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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Aug 11. 2021

아이디 성냥사세요

성냥팔이소녀 각색

해진의 겨울밤은 길고 길었다.


한파를 알리는 뉴스를 보면서 끓인지 채 2분이 되기도 전에 미지근 하게 식어버린 라면 국물을 들이키며 쉽게 만든건 빨리 식어버리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일은 뭉근하고 걸쭉한 스프를 오래 끓여볼까 쇠숟가락을 입안에 달구어 물어본다.


그녀가 전세 3500 반지하에 살게 된지도 어느덧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새순이 돋아나는 봄이와도 눅눅한 벽은 서리를 품고 있는 것처럼 싸늘했다.

창문을 꼭꼭 걸어 닫지만 바람은 쇳소리를 내며 어디든 기어들어왔다.

네 귀퉁이가 꼭 여물어지는 반듯한 네모난 집에 살고 싶다는 꿈을 꾼다.


해진의 집은 현관문도, 방문도 한쪽이 틀어지듯 내려 앉아 닫기 위해선 힘을 주어 들어 올리듯 밀어 넣어야 했다.


드르렁 드르렁 요란한 보일러 가동 소리는 노쇠함을 알리는 비명소리처럼 드세지고 있었다.

이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잘 순 없었다.

해진은 보일러를 껐다.


겨울밤을 의지 할 수 있는 유일한 난방은 전기장판이었다.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도 전기장판이 맞닿는 등은 시리지 않았다.

토닥토닥 등을 쓸어내려주던 두터운 엄마의 손이 지나간다면 이런 온도일까.


미세한 전자파의 진동이 척추를 한번씩 두드리는 것 같았다.

해진은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핸드폰을 들었다.

위치 설정을 켜두면 근거리의 친구를 연결해준다는 채팅어플을 킨다.


해진의 아이디는 성냥사세요


쉬이 잠이 오지 않는 밤엔, 어디에 사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 통속적인 인삿말 한마디도 간절하게 그리워질때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말 안녕히 있는지 궁금해 물어본 말은 아닐테지만 대부분 그렇게 인사를 하고 말을 시작한다.


낯선이 : 안녕하세요

해진 : 네 안녕하세요

낯선이 : 오늘도 날이 춥네요, 학생인가요?

해진 : 아니요 직장인이에요

낯선이 : 아이디가 신선하네요. 정말 성냥을 파시려고 ?


그동안 해진의 아이디를 물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어플을 켤때마다 아이디를 바꿀수 있었고, 어제 말을 나눈 사람이 같은 아이디라고 해도 같은 사람일지는 알 수 없었다.


존재감이 무의미한 공간이 해진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한명쯤은 자신을, 우리가 나눈 대화를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해진 : 성냥팔이 소녀 동화 아시죠 ?

낯선이 : 네 그럼요 어릴때 읽었죠

해진 : 어릴땐, 소녀의 성냥을 사주지 않는 어른들이 매정하고 야속했어요 성냥 몇개만 사주었다면 소녀는 빵을 살 수 있었을테고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을 텐데 하고요.

하지만 며칠정도의 허기를 면할 뿐, 결국 소녀의 삶은 성냥을 팔아서는 바뀌는게 없었을거에요.

성냥 한개를 팔고, 하루를 살고 또 한개를 팔고 이틀을 살고 그렇게 불씨 한톨 만큼의 온기로 살고 있다는 생각에 ..



해진은 손가락에 힘을 꾹꾹 주며 자판을 눌렀다.

낯선이는 답이 없었다.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다는 점 세개가 찍혔다가 사라지고 다시 찍혔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홀연히 사라지는 사람들은 이제 익숙한편이었다.


불건전한 만남을 목적으로 채팅어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해진은 사람의 얼굴을 대면할 생각은 없었다.


서로의 정보를 채팅으로 시작하면 불건전함이 되는 것일까 낯선이와 주고받는 대화의 최종 목적지를 실제 만남으로 맞춘다면 대화만을 원하는 

자신은 이 세계에선 불건전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낯선이의 대화를 기다리며, 해진은 깜박 잠이 들었다.

꿈은 과거의 사실과 환상이 촘촘이 겹쳐있었다ㆍ


엄마와 헤어지던 열아홉의 자신이 서있었다.

 " 미안해 해진아, 엄마는 이제 너 데리고 못살것 같아. 구미에 내려갈거야. 거기서 다시 시작할거야. 너도 잘 정착해서 살 수 있을거야 " 


해진은 엄마가 급하게 찔러주고 간 돈주머니에서 파란색 돈을 야금 야금 꺼내먹으며 길을 걸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지금 해진이 살고 있는 반지하였다.


꿈속에서 그녀는 한번 더 잠을 자고 일어났다.

감았던 눈이 뻑뻑하게 떠지고 볼과 코가 땅땅하게 얼어 아무느낌도 나지 않았다.


' 아 눈이 왔구나 ' 

해진은 눈이 얼만큼 왔는지 보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써 밀어도 열리지 않았다.

창문을 올려다 보았을 땐, 하얀 눈이 빼곡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눈이 현관문을 가득 짓누르고 있어 열리지 않았던거야'


왈칵 울음이 쏟아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메시지 수신음에 잠에서 깨어났다.


낯선이 : 성냥사세요님, 저도 그 성냥을 알고 있어요. 결코 따뜻해지지 않는 한개비의 성냥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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