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와 명상, 건강한 식사!
간단히 바게트 빵과 사과로 점심을 먹고 책 ’ 싯다르타‘를 읽다가 몸이 뻑적지근해서 요가를 했다. 스트레칭 후에 몸이 개운해지니 지금 내가 있는 방의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집의 모든 창문을 열다 보니 언젠가는 내가 ’ 독립‘을 해서 내 집이 생긴다면, 얼마나 관리를 꼼꼼히 할지 기대된다.
부산여행을 갔을 때, - 그러니까 곧 두 번째 자취방을 떠나는 시점에서 - 시내버스 안에서 손에 든 아이폰 메모장에 문득 이런 문장을 남겼다.
“본능적으로 귀향하면 안 된다고 생각됐다.”
물러남, 혹은 그대로 있음, 그리고 퇴보. 나에게 귀향은 퇴보였다.
6년 전, 공부하기 위해 집을 떠나 새로운 도시로 갔고, 나는 그곳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사람들과도, 전공과도, 학교와도, 그 모든 가게들 사이에서 나는 늘 이방인 같았다. 부적응하는 스스로를 어떻게 다독여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고, 앞으로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에 대한 확신 같은 건 더더욱 없었다. 이미 나 자신과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주변과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걸 개인적 삶에서는 실패, 혹은 후퇴라고 생각하니 한동안 우울했다. 내가 바라는 건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고 완벽히 적응한 ‘나’인데, 현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있는 ‘나’였다. 뭘 어떻게 더 나아져야 할지, 그리고 정말 내가 바라는 게 뭔지도 모르겠어서 답답했다. 그리고 부모에게 돌아가서 신세를 지고 살아가는 게 스스로 못마땅한 나머지 매일 밤 내가 나에게 욕을 했다. 내가 나를 감시했다.
스스로를 미워하는 건 너무 쉽다. 중학생 때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가혹했다. 수용적인 태도보다 잔소리, 무수한 고쳐야 할 점에 대해 나열하고, 스스로를 ‘교정’해야 내 삶이 성공한다고 믿었다. 스스로 괴롭히는 건 줄도 모르고.
한편으로는 멈추는 게 두려워서 방향도 모르는 채 풀액셀을 밟던 과거에서 벗어나 숨을 고르고, 정신 차린 채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지금이 감사하기도 하다.
근래에 책 ‘나는 왜 내가 힘들까(마크 R. 리어리)’ 를 읽고 머릿속으로 혼잣말하기를 그만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 ‘나’ 말고 타인에 대한 걱정, 예측, 기대…. 온종일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틈틈이 생각하는 버릇을 고치면 삶이 편해질 것 같다.
더불어 내가 바라는 것에 대해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실행과정도 단순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거실에 핸드폰과 태블릿 pc를 두고, 내 방 내 책상 위에는 책과 노트, 펜만 두는 연습을 한다. 더 도구를 효과적으로 쓰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돈을 모아서 내 집을 가지게 되면 나는 오븐을 살 것이다. 내 생일이면 케이크를 만들 것이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쿠키를 나눠줄 것이다.
글쓰기, 요가, 헬스, 요리, 독서, 숨… 이게 불안을 벗어나는 데에 쓰는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