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하빌리스가 되기 위해
먼 옛날 구석기시대 초반의 인류의 조상에게 누군가가 음식과 물건을 나눠주며 모든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면 인간은 진화했을까? 아마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주변 모든 것이 나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도 쓰이지 않는 기관은 퇴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퇴화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쓴 적이 없으므로.
나는 내가 혹은 우리가 가끔 퇴화라는 단어조차 필요하지 않을 어느 시기에 진화를 멈춘 인류의 조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겉으론 반질거리게 좋은 옷과 좋은 커피를 들고 다니지만 거의 대부분이 본인이 걸치고 있는 옷을 만들거나 커피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의자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펜으로 메모를 하지만 내 손이 닿는 그 어떤 물건도 내가 만들어내지 못한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 계속하고는 있지만 거의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도구를 사용하는 영장류라는 타이틀을 오래전에 걸고 이만큼 진화해 왔지만 결국 지금 시대의 내가 무엇 하나 만들 줄 모르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계산하지만 손으로 하는 일은 폰 조작, 마우스클릭, 자판 두드리기 정도가 거의 다일 것 같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무인도나 정글에 떨어졌을 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인도까지 갈 필요도 없겠다. 그냥 어느 해변이나 산, 벌판에 고립되었을 때 집이라도 지을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생존하게 하는 내 주변의 물건들에 대해 얼마만큼 알며 얼마만큼 친한가? 복잡한 전자제품은 뒤로 하더라도 의자, 테이블 정도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다. 그저 나무인지, 유리인지, 메탈인지, 가죽인지 정도만 구분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괜찮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누릴 것들을 누리면 편안하다. 그러나 나의 어떤 성질은 그렇지 못하다. 그냥 모르는 것 투성이인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바보처럼 느껴진다. 그럴 땐 스스로 고립되어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는 특별한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를 본다. 빗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쓴다던가, 매일 낚시를 해서 잡은 걸로 밥을 먹는다던가, 휴지 없이 이끼로 화장실 뒤처리를 하는 등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 처음엔 힐링되다가 나중에는 ‘그래, 난 저렇게는 못살겠지. 얼마나 불편하겠어?’ 하고 마무리를 지으며 미련을 덜어낼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이런 것들에 대해 좀 더 배웠으면 어땠을까. 인공적인 모든 물건들이 원래의 자연물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지, 그 과정을 좀 더 세세하게 알려주고 실습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혹시라도 어느 교육기관에서 이런 강좌가 열린다면 나는 늦게라도 반드시 참여할 것이다.
최근에 시작하게 된 목공 수업은 이런 답답함을 조금은 해소해 주었다. 물건과 나의 거리가 좁아지는 느낌, 내 두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뿌듯함, 스스로 창조자가 되는 기쁨. 작은 수작업 목공에도 기계들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나는 일부러 기계를 멀리해보고 싶다. 망치와 톱과 끌을 직접 다루며 진정한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기 때문이다.
나무를 만지작거리며 비록 예쁘지 않아도 적당히 쓸만한 뭔가를 만들 때마다 나는 허허벌판에 뚝 떨어져 생존해 나가는 인류의 조상이 된다. 그리고 천천히 진화의 단계에 올라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