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슬픔과 기쁨 #4
요즘 우리는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보가 눈 깜짝할 사이 쏟아지니, 잠깐이라도 머뭇거리면 금세 답답함을 느끼곤 하죠. 스마트폰 화면이 몇 초만 늦게 켜져도 초조해지고, 택배도 하루 만에 도착해야 마음이 놓이는 세상입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뭐든지 즉시 이루어져야만 편안하다고 느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 조급함은 단지 일상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어 결국엔 인간의 존재 가치마저 흔들리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생각해 보게 됩니다.
특히 취업 시장에서는 이런 시대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신입을 뽑는다 해도 실상은 경력을 묻고, 아직 시작도 못 한 청춘들은 좌절의 벽에 먼저 부딪힙니다. 미숙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실수를 시간 낭비쯤으로 여기게 되죠. 사실 누구나 실수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게 당연한데도, 우리의 사회는 완벽하고 즉각적인 결과만을 바라는 분위기입니다. ‘미완의 인간’에 대해선 불편한 시선을 던지고, 서로의 부족함을 품기보다는 효율이란 기준으로 쉽게 판단 내립니다. 그리고 이 경쟁에서 조금만 뒤처지면 한순간에 ‘잉여인간’이란 낙인이 찍히기도 합니다.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물러나, 또 다른 시각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를 있게 하신, 그리고 사랑으로 우리를 만드신 그분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실까요? 세상에서는 실패자, 쓸모없는 존재라는 말로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지만, 사랑 그 자체이신 분은 조건 없이 우리를 품으십니다. 그런 사랑의 눈길 앞에서는 누구도 ‘잉여’가 될 수 없다고 저는 믿어요. 우리의 사랑받을 권리와 존엄함은 세상의 잣대나 성과로 정해지지 않고,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깊고도 무조건적인 인정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사람은 비로소 가장 빛나게 됩니다.
사랑은 본래 아픈 것이라고들 합니다. 자기중심적이었던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바라보고 포용하려 애쓸 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아프죠. 타인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그리고 세상의 빠름과 효율성에 흔들리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일도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끝없는 사랑을 내어주신 그분을 떠올릴 때, 우리는 조금씩 용기와 지혜를 얻게 되죠. 내 좁은 생각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세상의 속도와 효율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때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저항도 생깁니다. 하지만 이 아픔은 절망의 통증이 아니라 진짜 사랑과 성숙으로 나아가기 위한 값진 산고와 같습니다. 사랑의 힘을 빌려 느리게, 더디게, 또 때로 아파하면서 이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언젠간 기다림의 의미를 되새기고 서로의 존재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깁니다.
저의 작은 바람은, 이 시대가 서로의 서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실수해도 괜찮다며 담담히 기다려주는 따뜻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모자람까지도 존중받아야 하며, 모두가 무한한 사랑 안에서 충만한 존재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