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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지붕집 만장이 Nov 29. 2023

독사. 연애하다.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치고 비가 내리던 날 밤.

나는 볼터치까지 바르고 나간 요사스러운 독사의 뒤를 조용히 밟았다. 전철역으로 들어간 독사는 잠실방향의 전철을 탔고 나 역시 어렵지 않게 같은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이미 어둠은 짙었고 비도 내리는데 바쁘게 어딜 가나 했더니 종착지는 신천역 롯**아였다.

나 역시 우산을 들고 비를 조금 맞다가 독사가 자리를 잡았을 무렵 우산을 접고 롯**아로 들어갔다.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독사는 입구에서  왼쪽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는데

창문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나는 독사가 바라볼 수 없는 뒤통수 방향으로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외로운 추격자인 나는 콜라를 하나 시켰고

눌러쓴 모자를 고쳐 쓰며  

독사가 만나는 사람의 인상착의와 옷매무새까지 스캔하며 나만의  심오한 평가를 때리고 있는 중이었다.

콜라를 마신 지 채 5분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독사의 뒤통수를 가리며 나의 테이블 건너편에 앉았다.


누구.....?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이 아가씨 나랑 맥주나 한잔 하지?"


당황했다.

"아즈씨. 그냥 가주시죠. 네?"

남자는 소리가 잘 안 들렸는지 뭐? 뭐? 뭐라고?

하며 반말을 해댔다.

그래도 22살이나 됐는데 성인으로써 반말이  매우 거슬렸다. 생긴 건 빨간 고릴라 같은 사람이었다. 기분도 나쁘겠다 정체가 드러나면 곤란하겠다 싶어서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 좀 해봐. 아가씨?

혼자 왔나 본데 나랑 맥주 한잔 하자고 으잉?"


이미 술이 많이 취한 것 같은 빨간 고릴라는 더 큰 목소리로 추태를 부렸고 거기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쏠려 버렸다.

 

앗. 안돼!! 



난 우산도 못 챙기고 그곳 롯**아를 뛰쳐나왔다.

임무를 달성하지 못하고 나오는 외로운 추격자의 눈엔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국물이 글썽였다.


엄마. 엄마.

독사가 드디어 연애를 해요.

저... 이제 방 혼자 쓸 수도 있겠어요.


저도 제방을 갖고 싶어요~~~~~~


그랬다.

언니가 연애를 하면 금방 시집갈 줄 알았던

나에게 달콤하디 달콤한 소식. 독사 연애! 그것은 곧 나의 자유를 의미했다.

내방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해 준 행복한 순간이었다.

독사가 첫 연애를 실패하는 바람에 자유해방은 조금 늦어졌지만 결국 백마 탄 형부를 찾아 떠났고

나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지금 난 아들과 방을 함께 쓴다.

초등 6이지만 무섭다고 함께 자야 한다.

언젠간 언젠간 하며 해방을 그리기보다는

이 시절이 그리울 거야 하면서 아들을 놓아주기 싫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생각해 보면 독사언니가 연애하는 게 정말 신기했다. 빨리 시집가줘서 고맙고 덕분에 혼자 방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행복한 순간  두 번째 독사 연애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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