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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Jun 26. 2024

가장 먼저 나를 놔버리는 일

부모님과 함께 살 때에는 삼시 세 끼를 잘 챙겨 먹는 편이었다. 밥을 좋아하기도 했고, 저혈압에 저혈당이 있어 배가 고프면 예민해지고 손이 떨리기 십상이라 뭐라도 꼭 먹었다. 꼭 엄마가 차려주지 않더라도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인 반찬들을 꺼내 예쁘게 덜어 차려 먹었고, 곧장 설거지를 해둔 뒤 과일도 씻어 먹는 식으로 알차게 내 배를 채웠다. 이렇듯 끼니와 간식을 잘 챙기는 나의 모습을 엄마는 좋아했다. 다 큰 자식이라도 잘 먹는 건 예뻐 보였던 모양이다.


지난 금요일, 등원을 못한 큰 아이와 함께 작은 아이를 하원시키러 갔을 때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가 아파서 고생이겠다며 끼니를 잘 챙기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감사하단 인사와 함께, 왜인지 내 끼니 챙기는 게 가장 힘들어졌다고 답했다. 그리고 오늘 꾸역꾸역 삼시 세끼를 대충 챙겨 먹으며 어쩌다 내가 이렇게 내 건강에 안일한 사람이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킨 오전 시간, 집으로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김밥 한 줄을 산다. 집에 와서 대충 김밥으로 끼니를 때운 뒤 해야 할 일과들을 하며 피곤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할 일을 하다 보면 점심을 놓치게 되는데, 배가 고파도 굳이 참고 일을 마무리한 뒤 밥을 먹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 저녁을 해 둘 시간과 겹쳐 대충 있는 반찬을 꺼내 허겁지겁 먹는다. 저녁을 하고 청소기를 한 번 돌리고 나면 금세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 되고, 늦은 시간에 급하게 때운 점심으로 저녁엔 배가 고프지 않다. 아이들이 남긴 걸 대체로 먹지 않지만 신경 써서 근사하게 차린 반찬이 남으면 아까워 먹어 없애는 식인데, 이를 두고 한 끼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나의 저녁 식사가 된다.


이 마저도 해야 할 게 많아서 아침을 건너 띄면,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 전에 급하게 먹는 점심이 나의 하루 중 한 끼가 되고 만다. 지금은 맥주와 야식을 굉장히 많이 줄였지만 작은 아이를 출산함과 동시에 몸과 마음이 힘들어 야식을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을 때가 있었다. 그 지난 나날들로 인해 체지방은 쌓이고 몸은 불었다. 그렇게 불린 몸은 몇 끼 굶는다고 해서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건강만 악화되는 듯하다. 하루를, 매일을 이렇게 지내는 게 나쁘다는 것도 알고 있고 때론 덜컥 겁이날 때도 있지만 바쁜 일과 속에서 그리고 지치는 하루 중에 가장 먼저 나를 놓아버리는 일이 습관이 된 것 같다. 안타깝게도 고쳐야 할 나쁜 습관이 이렇게 또 는 것이다.


지난달 말, 남편 회사 복지로 받은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보았다. 생각한 것보다 나쁘지 않은 전반적인 건강 상태와 예상했던 대로 좋지 않은 면역력 수치, 그리고 체지방량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하루 두 끼를 먹더라도 건강하게 먹고 짧게라도 운동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끼니는 지킬 수 있더라도, 어째 운동할 시간은 끝내 마련하지 못 할 것 같아 도리어 걱정이 됐다. 이렇게나 스스로 돌보는 데에 무력하고 무능해서야 어떤 일을 오래도록 잘 해낼 수 있을까?

새삼 몇 년 전, 장강명 작가와의 만남에서 들었던 조언이 생각이 났다. 장강명 작가는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매일 짧게라도 운동할 것을 권했다. 운동과 글 쓰는 일이 그리 관련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글 또한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며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이라, 건강함이 우선되어야 하고 그렇게 길러지는 인내와 근육은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기초가 된다고 했다. 당시에는 별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육아와 일상에 지쳐 가장 먼저 나를 놓아버릴 때마다 장강명 작가의 조언이 불현듯 머릴 스치곤 한다.

 



요즘의 나를 계절로 치자면 가을이다. 나를 이루는 것들은 말라비틀어져 금방이라도 우수수 떨어지고 바스러지는 낙엽이다. 두 아이를 챙기면서 남편을 안일하게 대하고 나를 소홀히 하는 일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거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날들이 새카맣게 재가 되어 남았다.


두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나를 돌보고 챙겨야겠다고 마음 먹지만, 사실 쉽지 않다. 그래도 끼니라도 건강하게 챙겨보자 마음먹는다. 내 건강을 돌보는 일이 우리 가족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아이를 사랑한다면 나부터 챙겨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나의 계절이 파릇파릇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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