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해지는 연습

by 향작

글을 쓸 때 나의 치명적인 단점이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면, 마음이 쉽게 조급해진다는 것이다.

작가에게 결코 필요하지 않은 자세 중 하나일 텐데, 나는 원래 성격이 급하고 심장이 빨리 뛰는 사람이다.

대체로 좋은 아이디어, 소재가 떠오르거나 막히던 글이 술술 풀리는 것을 경험할 때면 심장이 빠른 탬포로 뛰기 시작해 다른 좋은 대안들을 더 이상 생각지 않게 된다. 글을 쓰는 내 모습이 스스로 제법 마음에 드는 것인지, 대부분 연애 초반의 설렘과 같은 두근거림을 유지하기도 하는데 간혹 이러다 단명하진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인간 평균 심박수가 50~80회. 운동을 할 때는 최대 180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아이들 등원으로 바쁜 아침 시간 나의 심박수는 180을 수월하게 넘나들 것 같다. 참고로 장수 동물 거북이의 심박수는 분당 6회다.




OTT 예능 중 즐겨보는 것이 있다면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의 성적 코칭을 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학창 시절에 지지리 안 했던 공부를 뒤늦게 후회하며 어떻게든 채워볼 요량인 것인지, 재미도 재미이지만 공부는 저렇게 했어야 하는구나, 어떤 깨달음도 얻는다.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도움이 된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해당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수학 일타강사의 강의력과 수학을 대하는 자세를 보다 보면 일찌감치 수포자의 길로 들어섰던 나의 학창 시절을 반성하고 많이 아쉬워하게 된다. 최근엔 다시 수학을 배워볼까.., 성인 수학과외를 시작해 볼까 생각할 정도다.



큰 아이의 유치원 동복 바지 무릎에 구멍이 났다. 이제 하복을 입을 시기여서 굳이 빠른 대처를 할 필요는 없지만 구멍을 매울 와펜 패치를 구매했다. 그리고 지난밤 학창 시절 가정 교과목을 통해서나 배웠던 바느질을 시작했다. 곰돌이 모양의 와펜 패치를 구멍 난 무릎 부위에 덧대고 바느질을 하는 것은 수월하지 않았는데,

몇 번 바늘을 오간 끝에 요령이란 게 생겼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란 게 제법 그럴싸해 스스로가 너무 대견했다. 참 별 것 아닌 일에 이렇게나 만족스러울 수 있다니, 아침에 눈을 뜬 큰 아이가 마음에 들어 할 것을 생각하면서 더 뿌듯했다. 그리고 그날 하루 내내 나를 괴롭혔던 걱정과 근심이 바느질을 하는 동안엔 잠깐 쉬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툰 솜씨라 해도 짜증 한 번 나지 않았고, 바느질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 계획했던 드라마 보는 것을 포기했음에도 아쉽지 않았다. 심장도 빨리 뛰지 않았는데, 이렇게 표현한다면 과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기억하는 생애를 통틀어 가장 차분했던 것 같다.



나는 서툰 것을 잘 해내기 위한 과정을 거칠 때, 더군다나 그 결과물에 대한 누군가의 기대란 게 있을 때,

어설픈 스스로를 차분하게 기다리기도 하는구나 생각했다. 포기했던 수학을 다시 배워볼까 싶은 마음과 잘하지 못하지만 아이에게 엄마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의기양양해지고 싶은 마음은 내 심장을 충분히 고요하게 만들었다. 묵직한 끈기와 기다림이 내게 영영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글을 처음 대할 때에도 바느질과 수학을 대하는 자세와 비슷했을까.

조급하기보다는 좀 더 진득하게 고민하고 빠르게 뛰는 심장을 잠재우며 스스로 기다리기도 했을까.

이래서 초심이 중요하다고 하는 듯하다. 스스로 작가로서 뼈대가 굵다 생각한 적 없었는데, 무의식 중에

이만한 시간 동안 글을 썼으면, 이 정도쯤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막힘없어야 할 때 막히거나 시간이 흐르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하고 빠른 결과물에만 매달렸나 보다. 그랬나 보다.


사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글도 사방이 꽉 막혀버렸다. 야심 차게 뻗어나갔던 줄기들이 서로 엉키고 설켜 그대로 끊어지고 말았다. 내가 만든 인물과 사건들에 확신이 서질 않아, 어젯밤 남편에게 들려주었고, 남편 또한 확 와닿지 않는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순간 속에서 욱하는 덩어리를 삼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쉬이 잠에 들지 못하고 오랜 시간 뒤척였다.


그렇게 아이들 등원을 준비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이야기 생각뿐인데 출근을 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하는 일이란 건 브런치 일기 쓰기이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차분해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글을 처음 대할 때, 나를 기다려주던 그 심장, 그때 그 초심을 되찾으려고 하는 중이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16화비가 오는 날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