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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T맘 Oct 04. 2024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개정)

진짜 러브스토리는 지금부터 


 나를 비롯한 친구들 대부분 학부모가 된 마당에 절친이 이제야 결혼했다. 미국에서 오래 혼자 살던 친구는 15살 연하의 미국인과 결혼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친구의 결혼식을 가는 내내 기분 좋은 긴장이 계속됐다. 절친의 결혼인 것도 있지만 친구가 나에게 영어 축사를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20년 넘게 영어와 절교하고 살아와서 영어 번역은 보면서 하려고 했는데 하도 읊조려서 그냥 다 외워졌다. 호텔 결혼식이라 모든 일정은 여유 있게 진행되는 분위기였고 나의 축사도 한글과 영어 번역까지 총 8분. 실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영어교사인 다른 절친도 축사하는 동안 울고 웃는 분들 많았다며 잘했다 하고 하객들 중에 영어 잘 알 많은데도 축사 너무 잘 들었다고 인사 왕왕해주시는 거 보고 의미는 전달되었나 보다 싶었다. 결혼 10년 차가 된 지금 친구의 결혼식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친구네 부부는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힘들 정도로 눈이 보이지 않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 나도 저렇게 웃는 사진이 분명히 있었지! 결혼의 시작은 이렇게나 낭만적이고 희망차다. 그러나 낭만은 잠시 뿐, 우리는 놀라울 만큼 자질구레한 것들로 물어뜯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혹독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부부는 서로에게 내어줄 무언가가 없게 된다. 때로는 '넌 날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는 부정적인 이벤트가 자주 발생한다. 결혼을 준비할 때는 자신들은 다른 부부들과 다르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보통 사람은 보통 사람일 뿐이다. 우리가 보통이 아닌 완벽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결혼할 필요도 없다.




 열렬한 사랑을 받는 작가들에게는 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풍미가 진한 서사와 묘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원재료인 자신의 삶 자체가 드라마이거나 글 속에 속속들이 꽉 차있는 영양만점의 철학이나 여러 학식(學識)이 돋보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의 대열에 당당히 자리매김한 알랭 드 보통은 철학 박사로서의 기지(奇智)와 유머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오래전, <우리는 사랑일까>를 처음 읽었을 때 알랭 드 보통에게 빠져들었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불안>을 간격을 두고 읽으면서 감탄했다.  몇 년 전 읽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여러 리뷰들을 보니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서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들에 비해 선호도가 낮다는 평이 많던데, 내가 실질에 집중하는 T뇌여서인지 별로 문제 되지 않았고 세계고전이나 스테디셀러 번역본에서 늘 마주하는 문제라 충분히 읽을 만했다. 특히 결혼 10년 차들에게 강추! 왜 그런지는 10년 살아본 분들은 다 아실 거라고 믿어요.....


http://naver.me/FA6blcMX


 보통 사람들의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은 결혼 생활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날카로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관찰과 지혜 어린 말들은 종종 거지 같은 기분에 휩싸여 어리석게 구는 우리들을 끌어안아 토닥여준다. 낭만에 빠져 결혼했건만 우스꽝스럽고 처절하며 치사하고 안쓰러운 일상이 자꾸만 펼쳐진다. 좀처럼 적응되지 않고 적응됐다 싶으면 꼭 집어 말하기 힘든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과 기술, 그리고 결혼의 의미는 분명히 있다. 소설과 에세이와 자기 계발서가 묘하게 접합된 이 책을 읽으며 결혼이 사랑의 시작이나 결실이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비로소 결혼할 준비가 된다는 역설을 간파해 보길 권한다.


에이 그러지 말고 잘해보자고 




 p.27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p.28 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다.




 "어떻게 둘이 만나게 됐어?"

 미혼이든 기혼이든 이 질문을 받으면 그 순간은 무척 로맨틱했던 때로 돌아가 약간은 자아도취의 상태로 떠들게 된다. 부부는 '견딜만하면'유지되는 관계이기에 이 질문은 그들이 현재 진행형임에도 불편한 경우가 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산 부부도 첫 만남에 대한 기억만큼은 흐릿해지지 않지만 다른 것들-대화, 신뢰, 애정이 흐릿해진 탓에,

 "그러게나 말이다. 내가 왜 이런 인간을 만났는지 모르겠다"

 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사는 것이 생각보다 대단한 인내와 충성, 어른스러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다 그래 어떻게 재미로만 평생 살아 


 "결혼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은 차원이 달라."

무슨 대화 끝에 남편이 단호하게 말한 적 있다. 결혼한 사람은 안 한 사람보다 생각하는 내용이 넓고 깊으며 결혼 안 한 사람은 결혼한 사람보다는 안일하고 쉽게 좌절하며 뭔가를 감당해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결혼 안 하리라는 생각도 가끔 하는 나로서는 뭔가 발끈하게 되는 말이었지만 어쨌든 지금의 자신이 예전(결혼하기 전)의 자신과는 차원이 달라졌다는 말을 한 것으로 이해했다. 딸려있는 게 없을 때와 많아졌을 때 사람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혼 전의 나는 엄마가 해준 음식을, 내가 먹고 싶은 시간에 아무 때나 먹어치우고 아주 조금만 머리가 아파도 겨울잠 자는 짐승처럼 누워만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귀찮고 대충 먹고 싶다는 내 희망사항은 애써 무시한 채 남편과 자식을 위해 정해진 시간마다 식사를 준비한다. 너무 아파 움직이기도 힘든 날에도 육아와 살림 스케줄은 여전히 돌아간다. 영 못하겠다 싶은 날은 할 일을 줄이기는 하지만 아예 짐승처럼 드러누울 수 있는 날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키우면서 예전에는 친하지 않았던 단어들, 이를 테면 인내, 다정함, 사랑스러움, 희생, 미래에 대한 걱정, 분투가 일상을 압도적으로 채운다. 확실히 결혼 전에는 지금보다 생각할 게 적었고 하고 싶은 대로 딱 나 하나만 챙겼기에 가볍고 수월했다. 이렇게 결혼 후의 삶이 정신 사나운데도 성난 파도 같았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어쩐지 바람을 따라 흘러가는 잔잔한 수면 같다. 저녁을 먹고 치운 자리에 남편과 아이와 함께 널브러져 있는 시간이야말로 하루 중 가장 말랑말랑한 시간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 아이의 재롱잔치로 마냥 하하 호호하던 시절은 지났고 아이 문제집이나 숙제 등을 체크하며 점점 딱딱해져 간다. 그럼에도 하굣길에 나를 보며 함박웃음으로 달려오는 아이를 안을 때나 제법 어른스러운 투로 조잘거리는 아이의 귀여운 목소리를 들을 때 여전히 말랑말랑해지곤 한다. 혼자나 둘이 살면서는 제아무리 극세사 담요를 덮고 맛있는 간식을 깨작대며 뭔 짓을 해봐도 따라잡을 수 없는, 매일 반복적으로 꾸준하게 불어넣어 지는 이런 따스함으로 인해 기혼자들에게서는 꾸며지지 않은 안정감이 느껴지는 가보다. (그래서 미혼 여성이 유부남에게 빠져드는 불행한 현상이 벌어진다지?)




p.58 라비는 사랑의 이름으로 기꺼이 파멸도 하겠다는 자신의 태도를 헌신의 증거로 간주한다. 실용적인 의미에서 결혼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오히려 결혼에 더욱 감정적인 설득력을 부여할 뿐이다. '결혼했다'는 것은 조심성, 보수적 경향, 소심함과 연관 지을 수 있지만, '결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더 무모하고 그래서 호소력이 더 큰 낭만적 제안이다.

p.60 산만한 파티를 끝내고 혼자 걸어오는 귀갓길, 다른 사람과 말 한마디 섞지 않고 흘러가는 일요일, 아이들 때문에 녹초가 되어 대화를 나눌 기운조차 없는 부부들 뒤를 따라다니는 휴가, 누구의 가슴에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쓸쓸한 깨달음은 이제 족했다.

 


 

 우리는 평생 재미나 휴식과 애정이 없어도 가동되는 기계가 아니다. 아무리 바쁘고 화려한 싱글이라해도 수시로 찾아오는 외로움과 해가 갈수록 가정을 꾸려 멀어지는 지인들의 뒷모습을 봐야만 한다. 성인이 되어 처음 독립했을 때는 그저 신나게 그 자유를 즐기겠지만 그 신난 기분은 몇 년 지나면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밤을 새우고 놀아도 멀쩡하던 팽팽함을 유지하며 백 년이 흐르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나 애인을 만나고 헤어지는 반복이, 새벽에 진탕 취하는 게 좀 지루하고 피곤해져서 예전에는 들여다보지 않던 시계를 자꾸 보게 되는 때가 온다. 점차 가정을 꾸려 점점 멀어지는 친구들은 아무리 목숨같은 절친이라 떠들어왔어도 결국 이제는 당신과 자기 자식이 물에 빠지면 주저없이 당신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60대인데도 하나도 외롭지 않고 여전히 너무 재밌는데?'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솔직히 이제는 재밌다고 여길 수밖에 없으니 스스로 가스라이팅 하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평생을 함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맞아 평탄하게 산다는 가정하에 그렇다. 알다시피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백 번 나은 가정도 있다. 


하 그만 놀고 집에 가고 싶다....


 가족이 생기면 지루함을 이유로 시계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사람 혹하게 만드는 번쩍번쩍한 분위기는 없지만 홈웨어를 걸친 채 집안 조명 아래나 마당에서 아이 재롱을 보며 반주(酒)를 하거나 아이를 재우고 재밌는 영화 한 편 보거나 책을 실컷 읽다 잠드는 것, 어쩌다 한 번씩 가정 살림을 잠시 잊은 채 놀다 오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결혼 후의 일상은 느슨하게 넘실거리며 가끔 물밀듯이 밀려오는 사무치게 외롭던 때를 부드럽게 밀어낸다. 제발 잠시라도 혼자 있고 싶단 소리를 자주 하는 나지만 혼자 몇 시간 놀다 아무 때고 부르면 나올 한 사람이, 좀 더 크면 친구가 될 딸까지 두 사람이나 확보된 것은 무척 다행이고 감사하다.



 오래된 옛날에는 결혼에 있어서 낭만은 부재했다. 유럽이든 아시아든 각자의 가정의 조건을 맞춰 이뤄지는 확장형, 목적형 결혼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대에 낭만을 쫓은 남녀는 살기가 힘들었고 때로는 죽임을 당해도 싸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렇게 이루어진 조건부 목적형 결혼은 마치 '그러게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살라고 그래요!'라고 말하듯이 간통, 폭력 등 별의별 문제가 발생했다. 자연스럽게 사회는 낭만을 쫓는 방향으로 변했다. 첫눈에 반해서 한 결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한 결혼, 완전히 다른 가풍의 남녀의 결혼,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결혼, 무턱대고 아이를 먼저 가진 채 한 결혼 등에 박수를 쳤고 오히려 그런 결혼이야말로 무모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데 어떻게 외도를 하고 어떻게 지겨워질 수 있고 어떻게 감히 싸우다가 뭔가를 집어던지고 때리고 욕을 하는 짓들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 낭만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결혼 생활 중 자꾸만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러냐'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면 아직도 그놈의 낭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다. 우리는 낭만주의를 넘어서 진짜 러브스토리가 있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야만 한다.

 



p.63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렸을 때 맛본 사랑이란 보다 파괴적인 다른 역학들과도 얽혀 있다. 예를 들어, 통제 불능의 어른을 도와주고 싶은 느낌, 아빠나 엄마가 다정하지 않다거나 그들의 분노가 두렵다는 느낌 또는 철없는 소원을 자유롭게 표현할 만큼 집안 분위기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느낌과도 뒤얽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인으로서의 우리가 어떤 후보군을 그들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조금은 너무 옳기 때문에-왠지 지나치게 안정적이고 성숙하고 분별 있고 믿음직하게 여겨지기 때문에-거부하게 되리라는 것도 얼마나 필연적인가. 심정적으로 이러한 올바름은 이질적이고 거저 얻은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보다 자극적인 사람을 쫓는다. 그들과 함께하는 삶이 더 조화로운 것이라는 믿음에서가 아니라, 그 삶이 가질 좌절의 양식이 안심하리만치 친밀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안타깝지만 대부분 완전한 부모의 사랑과 육아를 통해 성장하지는 못했다. 심각한 수준이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 대체로 문제가 있는 방식과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엄마가 정상이면 아빠가 비정상이고 아니면 거꾸로 그렇거나, 둘 다 정상이긴 한데 둘의 사이는 냉담하다거나, 그도 아니면 행복하긴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돌연히 죽어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결손이 발생했거나, 일일이 상황을 가정하자면 끝도 없다. 엄마와 아빠가 평생 언제나 변함없이 애정을 과시하며 자식들에게도 한결같이 다정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듯 문제가 있는 방식과 분위기에 익숙한 나머지 나와 다른 정답 같은 소리 하고 앉았는 사람에게는 정이 가지 않고 '너도 나처럼 아프구나.' 하면서 문제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줘버리고 그(그녀)를 선택한다. 라비도 그동안 연애하며 만나온 충분히 정상적인 여자들을 제치고 갑자기 냉담해지는 버릇이 있는, 평탄하지 않게 자란 커스틴에게 기꺼이 청혼한다. 그들은 결혼 전까지는 서로의 아픈 가정사에서 비롯된 이상한 행동양식을 당연히 그 누구보다도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줄 것으로 믿지만 결혼생활 내내 한동안 '도대체 저 인간은 왜 저러는 거야'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살게 된다.


너도 나 보면 그러니...? 


 부부의 기존 애착 유형에 대한 파악은 안정정인 가정생활을 지속하는 데에 있어 꽤 중요한 부분이다. 불안정 애착형은 갈등상황에서 침묵, 지연, 막연함 같은 애매한 상황을 못 견디며 극적으로 반응하며 삶을 위해 늘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반면 회피형 애착형은 정서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갈등을 피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하고 있으나 그들에 대한 설득이 불가능할 것으로 간주한다. 조애나 페어베언 박사의 <부부 관계에서의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 대상관계 이론의 관점>에 보면 부부 대다수가 다른 애착 유형끼리 끌리고 결합되기 때문에 다들 비슷하게 지지고 볶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애착 유형을 파악하고 배우자에게 좀 더 친절하게 자신의 방어적인 말과 행동 아래에 있는 진짜 생각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낭만주의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그런 걸 바랐겠지만 그건 진짜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우리 부부도 남편은 내가 갈등 상황이나 힘들 때마다 말을 거의 안 하고 문을 닫고 내버려 두기를 바라는 것에 신물을 내고 나는 잠깐의 분리를 견디지 못하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따지고 드는 남편에게 질려버렸던 시절이 있었다. 10년 차가 된 지금은 갈등상황까지 가지도 않거나 가더라도 바로 회복하는 탄탄한 관계가 되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아이가 커 갈수록 교육이나 훈육 관련하여 부딪히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데 싸우기야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며 단단하고 사랑을 주고받을 줄 아는 사람으로 잘 키우자.'는 것은 같다는 것을 알기에 결혼 초반처럼 오랜 시간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맛탱이 없게 저녁을 욱여넣고 각자의 공간에 처박히는 짓은 안 한다. 결혼 초반의 '나를 대하는 방식' 등 겉으로 드러난 행위에 집중하며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소모적인 싸움을 하던 것에서 상대방 내면의 핵심을 보면 나랑 같은 생각인데 행동이 다른 경우가 훨씬 많기에 그저 이해하고 대화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마음은 따뜻한데 겉으로는 무서울 수 있엉 




p. 65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 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p.77 라비의 눈에는 자신은 매우 친절한 사람인데 단지 운이 나빠 친절함을 보여줄 문제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바다흐샨의 부상당한 아이에게 피를 나눠주거나 칸다하르의 어느 가족에게 물을 날라다 주는 것이 아내에게 몸을 기울이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쉬울 듯하다.

p.116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함께 살기에 가끔 꽤 힘든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다는 특이한 신호를 주고받는 것뿐이다.

p.123 우리가 불만 목록을 노출할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불의와 결함에 대해 누적된 모든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사람 탓을 하는 건 당연히 부조리 중에서도 부조리다. 하지만 이렇게만 본다면 사랑의 작동 법칙을 잘못 이해한 셈이다. (중략) 우리의 난폭한 비난은 친밀함과 신뢰의 독특한 증거이자 사랑 그 자체의 한 증상이고, 제 나름대로 헌신을 표현하는 비 꾸러 진 징표다. 분별 있고 예의 바른말은 모르는 사람에게 할 수 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무분별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믿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뿐이다.




 이 책은 부부는 여러 역할과 요구가 쌓여감에 따라 흐릿해질 수 있는 사랑의 순간을 붙들 줄 알아야 하고, 서로에게 보이는 수면 위의 것에 집착하지 말고 그 아래에 있는 방대한 것들을 간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직 한 사람과 숱한 삶의 곡절을 헤쳐나가고 몇의 아이를 어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고된 삶 속에서 서로 죽기 전까지 언제나 서로에게 섹시함을 느끼며 자신의 개인적 열정과 가정생활의 일상을 어느 것도 희생시키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안 아픈 데가 없지만 건강하다는 말처럼 말이 안 된다. 결혼이 도박이라면, 대박까지는 힘들더라도 조금 맛이라도 봐야 하니까 어떻게든 수단을 마련해 보자. 결혼하면서 보는 내 모습과 상대방의 모습은 그동안 알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 남들이 알 수 없었고 알아서도 안 되는 서로의 미친 부분은 부부끼리만 알고 있기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잘 짜고 치는 고스톱을 쳐야 한다. 



 풍파에 사랑이 닳을 수 있고 아이에게 쏟는 엄청난 사랑의 에너지 소모로 인해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애정은 변해간다. 부부는 점차 서로가 잘 맞기를 바라는 집착을 버리고 함께 이루어가는 여러 합의 사항과 그 결과들에 뿌듯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대단한 업적은 아니더라도 해마다 어디 하나 균형을 잃지 않고 굳건히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힘을 가진 작은 공동체이다. 불타다 헤어지는 연애사들에 콧방귀 뀌면서 중도에 때려치운다 해도 하등에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힘들고 안 맞는데도 여전히 머물러 있고 앞으로도 머물기로 작정한 그 단단한 사랑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 그게 부부다. 부부가 되고자하는 무모하고도 낭만적인 결심을 앞둔 분들, 이미 부부로 살며 아직도 헤매고 있는 분들, 지금까지의 결혼생활에 대한 점검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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