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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Aug 28. 2024

실례합니다.

수료는 못했습니다만.

큰 아이 유치원에서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 및 강연을 제법 알차게 운영한다. 육아가 마냥 힘들게 느껴지고 마음이 우울해 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던 한 때, 필연처럼 접한 학부모 강의를 시작으로 모든 강의 신청서에 참가 의사를 밝혀왔다. 강의는 항상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내가 느끼는 앎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어떤 환기와 전환점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배워두면 요긴하게 쓰일 것 같은 자격증 과정이 개설이 됐다. 바로 그림책놀이상담사자격 과정으로 나의 아이들에게 적용해 보는 것은 물론, 제2의 직업으로까지 기회를 넓혀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과 마지막 대면 강의와 여섯 차례의 비대면 강의를 포함하고 있는 수업이었고 오늘이 그 마지막 대면 강의날이었다. 처음 열다섯 명으로 시작한 강의는 열세 명이 자격증 수료를 하며 끝이 났다. 두 명의 학부모는 안타깝게도 중도 하차와 출석률 저조로 수료를 하지 못했는데 총 8차시 중 절반만 수강한 내가 출석률 저조의 주인공이다.




5월 말부터 가정보육이 잦았다. 내가 야심 차게 시작한 그림책놀이상담사 자격 과정을 어찌 절반만 수강했는지 핑계를 대자면, 그렇다. 6월엔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아데노 바이러스와 살모넬라 장염에 걸렸고 7월엔 수족구, 폐렴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아프지 않다면 무엇보다 좋겠지만 이를 피할 수 없다면 한 번에 겪고 넘어가면 좋으련만, 큰 아이가 아프다 곧 등원을 앞둔 날 작은 아이가 열이 나는 식이었다. 그럼 다시 일주일은 거뜬히 집에 발이 묶여 아이를 돌보아야 했다. 왜 이렇게 갑자기 아이들이 자주 아픈 것인지, 좌절감이 깊어갔다. 그렇게 언제 끝날지 모를 가정 보육의 굴레는 작은 아이마저 수족구를 옮아 다시 일주일은 데리고 있어야 하는구나, 싶던 때에 돌연 수족구가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끝이 나는 듯했다. 뜬금없이 큰 아이가 중이염을, 작은 아이가 폐렴과 임파선염을 진단받을 줄은 또 몰랐다.


그즈음 해서는 해탈에 이르렀다. 상실감과 좌절감을 헤아려봤자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언제 무언가를 배우고 있었는지 까무룩 잊었다. 매일이 아이들 끼니 걱정에 무엇을 하고 놀아줘야 할지 그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는 중에도 마음의 한 귀퉁이는 이미 잘려나가 울음을 파도 타는 조각배와 다름없었다. 근 두 달간 두 아이의 병세와 씨름하는 동안 나는 야금야금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를 의식하자면 그 속상함이 나의 전부를 앗아갈 것 같았다. 스스로 그 감정에 몰입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쓰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성공이었을까, 기대했던 자격 과정은 수료하지 못했지만, 이는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 내가 그림책놀이상담사 자격 과정을 수강 중이었지?

새삼 알아차린 건 아이들을 오랜만에 모두 등원시킨 뒤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 유치원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덕분이었다. 아이들이 아픈 뒤로 대뜸 유치원에서 전화가 오거나 어린이집 키즈노트 알림장에 댓글이 달리면 긴장감에 머리칼이 삐죽 섰다. 수신 전 마음을 가다듬고 마른침을 삼켰다. 반사적으로 얼어버린 몸이 무색하게 마지막 대면 수업이 있는 날 참석이 가능한지 묻는 전화였다. 수료를 하지 못했는데 참석을 해도 되는지 의문이었지만, 강사님이 기꺼이 참석을 환영한다는 말에 냉큼 가겠다고 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한 것은 물론, 완주를 했다는 사실에 잠깐 내가 있으면 안 되는 자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수업을 들으면서는 잊고 있었던, 첫 대면 수업 때의 유익함을 비롯하여 만족과 활기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수료증을 전달받는 동안 힘차게 박수 치는 것으로 꺼져가는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면서 조금 더 노력해 볼 걸, 하는 아쉬움도 느꼈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어쩔 수 없지 않았느냐고, 그동안 나는 아픈 두 아이에게 정성을 다해 골몰하지 않았느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수업이 끝난 뒤 식사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마치 이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한 것도 없이 밥만 얻어먹는 건 아닌가 싶어 아주 잠깐 갈등했지만 결과적으론 좋은 사람들과 남다른 유익한 대화를 나누고 돌아올 수 있었다. 자리에 앉고 일어날 때까지 종종, 나는 수료를 하지 못했단 사실을 상기하고, 모두가 서로의 번호를 묻고 물어 알려주면서도 나는 좀 실례가 아닌가, 고민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옆에 자리한 분은 같이 아쉬워할 뿐 큰 의미를 두지도 않았다. 나만이 나와 약속한 일을 거슬러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좋은 기회를 놓쳐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생각보다 컸던 듯싶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대체로 모든 상황들이 생각, 상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그날 해야 할 일을 미루면 어김없이 아이들이 아파 미룬 일을 해낼 수 없게 되고,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또 다른 방식으로 두 아이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상한 일인데 이보다 더 비상한 것은 아이들로 인해 나를 얼마간 내려두어야 할 때마다 후회나 아쉬움보다 수용하고 마땅히 감당하려는 마음이 분명 더 크다는 것이다. 시간과 마음을 허투루 허비한 것이 아닌, 당연히 지나쳐야 할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더불어 그 길 끝엔 조금 변화한 내가 있다. 무언가를 딛고 일어선 나, 어떤 틀을 깨거나 탈피한 나.


지금까지 나에게 생긴 여러 기회가 두 아이들 덕분이라고 여긴다. 앞으로의 기회도 다름 아닌 두 아이들로 인해 생기거나 내가 또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실례했지만, 다음엔 나도 기회의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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