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기민함
“배고파 파파리지옥 배고파 파파리지옥”
요즘과 같이 미디어가 발달된 시대에, 예전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노래와 영상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아이들 덕에 한 가지 노래만 주야장천 들을 때가 있는데, 어느 시기엔 “파리지옥”이었다. 이 노래는 파리지옥과 같은 식충식물을 주제로 한 아이들 노래다. 큰 아이가 제법 오랫동안 이 노래에 빠져 집에서도 곧잘 들었고, 헤어 나올 수가 없었는데 몇 달 전에는 남편이 실제 파리지옥을 사 오기도 했다.
남편은 결혼과 동시에 식물을 가꾸는 취미를 갖더니 굉장한 “꾼“이 되었다. 그런 남편 덕분에 우리 집 거실 한쪽은 거의 숲과 다름이 없다. 몬스테라, 아레카야자는 물론 박쥐란과 같은 행잉식물까지 빼곡한데, 그 가운데 적응을 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고 있는 파리지옥이 있다.
우리 집 작은 아이는 큰 아이 두 돌을 2개월 앞두고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큰 아이마저도 여전히 아기여서 작은 아이에게 큰 신경을 쓰지 못했다. 작은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인 반면에, 큰 아이는 제 동생에게로 향하는 엄마, 아빠의 관심에 질투를 할 수도 있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더불어 그 당시 큰 아이를 향한 남편과 나의 사랑이 활활 불타오르던 중이라,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서 그 불길이 쉬이 꺼지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큰 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느끼는 질투가 많이 없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0순위인 탓에 큰 아이 또한 엄마와 아빠가 동생보다 저를 더 사랑한다고 느끼고 있는 듯하다.
작은 아이보다 큰 아이를 더 사랑한다기보다는, 작은 아이에 비해 큰 아이의 감정이 사사롭고, 더 많은 걸 알고 느끼기 때문에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한 것뿐이다. 이로 인해 작은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끼긴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어느 정도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작은 아이가 이제 딱 저가 태어났을 무렵의 큰 아이 정도 월령이 되면서 정말 말도 안 되게 사랑둥이가 되어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혹은 남편과 내가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이미 작은 아이에게 사랑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둘이 나란히 재롱을 부려도 작은 아이에게 한 번 더 가는 눈길, 옹기종기 모여 앉은 밥상에서 작은 아이의 애교에 남편과 눈을 마주치고 귀여워 어쩔 줄 몰라 내지르는 탄성, 잠이 든 작은 아이의 볼에 깊이 맞추는 입맞춤 등으로 남편과 나의 관심이 새삼 작은 아이에게 조금 더 기울어졌다는 걸 깨닫는다. 여전히 큰 아이가 동생으로 인해 엄마, 아빠의 사랑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조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에 없이 종종 질투를 하는 큰 아이를 마주하자면, 아이들의 기민함에 놀라기도 한다.
큰 아이가 파리지옥에게 먹이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남편은 파리지옥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그것보단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고 답한다. 큰 아이는 제 아빠의 대답에 생각이 많아진 듯하다가 나에게로 다가와 ’관심‘이 뭐냐고 묻는다.
“관심은, 음... 우리 oo이 앞머리가 이만큼이나 자랐네, 어유 키도 부쩍 크고, 오늘 유치원에서 밥을 잘 먹어서 칭찬을 받았다더니 그래서 기분이 좋아 그런가?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아! 이렇게 많은 걸 알아봐 주고 돌아봐주고, 기억해 주는 거야. “
아이는 그 순간, 제 눈과 마주친 나의 눈을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제 얼굴을 보듬으며 사랑을 베푸는 엄마를 지긋이 바라보면서. 그리고 곧장 알겠다는 듯 파리지옥에게 다가가 무슨 말을 하더니, 관심을 주었다고 했다.
기특하고 따뜻한 큰 아이.
간혹 두 아이에게 사랑을 똑같이 나누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와 남편은 작은 아이가 요즘 너무 사랑둥이라고 느끼지만 여전히 큰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있어 그런지 애틋함이 남다르다. 덕분으로 큰 아이가 동생에게 질투도 덜 하고, 또 나름 챙기고 무언갈 가르치고, 놀아주는 등으로 언니 노릇을 하는 것도 같다. 반면에 작은 아이에겐 종종 사랑을 덜 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미안함보단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큰 아이가 동생에게 베푸는 사랑 때문이다.
큰 아이가 내게 받은 관심을, 파리지옥에게 곧장 행동해 본 것처럼, 남편과 내가 주는 넘치는 사랑을 동생에게 나누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큰 아이는 저대로 엄마와 아빠의 사랑에 확신을 갖고, 작은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에 더불어 언니의 사랑까지 먹고 무럭무럭 자라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