020

크게 나이 드는 해

사진일기 세 번째

다이어리에 미리 적어둔 업무 관련, 회사 소식에 관한 내용을 수정 테이프로 박박 그어 지웠다.

퇴사일을 기준으로 그 전까진 적어 두어야 할 일정이었지만 퇴사일 이후로는 지구 반대편 어느 지방 소식보다 궁금하지도, 관련지어질 필요도 없어졌다.

얼룩덜룩 자욱이 남겨진 종이가 찝찝하면서도 후련했다.

대게의 사람들이 일정관리를 하는 이유를 예상해보면 자신의 '일'을 잘 가꾸어나가기 위함이 아닐까?

날짜와 요일 아래 비워진 칸이 기다리는 건 자잘한 일상 기록보다 생업과 관련된 소식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라고 지레 생각하게 된다.


일상을 짓누르고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듯 바득 바득 적힌 업무 스케줄로 빼곡한 글씨가 나의 태도였다.


회사 안에선 퇴근시간만을 기다리며 집중하지 못했고 회사 밖에선 일에 대한 앞선 걱정으로 체력 비축과 휴식 외에는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책, 유튜브의 강연 영상들, 브런치의 글 등등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일러주는 좋은 내용들이 참 많았지만 나와는 다른 세상, 차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성공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현재 자신의 일을 더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고, 치열한 노력과 고민 그리고 시행착오를 통해 성숙해지는 중이었다.

전문성이 가득 담긴 업무 논조를 펼치는 사람들의 글을 접하면 대단하고 존경스러웠으며 저들 정도의 일을 하려는 열정이 아니면 칭얼거림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열정은 드높지 않지만, 책임감으로라도 지켜가고 싶은 일을 다시 찾고자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어딘가엔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두가 자기소개서에 보탠 약간의 거짓말을 진실인 것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다.

회사 안에서는 그런 척 연기는 해야겠지만..

성장기 아이들이 한 번씩 크게 자라는 해가 있다고 한다.

고만고만하게 크던 중에 더 크게 자라는 때를 지나 성장이 멈춘 뒤에는 노화기로 접어드는데 마찬가지로 늙음이 유독 도드라지는 해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군포에 있는 초막골 생태공원과 수리산 둘레길 일부를 산책하면서

"우리 딸도 이제 얼굴에 나이가 보이는구나, 그동안은 나이보단 조금 어려 보이는 얼굴이라고 생각했었어"라며

나이와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매일 자신의 얼굴을 보기 때문에 특별히 달라진 점을 찾지 못하겠다며 둔감하다가도 나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변화에 또 민감해지기도 한다.


서른둘, 셋, 넷 근 몇 년은 둘의 얼굴과 넷의 얼굴을 바꾸어도 다를 것 같지 않지만 다섯의 얼굴은 확연하게 달랐다.


없던 다크서클이 내려앉았고 광대엔 그을음이 조각조각 들러붙은 것처럼 기미가 퍼져 있었다.

탄력이 떨어진 볼과 목 피부를 느꼈고 머리숱도 뭉텅 줄어 있었다.

근 6개월 사이에 훌쩍 늙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을 때 스트레스를 많아 받았겠다며, 힘들었겠다며 알아주는 말에 대답은 못하고 목구멍에 역류하듯 울컥 걸린 울음을 밀어 넣었다.

살 날은 까마득한데 살아갈 과정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ㆍ

품고 있던 공허함이 가끔씩 밖으로 새어나갔을 때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조조영화로 1917을 보고 한산한 쇼핑몰 안을 부유하며 꿀꺽꿀꺽 시간을 삼켰다.

1917에서는 진흙더미 속에 푹푹 썩어 가는 시체, 철조망에 널려진 시체, 피와 살육, 비명, 총, 대포, 폭격 소리와 함께 아비규환인 1차 세계 대전의 참상을 볼 수 있었다.

전쟁으로 파괴된 삶과 영혼의 피해자들이 지나온 진창에 비하면 나의 생에 대한 피로의 호소는 참 기름지고 유약한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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