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서평에세이를 쓰려고 발췌 부분을 타이핑하고 있는 내 옆에서 책을 읽던 아이가 말한다.
"엄마, 요즘 공부 안 하니까 좋지?"
가장 무서운 게 자식이라더니. 아이 눈에도 내가 훨씬 즐거워 보이나 보다. 그래도 아이에게 늘 공부하라고 말하는 엄마로서 공부를 포기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곧 다시 공부도 시작할 거야."
"그냥 하지 마. 엄마가 공부 안 하고 요즘 나랑 놀아주니까 나도 좋거든."
그렇구나. 하며 아이의 뺨을 감싸니 아이가 해사하게 웃는다. 아직은 내 두 손바닥에 동그랗게 들어오는 말랑한 초1 딸아이의 볼은 언제나 귀엽다. 공부할 때는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도 성가셨고 빨리 재우기 바빴고 아이가 잡다하게 구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늘 예민했다. 그게 미안하면서도 그래도 할 일은 다 하고 있지 않냐며 화가 나던 날들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공부와 달리 아이가 나를 부르면 기꺼이 응할 수 있고 같은 책상에서 아이와 함께 해도 부담이 없다. 무엇보다도 공부는 못돼 처먹었어도 점수만 잘 나오면 그만이지만 글 쓰는 사람이 못돼 처먹어서는 안 될 일이기에 나는 확실히 공부할 때보다는 좀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있다.
"엄마 다시 공부 시작해도 전처럼 막 되게 열심히는 안 할 거야.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거든.
이제 잘 놀아주면서 할 거니까 걱정 마."
이건 뭐 거의, 내년에도 떨어지겠다는 고백일 수도 있겠다. 어차피 도전은 꿈에게 질 수밖에 없다. 나의 오랜 꿈은 작가였고 법무사나 그 밖에해 온 분야들은 도전일 뿐이었다. 요즘은 그저 연재글을 올리고 나면 또 다음 연재할 주제를 떠올리며(여태 읽어온 분들은 알 테지만 목차가 거의 바뀌고 있는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을 간파했을 것이다.) 모든 감각은글을 쓰기 위해 열려있다.
글을 쓰면서부터는 책을 나보다 많이 읽고, 내 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절친과 전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3담임교사인 이 녀석은 9월까지만 해도 날카로운 입시 전략의 칼날 위에 접신한 듯 방방 뛰면서 주말에도 입시 설명회를 다니며불살르더니 요즘은 이제 수능 한 달 남았는데 자기가 더 이상 할 건 없다며, 한가한 듯 연락이 자주 왔다. 마침 나도 브런치스토리 '작가의 여정'전시를 보러 인천에서 서울 성수동까지 혼자 갔다 오기에는 너무 멀고 지칠 것 같았는데 오랜만에 친구와의 데이트 겸 지난 주말, 성수동 나들이에 나섰다. 그놈의 성수동! 도대체 뭔 동네길래 그렇게 다들 힙성수 해가며 난리인지 한번 행차해 보자고! 친구는 성수동이 가까운 편이라 몇 번 놀러 가봤다고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디올보다 더 예쁜 카페바ㅋㅋ
성수동은 정신줄 놓치면 다 털리는 무서운 동네라고 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만나기 며칠 전부터 가성비 좋은 루트를 짜놨었다. 내가 먼저 도착해점심을 먹기로 했던 '능동미나리 성수'에 줄부터 섰다. 매장 내부가 깊숙이 넓고 2층까지 있어서 테이블 순환은 빨랐기에 줄은 금세 앞으로 당겨졌다. 거의 입장할 순서가 될 즈음, 친구가 공주님처럼 등장했다.등장순서만 공주님인 게 아니었다. 자리에 앉아 외투를 벗자마자 아이보리 컬러에 은은하게 반짝이고 유려한 곡선미가 넘치는 친구의 타이 블라우스를 보며 놀렸다.
"여기서 점심 먹기에 너무 우아한 거 아니냐.ㅋㅋ 여기 말고 브런치 가야 할 것 같은데?"
"네가 그 소리 할 줄 알았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친구가 행여 왕섞박지를 입으로 잘라먹다가 팡 떨구며 김치국물이 튀어 기분 잡칠 것을 염려하면서 왕섞박지를 한입 크기에 맞게 잘라놨다. 마침 나는 빨간 옷이어서 기꺼이 그럴 수 있었다. 살면서 너무 많은 사건을 겪으며 늘 기분 잡친 편이라 매사 온갖 상상을 하는 습관이 있다.
친구는 원래 12시 약속을 1시로 미루자한 이유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이유인즉슨 전날 밤 한강 <소년이 온다>를 세 시간 만에 완독하고 소설 속 참상이 너무 힘겨워서 중화하기 위해 일부러 새벽 늦은 시간까지 쇼츠 영상을 보며 웃다 지쳐 잠들었다고 했다. 나는 친구를 만나러 오는 동안 지하철에서 한강 소설 두 작품이 엮인 패키지를 구매했는데! 어떻게 만나자마자부터 한강 소설 이야기부터 나오는지, 시작부터 재밌다.
20대 때 <소년이 온다>를 읽으려고 했을 때 주변 선배들이 '지금 읽으면 너무 힘든 책이니 좀 더 나이 먹고 읽어라.'라고 말려서 못 읽었다. 남의 말 잘 안 듣지만 책에 관련한 조언은 새겨듣는 편이라 진짜 안 읽었다. 최근 서평 에세이 기획할 때 이미 목차 뒤편에 <소년이 온다>를 올려두고 읽으려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노벨문학상까지 떡 하니 타주시고 이제 내 나이도 마흔이라 짬바까지 갖췄으니 비로소 때가 된 것이다. 스포가 될 부분은 빼고 그렇게 책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분명 전날 밤 <소년이 온다> 속에서 본 여러 비릿한 장면들의 서사 때문에 힘들었다던 친구는 육회비빔밥이고 육전이고 그저 너무나 맛있게 잘 먹어서 좀 모자란 지경이었다. 난 이 친구가 기억에 얽매이지 않는 친구라서 참 좋다.
밥줄도 서 있었고 여유 있게 먹었더니 시간이 훅 가버려서 커피는 브런치스토리 전시장 방향 쪽에 있던 대림창고에서 테이크아웃했다. 이 카페는 전시도 겸한다고 했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 많다는 성수동. 그래서인지 이번 브런치스토리 첫 전시 장소가 성수동인 것 또한 무척 잘 어울렸다. 길 곳곳에 공연이나 행사를 많이 해서 매장 구경 외에도 눈과 귀가 즐거운 동네였다. 비슷하게 힙동네라고 자부하는 연남동, 문래동은 구간이 짧고 아기자기한 매장 위주에 매장 느낌들도 비슷한 편이라 한 두 번 가 보면 족하다. 반면 성수동은 아기자기한 매장부터 대형 복합 아트 스토어, 현대와 전통의 공존까지 무드가 다양하고 구역 자체가 광활하다. 온종일 놀아도 구석구석 닿지 못한 골목길과 바로 근처 서울숲이란 메리트까지 더하자면 확실히 왜 여기서 들 노는지 알 것 같았다. 몇 번 와 본 친구조차도 오늘은 또 새롭다했다. 하지만 매장들이 금세 없어지고 새로 생기는, 그 방정맞고 경솔한 모습은 아쉽다. 어렵게 영혼을 갈아 성수동에 입성했다가 못 버티고 나간 업자들의 분통함부터 생각나는 어른이 된 것이다. 됐다 누가 누굴 걱정해..
이 날의 본식은'브런치스토리전시 <작가의 여정>'이었다. 정기연재 작가활동 중인 나로서는 응당 와야 할 곳이었다. 나처럼 활동 작가들이나 관심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밖에 줄 서 있고 전시장 안에도 득실득실한 모습에 놀랐다. 주제에 맞춰 그 자리에서 글을 쓰는 여러 활동 프로그램에도 다들 적극적이었다. 요즘 대형 서점에 한강 소설 산다고 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SNS에서 댓글 토론이 한창이라고 들었다. '갑자기 왜 이래? 한국은 참 병이다' VS '어쨌든 책 읽겠다는데 좋은 거다'. 내 입장은 노벨문학상 한강 효과든 뭐든 간에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은 환영이다. 병 중에 끔찍한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 병이면 다행인거지, 참 웃기다. 나는 대문호(大文豪)의 전시장도 아닌, 신인작가 발굴 플랫폼에서 하는 이 전시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온 것에 내가 브런치팀원도 아니고 전시된 출간작가도 아닌데 참 흐뭇했다.
입구에서부터 브런치 작가 여부를 앱을 통해 확인 후 작가인 사람들에게는 사진을 찍어 작가 카드를 발급해 주었다. 알고 갔지만 막상 친구 앞에서 작가랍시고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아직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서 부끄러운 것을 알기에, 나중에는 출간작가도 되고 내가 쓴 글을 주제로 만든 콘텐츠 사업도 잘 돼서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잘 벌어 밥 잘 사주는 예쁜 친구'가 되고 싶다. 여러 작가들의 출간 히스토리를 보면서 진짜 이게하고 싶긴 한지, 보는 내내 자꾸 울컥거렸다. 민망한 마음으로 찍은 작가카드 사진은 비록 머그샷처럼 나왔지만 전시는 동기부여가 확실히 되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모든 이야기는 책이 될 수 있다.', '내 이야기에 믿음을 가져라' 등의 메시지가 가슴에 남은 브런치스토리 전시였다.
벅찬 마음으로 전시장을 나오자마자 갑자기 친구가 이끌리듯 건너편으로 훅 가기에 쫄래쫄래 가보니 재즈 공연이 펼쳐졌다. 생각지 못한 고품격 공연을 보다가 휙 둘러보니 카페여서 더 놀랐다. 곡은 몇 곡 더 이어졌고 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사실 잠시라고 하기엔 성수동은 화장실도 줄이 참 길었다.) 친구는 야외 공연장 테이블 하나를 용케 자리 잡았다. 친구가 자릿세라도 내야 하지 않겠냐며 페퍼민트 차와 캐러멜 바나나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사 왔다. 차는 차 맛이라 치고 치즈케이크가 진짜 맛있었다. 케이크를 내가 산 게 아니라서 메뉴명을 몰라 검색하다가 성수동에서 이 날 먹은 모든 것 중 가장 비합리적인 가격이라 놀랐다. 어쩐지.. 더치페이인데 '이거는 우리 남편 카드로 사는 거니까 빼고 계산하자'라고 강조하더라니. 다른 팀 공연도 이어진다고 했지만 마지막 코스를 위해 우리는 일어섰다.
성수동에서 본다고 할 때부터 밥집보다 먼저 찾았던 마지막 코스는 bar였다. bar에 간지는 10여 년도 넘어서 검색할 때부터 신났다. 그런데 2km거리로 떠서 순간 당황했지만 둘 다 편한 신발이라걸을 만하다 생각하고 걸었다. 대충 본 거긴 하지만 아가씨들도 우리의 그때와 다르게 하이힐을 신은 이들은 별로 없었다. 우리들의 그 시절은 불편해도 '여자라면 하이힐'그런 시절이었다. 그걸 거부한다면 남성에게 사랑받지 않기로 결심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특이한 여자로 치부되었다. 이제는 세상이 한참 바뀌어서 편한 신발을 신고 하루종일 같이 즐겁게 놀 수 있는 여자들이 사랑받는다.(물론 예나 지금이나 예뻐야 한다는 건 기본이다.) 실용주의, 뉴트로, 놈코어룩, 애슬레저룩, 유니섹스 및 페미니즘 등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점차 하이힐은 굳이 왜 신어야 하는지 여러 차원에서 의문을 제기당하며 뒤편으로 물러섰다. 이제 하이힐은 행사용 신발 정도로 전락한 듯하다. 매일일보, 연합뉴스 등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몇 년째 운동화나 낮은 굽의 신발 판매량은 급증하고 하이힐의 판매량은 급감하고 있다. 얼마 전 친구는 아이들과 간 박물관에서 우리 중학교 때 교과서를 발견했다 했는데 이제 하이힐의 변천사까지 읊고 있네. 성수동은 매장 구경하는 것 못지않게 사람들 패션을 보는 재미도 쏠쏠해서 2km 정도는 별로 멀지도 않았다.
하마터면 지나칠 뻔하게, 깊이 구석에 박혀있던 bar에 도착했다.공간도 멋있고 음악도 멋진 곳이어서 또 성수에 간다면 다른 건 다 새로운 곳으로 누빈다 해도 마지막코스는 여전히 여기로 갈 생각이다. 한 때는 70-80년대 록 음악에 빠져서 음악평론글도 재미 삼아 썼었는데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절친이지만 둘 다 사는 게 치열했고 멀리 살아서 젊은 시절 술 마시고 논 추억은 별로 없었는데 마흔이 되어 이렇게 같이 bar에 앉아 있으니 또 한 번, 이제 평안에 이르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종종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일단 큰 파도들이 벌써 많이 지나갔음에 감사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이 익었고 갈 길이 먼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허세 가득한 성수동에서 온종일 인당 5만 원 선에서 논 것에 똑같이 뿌듯해하는 바람에 버스 안에서 바보처럼 웃었다. 힙한 곳일수록 꼭 정신이 온전한 친구랑 놀러 가야 한다. 아무 나하고 놀면 큰일 난다 진짜..
여행이 뭐 별 건가 왕복 4시간 했음 여행이 아닐는지.ㅋㅋ 아침 11시에 일어나 밤 10시 넘어 집에 돌아오니 초1 딸과 온종일 보낸 남편은 마치 푹 익은 김치처럼 알맞게 숨이 죽었다. 다음 날은 내가 숨죽인 채 조신하게, 주말이 훅 갔다. 지난 회차에 멋있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며자기 확신이나 니체 정신,약간은 어려운 이야기를 했는데 일단 멋 내고 힙하다는 성수동 같은 데에서 노는 쉬운 것도해볼 가치가 있다. 평범치들에게는 심오함보다는 균형과 조화가 더, 자주 중요하다.출신이란 건 별 거 아니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서 서울 출신이라그런지, 매일 늙은이와 개들의 동네에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며 축 쳐지다가 정신 쏙 빠지는 성수동에서 하루종일 놀다 오니 한껏 기운이 나고 깨진 균형이 맞춰졌다.글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매번 심오한 것만 쓸 것이며 그럴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런 글은 진정성이 없다고 봐도 된다. 이번 브런치전시에서도 모든 이야기와 삶은 글이 된다고 했으니 이렇게 놀다 온 단순하고 사적인 일도 잘만 쓰면 글이 되는 거다! 근데 잘 쓴 건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