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모순/1회/퇴사하다

by 모순


지난 기록이 내게 알려줬다.

3월이 가까워지면

나는 새로움을 향해 내딛는다고.

겨우 내 움츠렸던 몸이

따듯한 봄을 기다리며 움직인다.


2월 아이는 유치원을 떠나고

3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2월 나는 회사를 떠나고

3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항구 도시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항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다.

p7/그리스인조르바/노코스카잔차키스지음/이윤기옮김

2월에 읽고 있는 책 <그리스인조르바>의

첫 문장도 떠남과 만남이 함께 있다.

배움, 세계의 확장은

떠남과 만남 속에서 이뤄진다.

익숙했던 회사를 떠나

새로운 만남과 배움 속에서

내 세계도 더 넓어지면 좋겠다.

성장을 위한 고통도 견뎌내자구.


2월 중며들다 2기 스터디를 시작하며

한두 문장으로 '나의 정체성'을

말하는 기회를 가졌다.


모순
다름이 스며드는 경계를 좋아합니다.
한국어와 중국어 사이에서
내 이야기를 쓰고 다른 세계를 만납니다.


2년 전 오소희 작가님의

부암살롱 글쓰기 수업 첫 번째 시간에도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모순, 창과 방패 어쩌고저쩌고

나 자신도 이해가 잘 안 가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때보다는 나를 이해하는

언어를 더 갖게 된 느낌이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발견한 점도 있다.

그동안 외부의 다름만 보았다면

내 안에 스며드는 다름도 보게 되었다.


냉정과 열정

불안과 믿음

도망과 도전

무관심과 사랑

생존과 낭만


공존할 수 없을 것 같던

감정과 생각, 행동하는

나를 그냥 받아들이고

살겠다는 태도가 스며들어있다.

모순이라는 별명에는.


상반되어 보이는 삶의 요소가

삶을 더 생생하게 한다.

신기하게도

나의 모순을 인정하자

예전보다는 타인, 다른 세계에도

조금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래서 계속 다름의 경계에 있는걸로


10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고

대답하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지금은 안 아쉬워요.
내가 상하고 있더라고요.
주변까지 상하게 할 거 같았어요

회사에는 1년 전 이미

퇴사 이야기를 꺼냈고

서로 견디며 다시 1년을 보냈다.

회사에서 계속 쓰는

중국어는 월급 외에도

직장 생활을 버티는 의미가 되었는데

회사에서 모든 감각을 서서히 닫았다.

나를 지키는 방법 같았다.

좋아하는 중국어도

하기 싫은 지시 내용으로만 느껴져

눈과 귀와 입이 닫혔다.


스스로 약속한 그 시기까지

버틴 나를 다독거려본다.

송별회에서 소감을 말할 때는

울컥하기도 했다.

나의 30대를 함께해준

회사, 동료에 고마운 마음이다.

끝이 되니 다 지난 날이 되어

아름답게 느껴진다 .


지난 4년간 함께 일했던

보스도 대만 본사로 돌아가게 되어

한 시기를 함께 마무리해서 좋았다.

텅텅 빈 명동 거리 함께 걸으며

그동안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서로 이야기했다.

코로나를 계기로 대부분의 업무가

온라인으로 뀌었고

그 변화 사이에서

나도 달라졌다.


줄곧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으며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3년 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 이후로도 1년 간

시부모님께서 아이 육아를 담당해주셨다.

운이 좋은 육아기 노동자였다.

가족과 보육기관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


남편과 둘이서만

아이를 돌본 기간은 약 2년이다.

그런데도 정말 어려웠다.

경기도 집과

서울 회사 사이에서

거의 매일 달리고 벅찼다.


처음 이사 와서 위기에 빠졌을 때는

회사, 내 자리를 꼭 지키고 싶었다.

회사를 놓으면 내가 사라질 것 같았다.

지금은

육아를 명분으로

회사 생활을 멈추고

새로운 일을 모색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집을 마련해

그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거 같아

남편에게도 고맙다.


예전에는

아이 때문에

남편 때문에

집 때문에

내가 왜 회사를 그만둬? 라고 생각했는데

'덕분'으로 바뀌다니

나도 참 모순이다.

아무튼 지금은 그런걸로


퇴사 후 일상을 꾸려나가면서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다.

매주 수요일은

일상의 이야기를 쓰고 나눈다.

쓰면 개운하다.

누군가 만나기도 하고

다음 주에도 수요일의 모순으로 찾아올게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