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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연 Dec 29. 2018

정신없는 것들

소공녀, 2017

미소: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현정: 재밌었지. 정신이 없어서 재밌었지. 미친 듯이 놀았지. 맨날 부둥켜안고, 자고, 포카 치고, 술 처먹고, 미쳐가지고.
미소: 담배 뻑뻑 펴가지고 방이 완전 하얘지고.
현정: 하얘진 게 아니라 누레진 거지. 재밌었지...

미소: 자냐?
현정: 아니. 잠 안 와?
(웃음)
현정: 정신없는 것들.


오래된 친구와 철없던 시절을 늘어놓으며 한바탕 함께 웃고서, 현재의 내가 과거의 그들을 나무란다.

"정신없는 것들" 

이 대사는 실제로 애드리브였는지 그 여부는 모르지만, 자연스러운 한숨처럼 뱉어져 나왔다. 

능청스러운 연기에 웃음이 나면서도, 왠지 ‘정신 있는’ 지금의 나는 정신없던 그 시절의 나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씁쓸함의 토로 같아 웃음의 끝 맛이 쌉싸름해져왔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라는데, 어째서 나의 시간은 착실하게 한 방향으로 흐르기만 한 걸까. 

지나온 시간의 다리가 너무나도 길어 그것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멀리 떼어놓으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터널이 너무 길어지면 어느 순간부터는 터널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나가는 문을 찾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오로지 앞을 향해 달려야 하는 터널은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인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터널을 들어설 때의 빛을 기억하기보다, 그저 또 다른 빛이 나올 때까지 달리는 것뿐이다. 

따라서 과거를 떠올리는 일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비정함과 함께, 지금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상실감이 동반되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친구와는 이제 알고 지낸 세월이 모르고 지낸 세월을 넘어섰다. 

내 오랜 친구들은 거의 모두 중,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다. 

중간에 다른 고등학교로 간 친구도 있었지만, 가장 활발하게 인간으로 진화되는 시점인 중학교 시절을 같이 지낸 우정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진화에 한 몫하는 영양분이 되어서, 아직까지 체내를 이루는 세포가 되어주고 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누군가는 제주도에 남았고, 누군가는 떠났다. 

평생 ‘우리’라는 원 안에만 있을 줄 알았는데, 각자에게는 새로운 원들이 생겨났다. 

어릴 땐 친구가 나 말고 다른 친구와 놀면 질투도 나곤 했었는데, 지금은 나조차에게도 불가피한 일들이라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오랜 우정에 푹신한 관대함이 더해져 질투라는 미운 감정은 튕겨져 나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스무 살 이후로 일 년에 한두 번씩 만나는 사이가 되었는데도, 만나면 원 밖에서 각자가 살아온 얘기를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나온 세월에 대한 얘기를 하느라 바쁘다는 것이다. 

함께했던 시간이 길었어도 기억에 남는 사건들은 늘 정해져 있어서 만날 때마다 그 얘기를 하는데, 할 때마다 재밌고 다음에 또 그 얘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할 때마다 늘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웃는다. 


그 당시 우리는 늘 학교가 끝나면 시내까지 30분 되는 거리를 걸어갔다. 

버스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나눠 타면 택시도 꽤 괜찮은 가격이었을 텐데 우린 늘 걸어갔다. 

걷다가 갑자기 비가 와도, 어디선가 박스와 비닐들을 구해와서 우산이랍시고 쓰고 계속 걸었었다. 

'정신없는 것들.' 

더운 여름날에는 길 중간에 나 있는 냇가에서 배가 고플 때까지 놀기도 했다. 

고백하기 창피하지만 한 번은 교복을 입은 채로 그 냇가에 다이빙을 하면서 논 적도 있었다.

정말 '정신없는 것들!' 


최근 친구들과 또다시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어쩜 그렇게 촌구석 아이들처럼 놀았냐며 질색을 하면서도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나름 도시 아이들과 똑같이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귤밭을 지나고 물에 뛰어놀던 하굣길은 영락없이 촌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진 못했지만, 모두가 누군가의 '정신없는 것들'이었다.



최근 누군가가 나에게 “진지해졌다”라고 스치듯 얘기한 적이 있다. 

의아하면서도 이해가 가는 것이 조금 서글펐다. 

진지하다는 건 ‘참되고 착실하다’는 좋은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리고 그렇지 못했던 과거의 나와 비교해서는 웃음을 잃었다는 의사의 선고같이 들렸다.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냐고 의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묻고 싶지만, 그건 어떠한 병도 아니기에 나아질 수 없는 증상일 뿐이다. 

병명 없는 증상. 그건 원인도, 해결책도 없다는 의미다. 


좀 더 ‘진지해진’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것 또한 세월이 가져오는 정신들을 챙기며 살아온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철이 들었다는 것이겠지’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철이 들었다는 것은 알고 싶지 않은 것들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세상을 향한 굳은 믿음이 깨지기 마련인데, 그 날카로운 파편들을 조심스레 줍다 보면 도저히 해맑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시절 친구들이 모두 빨리 어른이 되기를 원할 때에도, 나는 되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그 순간들 이후 내가 크게 달라질 것을 그때의 나는 직감했던 것 같다. 

마냥 어리고, 뭣도 모른 채로 웃는 나는 앞으로 없을 것임을 말이다. 

지만 시간이라는 건 그 소중함을 아는 자에게도, 모르는 자에게도 모두 공평한 것이었다. 

나의 시간도 남들과 똑같이 흘러갔다.


이따금씩 교복을 입고 하천에 뛰어들던 나에게 말을 걸고 싶다. 

정신은 미래의 나에게 맡겨두고서 정신없는 친구들을 더 사랑하고, 더 정신없이 살라고.


“정신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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