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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T맘 Oct 11. 2024

에마 미첼 <야생의 위로>

우리들은 아플 수 밖에 없다.


 교보문고 페이지를 열어보니 도서의 분야는 크게 나누면 소설, 시, 에세이, 인문, 과학, 종교, 자기 계발, 취미, 실용, 경제, 정치, 사회, 역사, 문화, 예술, 교육, 기술 등 대략 30여 개 인 듯하다. 다들 주로 읽는 분야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인문, 철학, 소설을 읽는 편이었고 주 분야의 스테디셀러 중 추천하고 싶은 책들에 대해 연재 중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읽을 것도 많고, 몇 년간 수험생활 한 탓에 갑자기 뭘 읽을지 몰라 다독(多讀)가 친구에게 추천받은 책도 있다. 목요일 에세이 정기 연재와 더불어 금요일 서평에세이 정기연재까지 책들을 읽어가며 쓰려니 애도 키워야 하고 초반이라 그런가 좀 돌아버릴 것 같긴 한데 조금씩 루틴을 잡아가고 있다.



 오늘 소개할 에마 미첼의 <야생의 위로>는 며칠 전 친구에게 추천받았다. 추천 메시지에 첨부된 사진을 보는데 읽은 책이 아닌데 낯익다. 자주 '수요 없는 공급'이라고 서두를 깔며 자기 일상 사진을 보내는 그 친구가 몇 년 전 카페에서 책 읽고 있다며 사진 몇 장을 보냈던 기억이 났다. 인스타 느낌의 사진을 참 잘 찍는 친구라 원래 표지부터 속속들이 어여쁜 이 책이 더 돋보였다. 이렇게 몇 년 뒤 쌩 처음이야기 하듯 두 번이나 추천한 책이라 읽어봤다.



 대체로 정신이 피폐한 현대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요즘 같이 밖에서 걷기 딱 좋은 계절에 제격이라 추천한다. 자연의 섭리에 맞춰 월 단위로 기록한 것도 흥미롭고 작가가 직접 채집한 식물이나 조개류 사진, 산책 중 마주친 동물을 직접 그린 것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여 금세 읽어진다. 나도 요 근래 공부할 때보다 은근 더 바빠서 아이 학원 쫓아다닐 때 말고는 여유 있게 걷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산책하는 기분도 들고 더 추워지기 전에 자주 햇빛 보면서 걸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다. 요즘 봄가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지나가니 다들 이 책을 읽으며 당장 나가 자연 속을 걸으며 햇살과 바람을 맘껏 느끼면 좋겠다. 미적거리다 갑자기 겨울 오면 억울하다.


야생의 위로 | 에마 미첼 - 교보문고 (kyobobook.co.kr)


정성스러운 페이지들


p19. 11월에서 3월 사이에 햇빛이 약해지면 어떤 이들은 계절성정서장애를 앓기도 한다. 나도 이런 계절성정서장애에 취약한 편이라 겨울이 유독 힘겹게 느껴진다.

p24. 숲이나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곳에 서식하는 초목과 야생동물의 미세한 디테일에 주목할 때면 우울증이 가라앉는 게 느껴진다. 이는 내게 자가 치유의 방식이 되었다. 찔레나무 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일반적인 우울증 치료를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 역시 병세가 심해지지 않도록 항우울제나 상담치료에 의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울증이 주는 고통은 계절이나 그날그날의 스트레스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항우울제와 기존의 치료법이 제공하는 위안으로는 우울증을 떨쳐낼 수 없는 날도 있다. 그런 때 개암나무와 산사나무 사이를 거닐면 코르티솔 분비가 감소하고, 우울증이라는 검은 개를 쫓아내는 데 필요한 신경전달물질 변화가 일어난다.

p25. 숲 속이나 들판을 산책하는 것은 삶이 대체로 괜찮게 느껴질 때도 할 수 있는 일이며, 일상적 우울감과 언젠가 닥쳐올 까칠하고 고된 나날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인생이 한없이 힘들게 느껴지고 찐득거리는 고통의 덩어리에 두들겨 맞아 슬퍼지는 날이면, 초목이 무성한 장소와 그 안의 새 한 마리가 기분을 바꿔주고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다. 닥쳐오는 마감일이 세상의 종말처럼 느껴질 때, 일정 목록이 고속도로만큼 길게 이어질 때,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때면 그런 장소로 나가보자. 당신이 무기력해져 소파나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들큼한 슬픔의 진창에 빠진 기분일 때, 이 책으로 내가 관찰한 것들을 읽으며 사진과 그림을 보고, 나아가 직접 고둥이나 족제비를 찾아 나섬으로써 위안을 찾게 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계절성정서장애는 겨울이 되어 일조량이 급감함에 따라 우울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서 계절성우울증으로 직역된다. 지인 중에도 겨울바람 불기 시작하면 만나자 해도 '봄 되면 보자'는 사람들이 몇 있다. 아직 잘 모르던 때는 그냥 내가 싫은가 보다 했는데 여태 오래 지내고 보니 진짜 봄 여름 가을에는 나보다 텐션 좋다가 겨울만 되면 에너지가 사정없이 고꾸라진다는 걸 알게 됐다. 미첼처럼 약을 먹어야 할 정도가 아니더라도 겨울이 되면 많은 이들이 이불속에서 나오는 게 참 힘들고 때로는 올해도 또 망한 채 끝났구나 하는 기분에 텐션이 높지는 않다. 어쩌면 겨울마다 울적하지 않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서 연말에 대성공을 만끽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 호사 누리고 나면 끝이고 겨울은 보통 4개월인데 점점 더 길어지고 있으니 더 근원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미첼은 햇빛을 맞고 토양을 밟으며 다양한 생물들과의 조화 속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화학작용이 체내에 흡수되면 마음을 치유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런 원리라면 겨울마다 처지는 기분을 극복하기 위해 무조건 겨울에도 매일 밖으로 나가라고 할 수 없다. 어차피 겨울이라 맞을 햇빛도 적고 땅은 얼어붙었으며 동식물도 겨울잠을 자고 있으니 뭐로 봐도 무의미하다. (그래도 나가는 사람은 승자다.) 그렇기에 미첼은 봄에서 가을까지 매일같이 밖으로 나가 자연 속을 걷고 자연물을 발견하고 느끼며 마음과 머릿속에 많은 장면을 담아두기를 권한다. 그렇게 담아둔 것들을 겨울 동안 하나씩 꺼내어 곱씹으며 그래도 괜찮게 겨울을 버티라고 말한다. 너무 추운 겨울날이 지루할 때 지난여름휴가 사진들을 보며 위로받는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2년 전 어느 가을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집커피 말고 베리에이션이 가득한 브랜드 커피가 먹고 싶어서 테이크아웃하러 나왔다가 아주 청명한 가을하늘을 보다 말고 훅 커피를 들이켠 뒤 갑자기 동네 산을 올랐다. 그렇게 갑자기 등산한 것도, 혼자서 등산을 간 것도 처음이었다. 뭐에 홀린 듯이 산속을 걷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솟구쳐서 산에 도착했는데 처음에는 어느 정도 오르고 산림욕을 즐기다 내려와야지 하다가 결국 정상까지 찍었다. 무려 18년 만에 한 등산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이 키우며 수험생활을 하며 답답함이 쌓이고 쌓였다가 그렇게 한 번 터져 나온 것 같다. 터지는 방법도 하여간 참 건전하다.



 비슷한 예로 5년 전 초가을 가족 여행 중 편백나무숲길체험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맨발로 산길을 걸으며 발바닥에 닿던 기분 좋은 차가움과 향긋한 나무냄새가 가끔 떠오른다. (솔직히 말하면 사진을 보면 떠오른다. 여러분도 사진은 늘 많이 남기시길. 형편없는 기억력보다 백번 낫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육아로 피곤한 시절이라 더 고생만 할 거 같아서 고민한 여행이었는데 그 숲길체험을 하면서 오길 잘했다 생각했다. 다들 집 근처에 산 하나는 있을 테니 꼭 정상을 가는 게 아니더라도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을 밟으며 피톤치드를 가득 맡기를 바란다.





p51. 가을은 종종 올해는 겨울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시작된다. '이것 봐, 뱀도랏 꽃이 아직도 피어 있어. 게다가 날씨가 6월처럼 따뜻하잖아.'하지만 난 녀석의 속임수를 잘 알고 있다. 대기의 질감이 미세하게 변하고 인디언 서머(10월부터 11월 사이에 나타나는 초여름처럼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가 물러나면 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 얼얼하고 살벌한 추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p129. 확실한 것은 우울증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여러 생화학적 변화가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주된 요인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를 증가시키는 만성 스트레스로, 스트레스 원인이 장기간 지속되면 우울증 발생 위험도 커진다.

p130. 처음엔 나도 애써본다. 침대에 누워서라도 최선을 다해 작업을 시도한다. 잠깐씩이나마 정신이 또렷해지면 글도 쓴다. 하지만 잠기운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나는 도무지 깨어 있질 못하고 밤잠만으로는 모자라서 하루에도 서너 번씩 낮잠을 잔다. 기억이 흐릿해지고, 하루가 시작된 줄도 몰랐는데 이미 끝나버렸다는 걸 깨닫는 일이 종종 생긴다.




 책이 4년 전에 나온 것이기도 하고 영국 기후에 맞는 서술이라 기간은 좀 다르지만 우리나라도 9월 말에서 10월 중순 사이에 인디언 서머가 있다. 가을에 여름옷을 입으면 사람을 들뜨게 하는 법이라 이 기간 동안 맘카페나 이웃 블로그 글에 수두룩 '너무 걷기 좋은 요즘'하면서 사진 첨부한 글이 참 많았다. 주 3회 피아노 학원 다녀오는 길이 버스가 딱 맞는 게 없고 아이 걸음으로 왕복 40분 가까운 거리라 여름동안 그냥 학원 때려치울까 했는데 요즘은 아이가 먼저 '걷기 참 좋다'라며 그 길을 즐기고 있다. 이러다 또 춥다고 때려치울까 하는 날이 오겠지. 요즘은 딸도 요즘 부쩍 아침에 일어나는 게 오래 걸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학교 가기 일쑤고 나도 아침저녁의 쌀쌀함에 굳이 나갈 일 없는 날에는 씻지 않고 꾀부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귀찮아 내일 걷자 하며 미루다 갑자기 겨울 오면 살찌는 것만 남았으니 서둘러 나가자.


 

 미첼은 단지 계절성정서장애를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여러 가지 사건을 동시다발적으로 경험하면서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병에 대한 원인과 그 과정, 결과를 공부하며 적극적으로 약물 및 상담 치료를 해왔다. 주치료의 효과를 더욱 배가시키는 방편으로서 자연 속을 걷고 탐색하고 느끼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말한다. 미첼은 학자답게 피톤치드의 기능이나 자연 속을 걷는 행위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급증을 막고 신체의 다양한 생리적 기능을 조절하는 신경조절물질인 세로토닌을 증가시켜 인간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다양한 논문자료나 과학적인 정보를 제시하며 설득한다.




p146. 우울증을 완화하려면 주변 경관에 새가 있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조류학적 자가 치유를 시도하기 위해 나는 우리 정원에 새들을 끌어들이기로 한다.

p147. 이후 며칠 사이 참새 무리가 단골손님이 되고 박새와 찌르레기 한 마리, 오색방울새 한 쌍, 거기다 기쁘게도 오목눈이까지 몇 마리 찾아온다.(...) 오목눈이들이 주고받는 높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우리 집 정원에서 들으니 기분이 짜릿하다.




 새라면 나도 할 말이 좀 많다. 아이가 늘 강아지 키우고 싶다 하는데 작은 집을 방패 삼아 집이 넓어지고 마당 생기면 키우자고 설득하며 보류했다. 그러다가 2년 전 아이가 앵무새는 어떠냐며 2차 협상을 시작했다. 남편도 합세하여 앵무새는 개만큼 손이 가지 않을 것이라고 거들기에 청계천 새 시장에 가게 됐다. 거친 새 시장에서 그래도 폴짝폴짝 잘 오는 한 마리를 골랐더니 주인이 노상 놀아주는 환경이 아니면 외로워서 자살한다나 모라나. 그래서 두 마리를 데려왔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신이 나 즉흥적으로 목덜미가 불긋한 녀석을 치치, 전체적으로 노란 연둣빛인 녀석을 토토라고 이름 지었다. 녀석들은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마치 늘 타던 차인 양 먹이를 먹다가 잠이 들었다. 내가 동물을 키우게 되다니. 자식을 키우다 보면 난생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참 많아진다.



 앵무새 카페가 아닌 거친 청계천 시장에서 데려온 이 녀석들은 처음에 기가 너무 셌다. 초반에 손가락에 피보기를 여러 번 하다 결국 못 참고 부리를 패가면서 길들였다. 그러다 가방에 넣고 산책도 함께 하고 계곡도 같이 다녔다. 빨래가 다 걷어진 날이면 건조대에 올려두고 사다리놀이도 맘껏 시켜주었다. 그럴 때면 기분이 좋은지 그릉그릉 자잘한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나도 편안해지곤 한다. 같이 놀자, 새장에서 빼달라 하며 깍깍거려서 빼주면 강아지가 핥듯이 작은 혀로 날름날름 거리며 뾰족한 부리 끝이 함께 닿아 간질거리며 애교를 부린다. 안전을 위해 윙컷을 해서 잘 날지 못하는데도 설거지를 할 때나 노트북을 하는 중에 갑자기 날아와 몸 아무 데나 우스꽝스러운 착지를 하기도 한다. 확실히 이 녀석들이 집에 오고부터 조금은 귀찮고 많이 위로받는다. 미첼은 더 멋있게도 새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 정원에 온갖 새들이 놀러 올 환경과 먹이를 구비하고 매일 다르게 놀러 오는 새들을 그저 바라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미첼의 환경은 다소 특별한 것이고 누구나 새를 키울 수는 없지만 아침 산책이나 숲 속에서 새소리를 듣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p253. 태초부터 인간과 땅 사이에는 강력한 유대가 있었다. 우리는 야생의 장소에서 살아가도록 진화했다. 현 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연과의 단절 때문일지도 모른다.

 (...) 채집 수렵 생활을 하던 우리의 조상들은 하루 상당 시간을 물가나 숲 속에서 보냈다. 최초의 농부들이 정착하여 땅을 경작하면서 인간의 삶은 물줄기와 숲, 주변에 서식하는 동식물 여러 환경요소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인간은 그렇게 진화해 왔다.




 현대인들이 원하는 많은 것들이 대도시에 있다. 나도 한적한 외곽 동네에 만족하며 살지만 가끔 서울에 놀러가면 그렇게 재밌다.(원래 고향이 서울이기도 하니까.) 대도시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지만 그 동기를 보자면 인간의 본능으로서 도시가 끌리는 게 아니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고자 하는 여러 목적에 의한 선호일 뿐이다. 인간의 본성과 멀어진 현대사회의 삶은 정신이 멀쩡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절대 나약해서 우울한  아닌 거다. 미첼이 그 오랜 세월 우울증을 가지고서도 박물학자, 디자이너 등 여러 일과를 소화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원동력에는 자연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은 모든 걸 다 버리고 갑자기 전원생활을 하는 게 정답이라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심신 건강은 결국 자연 속에서 자연물과 교감하고 흙을 밟고 물을 만져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균형과 조화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마음의 병이 짙은 이들에게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미첼의 메시지가 위안이 되고 적극적인 제시가 될 수 있으며 요즘 가을 타냐는 말을 자꾸 듣거나, 소설 이야기따라가거나 자기 계발서를 들이 파는 게 지친 사람들에게는 쉬어가는 느낌으로 읽어보기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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