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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Aug 23. 2024

가족애착

나의 부모님

인스타그램을 끊은 뒤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sns에 대한 갈증을 느낀 적은 없다. sns를 할 때에는 그렇게 소비하는 시간이 당연하게만 느껴지고 없어선 안 될 것만 같았는데, 이토록 오랜 기간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고도 잘 지내는 걸 보면 없어도 마땅한 도구였다는 생각이 든다. sns를 하지 않아서 좋은 점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는 시간이 줄었다는 것이고, 핸드폰을 할 시간에 다른 걸 할 궁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핸드폰으로 가장 많이 하는 게 있다면 사진첩에 차곡차곡 쌓인 지난 추억들을 되새기는 일이다.




두 아이의 엄마답게 나의 핸드폰 사진첩에는 아이들만이 빼곡하게 수를 놓고 있고 나는 사진 속 아이들을 보는 일을 즐긴다. 불과 일주일 전의 아이 모습이 다르고, 오늘에 와서 언제 이렇게 컸는지 감격에 겨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일이 하루 일과 중 하나로 자리 잡기도 했다. 그러다 오늘은 보고 또 본 아이들 사진들 틈틈이 나의 엄마와 아빠 사진이 눈에 띄었다. 문득 나의 엄마가 얼마나 늙었는지, 아빠는 또 어떤지 새삼스러워졌다. 순간적으로 아이들 사진만큼이나 부모님 사진이 많아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게 부모님이 아니라면 얼마나 초라하고 버거운 인생일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의 어린 시절을 두고 마냥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두 분은 자주 언성을 높이며 다퉜고, 나는 그런 환경에 곧잘 노출됐으며 대체로 소극적이고 종종 주눅 들어 있었다. 행복하고 싶었고,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는 집에서 오래도록 살고 싶었다. 무엇보다 심하게 다툰 다음날이면 습관처럼 내게 미안하다 사과하는 엄마가 서글펐다. 그럼에도 내가 그 옛날을 이해하는 것은 두 분 모두 그 당시의 삶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 그 시간들에 빠짐없이 내가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삶에서, 우리 네 가족만이 유일하게 외딴섬과도 같았던 지난 시간들 속에서 진득하고 끈적한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다. 때론 그 지독한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사랑 속에 살고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나는 유독 엄마와 나를 오랫동안 동일시했다.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고, 행복하게 하는 것만이 내게 주어진 사명인 것처럼 밖에선 겉돌면서도 집에선 엄마를 위해 말 잘 듣는 딸이 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엄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면서도 또 그만큼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의 감정을 고스란히 나의 것인 양 느끼는 게 힘들었고, 언니보다 내게 의지하는 엄마가 버거웠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언니는 나보다 더 자기주장을 잘 내세우고, 엄마의 뜻과 기분이 어떻든 상관없이 제 의지대로 행동하는 걸 보면 나의 기질이 좀 남다른 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와 동일시하며 내 감정이 힘들지 않으려면 엄마는 아빠와 다투어선 안 됐다. 그렇게 행복한 엄마는 곧 가정의 평화였고, 나는 그런 화목한 가정 속에서만 안정감을 느꼈다. 그건 지금까지도 여전한 듯한데 어쩌면 결혼을 하고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화목한 가정을 자연스레 꿈꿨기 때문인 것 같다.



사진첩을 넘겨보다 지난 주말 나의 두 아이와 조카, 엄마 그리고 내가 나란히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아이들을 재우다 엄마와 나도 잠들어 버렸는데, 언니가 그 모습을 찍어 톡으로 보내준 것이다. 처음엔 세 아이가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모습이 먼저 눈에 띄었지만, 어느 순간 흰머리 가득한 가냘픈 엄마가 보였다. 손주들 자리가 좁아지기라도 할까 싶어 양손을 가지런히 배 위에 포개 얹어두고, 조용히 감은 두 눈이 새삼 먹먹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이 잠든 모습은 오랫동안 깊이 들여다본 적 있으면서, 나의 부모님이 잠든 모습은 그토록 빤히 바라본 적 있었던가. 짙은 숨소리가 어떤 걱정을 담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이리 늙어서도 자식만 바라보며 살고 있는 듯한 나의 엄마가 자는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보고 있자니, 괜스레 미안함에 눈시울이 다 붉어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찾아보았다. 사진첩에 또 다른 부모님의 사진이 있는지. 내가 찍은 건 얼마나 되는지. 몇 안 되는 동영상은 재생도 해 보았는데 세 명의 어린 손주들이 아니었다면 결코 담지 않았을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가령 나의 큰 아이 생일에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영상과 같은 것들. 대체로 영상 속에선 아빠가 환히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의 결혼식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평소 아빠는 머리가 좀 벗어져서 그렇지, 흰머리 하나 없고 동그스름한 얼굴이 동안이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비디오 속 아빠는 너무나도 젊어 꼭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헤죽헤죽 웃는 모습이 좀 낯설었다. 아빠의 젊고 찬란한 시절을 엿보고 있자니, 지금의 아빠가 초라해 보여 왈칵 눈물이 났었다. 좀처럼 느껴본 적 없는 뭉클한 기분을 다시금 느끼며 부모님의 시간이 더디 흐르기만을 바랐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조금 덜 늙기를, 오랫동안 건강하기를, 내 곁에서 더 긴 시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가족을 갖는다는 것은, 참 특이한 경험이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음에도 지독히 사랑하고 또 부모님과 같은 부모가 되어 두 아이를 기르고 있다. 절대 닮고 싶지 않은 모습을 닮아 때론 원망도 하면서, 지나간 시절을 속속들이 이해도 한다.

내게 가한 상처는 도리어 당신의 허름한 주름이 되거나 억센 흰머리가 되었다. 그래서 너무 늙어버린 당신을 볼 때마다 지난 시절이 야속해 서글프지만 그런 모습으로라도 내게 엄마와 아빠로 있어주길 바란다. 내가 어김없이 당신 앞에 어린 자식이길 바라고, 내가 여전히 당신을 우러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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