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향 Jul 03. 2024

MBTI

큰 아이 유치원에서는 종종 학부모 강의 참여 알림장을 보내온다. 전에 관심 가져본 적 없던 주제의 강의들에 새로이 흥미를 느끼며 적극적인 참여를 하게 된 건 아이들에게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막연한 목적도 있지만, 유치원에서 진행한 강의를 통해 경험한 남다른 깨달음 때문도 있었다.

오늘 다녀온 강의는 MBTI 성격 유형별 자녀 양육 코칭에 관한 것으로 평소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MBTI가 주제였다. 언제나 나 스스로를 탐색하고 알아가는 일이 나의 아이는 물론이고 더 다양한 타인을 수용하는 일이란 생각을 했었지만 열여섯 가지 성격 유형으로만 인간을 나눈다는 건 도외시했다.

그런데 오늘 강의는 재미도 재미였고, 나란 사람을 더 파악하고 돌아보게 만들었다.




언젠가 나란 사람은 “원래” 이러했다,라는 주제의 일기를 쓰려다가 관둔 적이 있다. 이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을 두고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좀체 잡히지 않아 스스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덮어두었던 그 글이 오늘 MBTI 성격유형 강의를 들으며 떠올랐다.


나는 원래 밥 챙겨 먹는 걸 좋아할 뿐 아니라 세끼 사이사이 간식도 알차게 먹는 편이다. 먹는 걸 좋아하지만, 살찌는 걸 걱정하고, 건강이 나빠질 걸 염려해 밤늦은 시각 야식은 물론 고사하고 대창이나 곱창 같은 음식도 즐기지 않는다. 먹게 될 일이 생기면, 맛있다고 느끼면서도 내 몸에 좋은 영향이 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죄책감 그 엇비슷한 감정 또한 느낀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옷가지를 벗어 정리하고 곧장 샤워부터 한 뒤 스킨케어에 온갖 정성을 다 한다.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나가는 날엔 마스크를 쓰고, 얼굴에 잡티라도 하나 생기면 곧장 피부과로 가 염증 주사를 맞을 정도로 피부에 강박적이다. 천연팩을 하는 게 일상이었을 때도 있었는데, 아무리 늦게 집에 들어오는 날에도 모두가 잠든 밤중에 천연 재료들을 믹서로 갈고, 스팀타월을 만드는 등 법석거렸다. 물론 나의 엄마는 이런 내 모습을 도리어 예뻐라 할 뿐 시끄럽다고는 단 한 번도 꾸중하지 않았다.

미용실 가는 걸 좋아하고 피부과 관리는 그보다 더 좋아하는 나는 옷을 제법 잘 입진 않아도 내 체형을 알고 어울리게 입을 줄은 알았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 진료를 보았고, 건강을 위해 영양제를 챙기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몸에 좋다 하는 건 입맛에 맞지 않아도 곧잘 먹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그 “원래”라는 게 과연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들 육아로 지친다 해서 나를 되는대로 소모하는 게 오히려 “원래” 내 모습인 건 아닌지 의문스러운 것이다.

힘들다는 핑계로 끼니도 거르고, 감기쯤은 아랑곳 않으며 씻은 뒤 머리를 말리거나 스킨케어를 하는 일을 귀찮아하고, 여름 뙤약볕에 선크림조차 바르지 않은 채로 나다니는 사람이 “원래 “ 내 모습이었던 게 아닐까? 굶주린 배로 육퇴까지 내달리다 결국 못 참고 배달 앱을 켜는 사람이, 기름진 음식과 시원한 맥주의 목 넘김으로 그날 하루의 스트레스와 고단함을 떨쳐내는 사람이, 그렇게 쌓인 건 체지방량인 사람이 과연 진짜 내 모습이 아닐까?


이전의, 내가 원래라고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대단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또 지금의 내가 딱히 싫은 것도 아니지만, 간혹 안쓰러울 때가 있다. 가령 하원한 아이들을 데리고 부리나케 도착한 소아과 엘리베이터 거울 속 내 모습이 선크림도 바르지 않아 거무튀튀한 데다 땀범벅이고, 구겨진 옷에, 머리도 정돈되지 않았을 때가 그렇다. 그래봤자 한숨은 건물 1층부터 소아과가 있는 10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이동하는 동안에 짧게 끝난다. 그마저도 두 아이가 연신 불러대는 “엄마” 소리에 모른 체 삼킬 때도 많다.



오늘 강의는 일면 내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성격은 변하지만 보존의 법칙이 있어서 어떤 시기가 지나면 또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한다. 대체로 성격이, MBTI가 변하게 되는 건 살다가 사건이 생겨서 그게 삶에 큰 전환점이 되고,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되면 그렇다는데 여성의 경우에는 대체로 결혼과 출산, 육아가 그런 작용을 한다고 한다. 이 말인즉 나 또한 내가 알고 있는 원래의 내 모습에서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며 성격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지나치게 강박적이고 까다로운 면도 있어서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거나 딱히 돌려놓고 싶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의 성격유형 강의를 통해 ”원래“의 나와 “변화”된 나를 깨닫게 된 일이 위로라고 할 수 있는 건 이 모든 것이 내 안에 갖추고 있는 모습인 데다 언제고 상황에 따라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인 것 같다.

아이들로 인해 맞이하게 된 인생의 전환점에서 내가 나를 놔버렸다기보단, 나보다 더 지극한 손길이 필요한 두 아이들을 위해 잠시 나를 빌려주고 있는 것뿐이라는 위로가 된 것이다.

이전 20화 나를 깨우는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