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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Jul 07. 2024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을까.


2주 정도 됐으려나, 큰 아이가 아데노인 듯하다는 진단을 받고 열이 나흘 넘게 지속되어 결국 기관지염에 중이염까지 진단받은 것이. 그대로 마치 바통 터치라도 하듯 작은 아이의 설사가 잦아들다가 재차 심해져 일주일 만에 변 검사를 했고, 살모넬라 균이 나와서 세부검사에 들어갔다. 와중에 큰 아이는 증세가 호전되어 유치원 등원을 했지만 내겐 작은 아이를 돌보아야 할 의무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번 주말, 작은 아이의 증세가 호전되어 등원을 시켜도 좋겠다는 의사의 진료 확인서를 떼왔는데, 이어서 큰 아이의 발에서 수상한 발진을 확인했다.




외출할 땐 손을 바로 씻지 못할 것에 대비해 손소독제를 가지고 다니고 외출 후 곧장 욕실로 향해 손을 씻으며, 외출복을 실내에서 입는 것 또한 용납하지 않는다. 샤워를 하지 않고는 침대 위에 올라가는 것 또한 금지다.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다시피 할 정도로 거의 강박적으로 지킨다. 달걀 하나를 깰 때에도 곧장 손을 씻는 것은 물론 닭 요리를 할 때에는 팔팔 끓는 물에 생닭을 데치고 씻고, 그 전후로 모든 과정 내내 주변을 소독한다. 작은 아이가 돌이 갓 지났을 무렵 근처 닭백숙 집에서 식기류를 잘못 사용했는지, 살모넬라 장염에 걸려 호되게 고생을 했었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데 또 작은아이가 살모넬라에 걸린 것도 모자라.., 큰 아이가 다시 수족구 의심 증상이라니..?

이럴 땐 정말... 너무 무력해져서 누군가 찌르기만 해도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아이가 자주 아픈 게 모두 다 내 탓인 것 같아 좌절감만 든다. 누구는 아이를 너무 깔끔하게 키워도 안 된다, 그래서 아픈 거라 하고 누구는 위생관념이 철저하지 않아 그렇다 하는데, 두 아이를 지나치게 깔끔하지도, 그렇다고 딱히 지저분하지도 않게 키우는 내게 그런 말들은 때론 비수다. 더욱이 온갖 질책이 나한테 오는 것 같아 가혹하단 생각마저 든다.



내년까지 세워둔 공모전 계획으로 인해 마음이 하루하루가 바쁘다. 조바심이 들어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주말을 제외하고 나면, 두 아이들이 등원을 하는 평일이 금쪽같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이들 끼니를 준비해 두고, 내 배를 채우고 나면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시간인데, 그 덕에 온전히 나의 글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은 육퇴를 한 뒤인 밤 9시 무렵이 된다. 온전한 정신과 체력으로 창작에 몰두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는데 온갖 체력을 모두 소모해 버린 캄캄한 밤 시간에야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다. 그 시간마저도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깨서 짜증이라도 낼라치면 중심이 흔들린다. 집중이 흐트러진다. 평소 책 읽기와 글 쓰기에 일말의 예열이 필요한 나로서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언제고 환경은 주어진 상황일 뿐 모든 건 다 내 역량이란 생각을 하고 있으니 더 할 말도 없다.



내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바삐 움직여 두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를 가야 한다. 아이들이 모두 코감기라 화요일에 소아과를 갈 일정이었는데, 큰 아이 발에 수상한 수포가 있으니, 작은 아이까지 동행하여 내일 아침에 가볼 참이다. 남편은 아이들이 병원엘 너무 자주 가니 그 건물로 이사를 가자고 한숨 섞인 농담을 툭 내뱉는다. 나도 주어진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비실비실 웃음이 새다 계획해 놓은 다음 주 일정, 한 달 뒤 공모전 계획 때문에 가슴이 착잡해진다. 쓰라리고 울렁거린다.




큰 아이가 수족구가 맞다면 며칠 안에 작은 아이도 옮을 테다. 큰 아이가 무엇을 앓든 작은 아이가 비켜갈 거란 희망이나 기대는 쓸모가 없다는 걸 진즉 안다. 그럼 꼬박 2주는 두 아이를 번갈아가며 집에서 돌보아야 할 테고, 낮에 해야 할 일들을 육퇴 이후로 미뤄두어야 할 것이다. 새벽에 자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지만 때론 새벽에 잠들 수도 있고 그런 와중에 온전한 내 글은 아마 못 쓸 것이다.


두 아이들이 아픈 일이 내 탓은 아닐지라도 내가 내 글을 못 쓰게 되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오는 건 내 탓이다. 내가 지금 두 아이들이 아픈 일로 이렇게나 절망하는 것은 실은, 내가 그동안 쌓아온 지난 시간들이 이런 상황에조차 대비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 탓이다.


한 번도 요행을 바란 적이 없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만, 이번만큼은 뜻밖의 행운처럼 슬픈 예감이 틀렸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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