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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근 Aug 31. 2021

인간의 끈질긴 별 볼 일

제 목 : 위대한 질문

원 제 : O co nas pytaja wielcy filozofowie

부 제 : 의문문으로 읽는 서양 철학사

지은이 :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옮긴이 : 석기용

출판사 : 열린책들

출간일 : 2010년 9월 30일 (원서 2008년)

사 양 : 304쪽 / 152ⅹ225mm



밤하늘의 별을 본다. 그저 가만히, 별생각 없이. 어느 시인처럼 별을 헤아려 보기도 하고, 가장 밝은 별을 꼽아 보기도 하고, 또 내 별 하나 마음대로 정해 보기도 한다. …….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저 별들은 어디 즈음에 떠 있는 것일까? 어떻게 빛이 되어 나에게까지 오게 되었을까? 아니, 저 별은 무엇에서 시작되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세상이란 것은 또 도대체 무엇이고? …….


이런 생각들은 답을 찾을 수도 없고 답이란 것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들이다. 그러나 밤하늘의 별을 본 적이 있는 사람 ─ 그 누가 예외일 수 있을까? ─ 이라면, 별을 보는 단순한 행동에서 ‘나’에 대한 심오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이 생각보다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질문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질문이지 않은가. 정말 놀랍게도 인간은 ‘나’와 세상의 근원을 묻는 위대한 질문을 큰 장애 없이, 단지 별을 보는 일만으로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침의 해가 떠오르면 일상의 하루로 되돌아온다. 별은 언제나 하늘에 떠 있지만, 그 빛과 존재는 강렬한 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빛을 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 이른바 철학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이 지더라도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밤하늘의 별이 불러일으킨 깊은 질문을 잊지 않으려 강렬한 햇빛에 저항하고 몸부림친다. 위대한 질문이 진정 위대한 질문일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생명체 중 오직 인간만이 그 질문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짧은 생명을 바쳐서라도 질문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으려는 인간의 인내와 끈기가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질문』은 존재의 근원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 일생을 바쳐 사유했던 위대한 인간들의 몸부림을 담은 책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끈질긴 ‘별 볼 일’을 담은 책이다. 우리가 만약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다면 그들의 사유는 그 별을 구체적이면서도 정확하게, 다양하면서도 일관되게 볼 수 있도록 (딱딱하고 어렵다는 편견과 달리) 꽤 친절하게 동행해 줄 것이다. 우리가 햇빛 속에 있다면 그들의 사유는 우리의 하늘에는 언제나 별이 떠 있음을,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별은 마음으로 보는 것임을 일깨워 줄 것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면, 그들이 정말 끈기 있게 사유한 만큼 우리도 끈기 있게 별을 올려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질문을 탐구하는 철학자들의 지성과 인내에 대해 마땅히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철학이 꼭 답은 아니라는 사실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사유를 존중하는 것이 그것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우리보다 별을 잘 볼 수는 있어도, 그들이 별을 따 줄 수는 없다! 저자는 책에 담고 있는 각 철학자들의 사유를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의문들로 반박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저자가 제기하는 의문은, 조금의 끈기를 갖고 임한다면 우리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서 그들의 사유에 충분히 질문하고 비판할 수 있으며, 이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간절히 원하는 별 볼 때의 태도이다.


그런데 이 글은 첫 문장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밤하늘의 별을 본다’는 문장에 우리 중 몇 명이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가? 인간이 만들어 내는 인공 빛은 밤하늘에서 별을 내쫓고 있다. 아니, 우리는 경쟁 사회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약간의 시간조차 낭비적인 순간으로 치부하곤 한다. 이 시대의 진정으로 위대한 질문은 ‘나’의 존재와 세계의 근원에 대한 끈질긴 물음이 아니라, 돈의 존재와 지위의 근원에 대한 끈적한 물음인 듯하다. 지금의 우리에게 ‘별 볼 일’은 딱히 별 볼 일 없는 일이다. 이 책은 ‘별 볼 일’을 풍요롭게 해 줄 탁월한 안내자이지만, 별을 보고자 고개를 드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그렇게 보니, 이 글이 꼭 잘못된 것만은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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