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주연 Jul 23. 2019

아기 고양이 냄새

가려진 시간, 2016

수린: 여기 진짜 다른 세계로 가는 차원의 문 같은 거 있을 것 같아



어린 시절 아지트는 우리들에게 어른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깊숙이 숨겨져 우리만 알고 있는 비밀의 공간에서는 우리들만의 법칙과 이야기가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른들은 몰라도 되는' 아이들만의 세계를 즐겼다. 어른들이 뭘 알겠냐며 으스대며 말이다.


열두 살 무렵, 친구의 아지트를 방문하게 될 일이 있었다.

친구는 아지트에 가끔 오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며 조심스럽게 나와 나의 단짝 친구를 초대했다.

아지트에 또 다른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은 아주 조심스럽고 중대하면서도 일임을 알기에, 그 초대에 은밀하게 응답했다.

혹시 누군가 학교 끝나고 뭐하냐고 물어보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하루를 보냈다.

새끼 고양이를 보러 가는 일은 섣부르게 떠들어서는 안 되는 동시에, 마주치는 사람마다 자랑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비밀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누군가 간지럼 공격으로 질문해온다면 참을 수 없다는 핑계로 말해버리고 싶었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눈빛을 주고받고 그곳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들떠있었고, 동시에 비장했다. 

아지트 주인의 뒤만 쫄래쫄래 좇다 보니 어느새 차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깊은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진정한 아지트라 할 수 없다.

넘지 말라는 의미로 세워진 돌담을 훌쩍 넘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거친 밭을 지났다.

그러다 아지트 주인이 뒤돌아서 우리의 얼굴과 눈 앞의 폐허를 번갈아 쳐다봤다.

바로 저기라는 신호였다.

폐허는 반으로 뚝 잘린 케이크처럼 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오래된 것이었다. 과연 아지트라 불릴 만했다.

 

과거에 문이었을 네모난 구멍을 지나자, 물기를 잔뜩 머금은 나무와 시멘트 냄새가 오랜만에 사람 냄새를 맡은 좀비처럼 우리를 둘러쌌다.

그 안에서 유일하게 색깔을 가진 공사장 부직포들이 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친구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곳이 새끼 고양이들의 집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숨을 죽이고 쪼그려 앉으니 상상보다 더 작고 귀여운 생명체들 두세 마리가 잠을 자고 있었다. 

온몸이 볼록 댈 만큼 들숨날숨을 내뱉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엔 비눗방울처럼 여린 숨이 투명하게 불어 나오는 듯했다.

혹시나 그 비눗방울 숨을 터트릴까 우리도 덩달아 소곤대며 말을 했다.

"엄청 작다."

실제로 본 새끼 고양이는 내 손보다도 더 작았다.

작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작을 줄은 몰랐다.

갓 태어난 생명체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이렇게 작던 고양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길거리에서 눈총을 쏘는 어른 고양이가 되다니. 


그날의 일들을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하얗기도 하고 까맣기도 하던 새끼 고양이의 냄새만은 선명하게 마음에 눌어붙어있다.

새끼 고양이의 냄새는 후각뿐만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한 촉각으로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작고 소중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어릴 적 허름하고 은밀한 폐허의 직사각형 구멍은 영화 '가려진 시간'의 대사처럼 다른 세계로 가는 차원의 문이었다. 그 문을 통과하고서 느꼈던 작은 생명의 온기와 냄새는 나를 가족 중 유일한 동물 애호가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 동물을 좀 더 사랑하기 위해 그들을 알아가던 나는 새끼 고양이를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말았다.

사람의 냄새가 묻은 새끼 고양이는 어미에게 버림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생에 새끼 고양이를 가장 가까이서 마주 했던 열두 살의 그 날이 떠올랐다.

나의 운명이 바뀐 날이자, 고양이들의 운명이 뒤바뀌었을 날이었다.

폐허에서 새하얀 얼굴로 잠을 자던 고양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허망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이제 그 물음에 답할 책임감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열두 살들의 아지트였지만, 불행히도 고양이들에겐 은신처였을 그곳을 나는 상상 속에서 자꾸만 찾아가 문 앞을 서성인다. 우리보다 엄마 고양이가 먼저 그 문을 통과하기를 기다리며 말이다.




이전 02화 정신없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