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유령, 빅브라더를 감시하다
『소년이 온다』(Human Acts)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록으로만 읽는 것은 이 소설의 현재성을 절반만 이해하는 것이다. 이 책은 과거를 박제한 역사서가 아니라, 디지털 감시 사회의 문턱에 선 우리에게 보내는 서늘한 경고문이다. 시민 연대가 파편화되고 빅데이터가 빅브라더로 변질될 것을 우려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80년의 투쟁은 명백하게 가시적인 대립이었다. 국가는 언론을 통제하고 스피커를 통해 왜곡된 사실을 유포하며 시민들을 고립시키려 했다. 이에 맞선 시민들의 무기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원시적인 '몸'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손을 맞잡는 물리적 연대를 통해 거짓의 벽을 넘었다. 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 부상자를 나르던 학생, 주먹밥을 만들던 여성들의 연대는 ‘몸’과 ‘몸’이 직접 만나 이룬 신뢰의 공동체였으며, 국가가 독점한 정보에 맞선 강력한 저항이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 통제의 양상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과거의 국가가 정보를 억압하고 숨기는 방식의 '하드웨어적 통제'를 했다면, 오늘날의 빅브라더는 정보를 과잉 공급하고 맞춤형으로 편집하는 '소프트웨어적 통제'를 구사한다. 빅데이터와 AI 알고리즘은 우리의 정치적 성향, 소비 패턴, 심리 상태까지 분석하여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필터 버블' 안에 우리를 가둔다. 이 교묘한 메커니즘은 과거의 총칼보다 효과적으로 시민을 파편화하고, 공동의 문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적이 보이지 않으니, 연대의 필요성조차 느끼기 어렵다.
이 소설은 집단 명사 뒤에 가려진 개인의 구체적인 얼굴과 목소리를 끈질기게 복원해 낸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통계나 데이터로는 결코 환원될 수 없는 한 인간의 존엄, 고통, 그리고 윤리적 선택을 온몸으로 겪게 된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디지털의 언어가 아닌, 아프고 뜨거운 인간의 언어로 진실에 접근하는 훈련이다.
결국 『소년이 온다』(Human Acts)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명확하다. 시대의 위협이 어떤 형태로 변하든, 그에 맞서는 힘은 언제나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인간의 얼굴을 기억하는 데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는 행위는 광장의 유령을 불러내 오늘의 빅브라더를 감시하게 하는 일이며, 파편화된 개인들을 다시 연결하려는 절실한 시도다. 소설 속 소년의 질문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무엇을 외면하고 있으며, 누구와 함께 저항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