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굉장히 오래 쉬었다.
일기를 쓰려고 앉아도, 어차피 지난 일기들과 똑같은 내용과 맥락일 것 같아 망설여졌다. 핑계라면 핑계이겠지만, 써봤자 어차피 육아이야기, 읽어봤자 다 똑같은 힘들어도 내 새끼 예뻤다는 이야기일 게 뻔했다. 매너리즘에 빠진 듯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정말 내가 쓸 수 있는 글이란 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전부 똑같은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틀에 박힌 그렇고 그런 진부한 내용이 될 것 같아서 선뜻 그 무엇도 쓸 수 없었다. 아니, 쓰고 싶지가 않았다. 육아 이야기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내가 마치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7월 25일부터 큰 아이의 유치원 방학이었고, 작은 아이는 감기가 임파선염과 폐렴으로까지 번져 집에 데리고 있어야만 했다. 다행히 병세가 심하지 않은 초기 단계라 걱정을 크게 하진 않았지만, 지난번 폐렴으로 입원한 적이 있어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했다. 처음엔 두 아이를 일주일이 넘게 집에만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침울했지만, 그 모든 시간들을 지나온 지금은 내가 과연 해냈다는 성취감과 나의 하루는 어쩔 수 없이 육아 칠갑이라는 사실, 더불어 내가 브런치를 하게 된 초심에 대해 다시금 상기하게 됐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 큰 아이는 30개월, 작은 아이는 태어난 지 9개월이 된 꼬물이었다. 육아가 일상인 하루하루 속에서 나를 좀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브런치였다. 큰 아이를 낳으며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나, 무얼 먹이고 입히고, 읽히고, 들려주고 놀아주나 등 온통 육아 생각으로만 머릿속이 가득 차서 내가 무얼 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새카맸다. 그럼에도 글을 써내야 한다는 강박이나, 글 쓰는 사람이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그 시작이 브런치였던 것이다. 온통 육아뿐인 하루 속에서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자는 것, 그게 나의 초심이었다.
가정보육이 좀처럼 끝이 나지 않는다. 지난 금요일, 작은 아이의 감기도 호전이 되어 월요일이면 등원을 시킬 수 있게 되었고 큰 아이도 개학식 전 4일 동안은 유치원 긴급보육이 가능해 등원을 시켜도 무방한 날이었다. 하지만 어제 하루 등원을 다녀온 큰 아이가 오늘 아침, 생뚱맞게, 정말 영문을 모르게 열이 났다. 병원에 갔다가 중이염 진단을 받았다. 해열제로 열이 내린 아이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등원을 시켰지만 재차 열이 올랐단 말에 부리나케 데려왔다. 큰 아이가 내 옆에 누워 동생 하원을 같이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근 3일을 붙잡고 있었던, 이 별 것 아닌 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나도 부엌일을 하다 묻은 손의 물기를 털어내고 잠시 짬을 내어 앉았다.
육아를 하는 중에 일기를 쓰는 일이, 브런치 글을 연재하는 일이 실은 어려울 수도 있단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오랫동안 미뤄둔 일기를 다시 써내려 하니 그동안 브런치 연재를 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어렵게만 다가온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탓이지 않을까 싶다.
하나 번갈아 가며 아픈 두 아이를 집에서 돌보던 앞선 날들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시작한 브런치를 통해, 지금 이 과정이 어쩌면 꽤나 당연한 거란 생각이 든다. 정체성이란 게 가볍게 뚝딱 결정지어지는 것은 아닐 테니, 두 아이의 엄마이자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은 내가 이 정도의 마음의 시련이나 고군분투는 꼭 해 내야 하는 과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