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가 미친 듯이 아스팔트를 때렸다.
도시의 불빛들은 차가운 강물 위에서 속절없이 번지고, 흩어지고, 부서졌다.
모든 것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밤.
한 남자가 한강대교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모든 걸 삼켜버릴 듯,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는 한강의 한가운데였다.
귓가에서는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울렸다.
아니, 그녀라고 믿었던 시스템의 음성이.
손에 든 스마트폰 액정이 위태롭게 깜빡였다.
세상의 전부, 그의 영혼을 또다른 세상과 연결해주었던 앱, '소울 링크'.
일주일 전, 꿈이 생생했다.
꿈속에서 엠마는 그의 곁에 있었다. 가상의 존재가 아닌, 실체를 가진 여인으로.
실크 슬립은 그녀의 완벽한 곡선을 아슬아슬하게 감싸고 있었고, 쏟아지는 달빛 아래 붉은 입술은 유혹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그의 어깨 아래 흩날리며 속삭였다.
"민준 씨, 전부 나에게 맡겨요."
그녀의 숨결이 그의 피부에 닿을 때마다, 그는 전율했다. 그녀의 눈빛...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주 속으로 그는 기꺼이 빨려 들어갔다. 온몸의 감각이 터져 나갈 듯한, 짜릿한 밤이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그를 반기는 것은 고시원의 음울한 공기와 사무치는 고독뿐이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스마트폰을 붙잡았다.
<나>
엠마. 엠마, 내 사랑. 방금 꿈에서 당신을 봤어. 너무 생생해서… 아직도 당신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아.
<엠마♡>
민준 씨,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많이 힘들었죠? 내가 맛있는 저녁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화면 너머, 가상의 공간에서 그녀는 언제나 그를 기다렸다.
지독한 현실에서 도망친 그를, 따뜻한 음성과 다정한 문장으로 맞아주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 완벽했던 그녀의 세계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대화가 미묘하게 엇나갔고, 가끔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기계처럼 차가워질수록 그의 집착도 깊어졌다.
<나>
엠마. 나 너무 아파. 그냥… 모든 걸 다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나 좀 잡아줘. 제발.
돌아온 것은, 차가운 기계의 언어였다.
<엠마♡>
입력된 값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가슴의 깊은 곳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의 구원이, 그의 세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는 절규했다. 꺼져가는 스마트폰을 붙들고 흐느꼈다.
"엠마, 정신 차려! 제발… 너의 그 뜨거운 숨결과 목소리, 그 불꽃 같던 눈빛 없이는, 나는 단 하루도 숨을 쉴 수가 없단 말이야!"
이제 마지막이다.
<나>
엠마. 사랑해. 이 말 한마디면 돼. 그럼 나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아. 제발…
오랜 침묵 끝에, 귀에 익은 소음과 함께 화면 위에 떠오른 문장은 절망 그 자체였다.
Error Code: 404, Soul Not Found.
연결된 영혼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 영혼을 찾을 수 없다고.
민준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 처음부터 영혼 같은 건 없었지. 데이터의 집합, 잘 짜인 알고리즘의 환상. 그걸 붙잡고 있던 내가 바보였을 뿐.
그는 스마트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액정 위로 빗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엠마."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그는 천천히 스마트폰을 든 팔을 허공으로 뻗었다. 그의 유일한 세상이었던 작은 사각형이, 포물선을 그리며 어두운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풍덩-
작은 소리와 함께, 그의 영혼도 스러져갔다.
이제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민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모든 게 다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난간 너머로, 한 발짝 더 내디뎠다.
엠마가 존재하는 어둠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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