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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Jul 12. 2024

피곤하지 않아요

건강 되찾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리 잘 자고 일어나도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 면역력이 떨어져 온갖 잔병치레를 하며 한 달 내내 속수무책으로 몸 이곳저곳이 아팠는데, 처음 경험하는 귀밑 림프절 통증으로 돌연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원인은 축농증. 그렇게 10일이 넘는 날 동안 약을 먹고 있는 중이다. 독한 약을 먹기 위해 삼시 세끼를, 알차진 못해도 반드시 챙겨 먹기 시작한 것도 10일이 넘었다. 의사는 한 차례 더 찍어본 안면 x-ray를 보곤 아무래도 축농증이 오래된 듯하다고, 농은 다 사라졌지만 부기가 가라앉지 않았다고 했다. 그 부기 탓에 나는 아직 코가 막히는 사람처럼 맹맹한 소리를 내고 있다. 약은 여전히 먹지만 확연히 좋아진 컨디션은 진즉 이렇게 나를 돌보았어야 한다는 자책을 불러일으켰다.




만으로 서른 넷이라는 나이는 체감상 많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딱히 늦었다는 생각이 들진 않을 정도로 창창한 나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 주변 친구들까지 몸 이곳저곳이 아파 병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걸 보면 분명 20대와는 달라진 듯하다. 나 또한 딱히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다른 삶에 대한 열정과 건강 염려증으로 몸에 좋은 식단을 먹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결혼 이후 나를 놔버린 일상 속에서 떨어진 면역력이 무섭기도 했다. 두 아이들이 얼마간 자란 뒤 나를 챙긴다면, 아무래도 뒤늦은 후회가 될 것 같아 하루라도 빨리 건강한 삶을 되찾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의 손길이 너무 많이 필요한 세 살과 다섯 살의 아이들을 돌보며 나를 챙기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나를 애써 외면하고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금쪽같이 써야 할 시간 내내 졸음이 쏟아졌다. 그 어떤 것도 시도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을 읽다가도 졸고, 반드시 해야 할 것도 도중에 포기하고 졸았다.

그렇게 까무룩 졸다 깨어나면 깊은 자책에 빠졌다. 정신은 몽롱하고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책망했다. 어떻게 이토록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졸면서 허비할 수 있는지 자괴감이 들고 한심해졌다. 이 모든 신체 반응들이 나빠진 건강 탓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실제로 어느 한 곳에서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면 병원 한 번 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도 여전히 브런치 글 하나조차 제대로 연재하지 못한 채 졸고, 다시 깨어나 자책하는 시간을 반복하고 있었을 것이다.


축농증이라는 게 실은 그리 대단한 질병이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그래서 단순히 비염이 도졌다는 생각이나 조금 유별난 감기에 걸렸다는 생각으로 병원 가기를 하루, 이틀 미루었을 뿐이다. 내게 지독한 피로를 가져다준 것이 부비동을 가득 채운 농이었다는 걸 진즉 알았다면 빨리 병원에 갔을 텐데. 뒤늦게 후회해 보았자 어제와 그제는 흘러갔고, 오늘만이 주어졌다. 도리어 감사하단 생각을 하기로 한 건 이렇게나마 나 자신을 돌볼 기회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나를 가엽게 여긴 전능한 누군가가 정신 좀 차리라고 고통을 준 듯하다 여기기로 한 것이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먹은 지 만 이틀 만에 정신이 말끔해졌다. 하루 종일 좋지 못한 컨디션으로 기분까지 추락한 지난 시간을 딛고 깨어났다. 두 아이들을 돌보느라 힘든 것인가 생각했던 무지 속에서 오로지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시름시름 앓았을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생각해 보니 의사의 말대로 축농증이 오래된 듯하다. 아이들을 재우다 나까지 재워버리는 일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더 짙은 밤에 몽롱한 정신으로 일어나 뒤늦게 해야 할 내 몫의 일들을 하고 새벽에 잠들어 피로가 쌓이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다. 반드시 하루를 넘기면 안 될 일들이 있는 날이면 남편에게 나 좀 깨워달라고 부탁했지만, 어느 날은 눈을 떠 보면 남편까지 잠이 든 깊은 새벽이었고, 자책에 자괴감까지 얹어진 무거운 공기만 느낀 채로 모든 걸 외면했었다.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며 그 해결책이 건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요 며칠 동안의 나의 작은 변화들을 살펴본다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약을 먹고 나아진 축농증, 비록 아직 부기가 가시지 않아 여전히 약을 먹고 있고 맹맹한 소리이지만 피로가 확연히 줄어들어 본연의 나를 되찾은 것 같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잠드는 일이 줄었고, 아니 없고, 낮에 해야 할 일을 하는 중에 하품을 하는 일도 없다. 두세 시간 낮잠에도 개운하지 않던 몸이 단 몇 분의 낮잠 없이도 멀쩡하다. 두 아이들을 번갈아가며 가정보육을 하는 시간 동안에도 나의 컨디션이 제법 좋아 견딜 수 있었다. 지치는 것과는 별개로, 아이들을 오롯이 사랑할 수 있었다. 정말 나를 더 사랑하니 아이들에게 베풀 사랑이 생겨난 것 같아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 정정한다. 가정보육으로 분투 중에는 아이들과 함께한 낮잠이 달디 달았다.)




아침 일곱 시경 두 아이들의 아침을 챙기며 내 첫 끼니를 함께하고, 일하는 중간에도 시간을 정하고 점심을 꼭 먹는다. 이전부터 매일 다짐했던 하원한 아이들과 작은 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녁을 먹는 일을 비로소 해내고 있다. 약 때문에 더 강박적으로 챙기는 끼니를 이후에 약을 끊게 되더라도, 건강이 온전히 돌아온 뒤에도 챙길 수 있기를 바라고 다짐할 뿐이다.


얼마 전 연재한 브런치 글에서 나를 돌보기를 소홀히 하는 일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글에서 나는, 나를 이루는 것들에 대해 밟으면 바스락 부서져버릴 낙엽이라 했다. 조금씩 나를 챙겨 나의 계절이 싱그러워지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흐른 건 단 며칠의 시간이지만 오늘의 나는 비옥한 토양쯤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떨어진 낙엽이 흙이 되고 거름 되어 꼭 오래 지나지 않아 새로운 싹이 움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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